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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현정 리포터
2026-08-04

사라지는 밥상의 과학, 국제 연구팀이 나섰다 12개국 연구진, '세계 식단 이니셔티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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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2개국 연구자들이 각 지역에 뿌리내린 전통 식단, 이른바 헤리티지 다이어트(heritage diet)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그 생물학적 효과를 연구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학교 메디컬센터의 크비레인 더마스트 등이 이끄는 이 연구팀은 7월 1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에 이 프로젝트 '세계 식단 이니셔티브(World Diet Initiative, WDI)'를 소개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이 컨소시엄에는 네덜란드, 탄자니아, 우간다, 인도, 인도네시아, 루마니아, 브라질, 에티오피아, 영국, 미국, 독일 등의 연구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헤리티지 다이어트(heritage diet)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그 생물학적 효과를 연구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worlddietinitiative.org
헤리티지 다이어트(heritage diet)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그 생물학적 효과를 연구하는 국제 컨소시엄을 결성했다. Ⓒworlddietinitiative.org

 

사라지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동아프리카 마사이족은 우유와 고기, 피를 주식으로 삼는 식단으로 알려져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콩류와 채소, 곡물을 발효시켜 먹는 식물성 위주 식단이 오랜 전통이다. 인도의 식탁에는 다양한 향신료가 빠지지 않고, 태평양 섬 지역에서는 생선과 타로, 코코넛이 일상적인 재료다. 이런 식단들은 수 세대에 걸쳐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조리법에 맞춰 형성됐다. 연구팀은 이런 헤리티지 다이어트를 오래 유지해 온 일부 공동체에서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 같은 만성질환의 발생률이 역사적으로 낮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도시화와 식량 시스템의 세계화를 거치며 이런 전통 식단들이 산업적으로 가공된 식품 위주의 단일화된 서구식 식단으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는 데 있다. 연구팀은 이 흐름이 단순한 입맛의 변화가 아니라고 짚었다. 

식량 시스템의 세계화와 산업화는 식량 안보 강화와 계절과 무관한 영양 공급, 편의성 확대라는 이득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비만과 심혈관질환 같은 식단 관련 만성 비감염성 질환의 급증을 불러왔다. 연구팀은 여기에 더해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 하나를 짚었다. 오랫동안 인간의 면역과 대사, 면역 노화 경로,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을 형성해 온 다양한 식이 노출 경험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논문은 이를 '노출체(exposome)의 침식'이라 표현했다. 헤리티지 다이어트가 이런 노출 경험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속도로 소실되고 있고, 한 번 사라진 식단은 장기간 지속된 노출 경험으로서 다시는 연구할 수 없는 대상이 된다는 뜻이다.

전통 식단의 다양성은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이를 분석할 연구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하고 있어, 두 흐름이 교차하는 지금이 헤리티지 다이어트를 연구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Nature Medicine 
전통 식단의 다양성은 빠르게 줄어드는 반면 이를 분석할 연구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하고 있어, 두 흐름이 교차하는 지금이 헤리티지 다이어트를 연구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Nature Medicine 

 

식단마다 다른 생물학적 신호

이 컨소시엄이 근거로 제시한 연구들은 헤리티지 다이어트가 몸에 남기는 흔적을 무작위 대조군 시험으로 검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장 정교하게 설계된 사례는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지역의 임상시험이다. 연구팀은 콩류와 통곡물, 발효식품이 중심인 현지 전통 식단을 먹던 남성들을 무작위로 나눠 한쪽은 가공식품 위주의 서구식 식단으로, 다른 쪽은 전통 식단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했다. 2주 뒤 서구식 식단으로 바꾼 집단에서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수치를 비롯한 만성질환 관련 생체지표가 뚜렷이 상승했고, 반대로 전통 식단을 유지하거나 조와 바나나를 발효시킨 전통 음료 음베게(mbege)를 마신 집단에서는 같은 지표가 낮아지는 변화가 확인됐다. 단 2주 만에 나타난 변화라는 점에서 식단이 면역계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보다 빠르게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비슷한 방법론은 한국 식단에도 적용된 바 있다. 한류 확산과 함께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한식은 실제로 여러 임상 연구를 통해 그 효과가 검증됐다. 한국식품연구원과 국내 대학 공동 연구팀이 2020년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채소와 식이섬유, 식물 화학물질이 풍부하고 동물성 지방은 적은 전통 한식을 2주간 섭취한 비만 여성들에게서 항염증 사이토카인 수치는 높아지고 염증 유발 인자는 낮아졌다.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 비중이 높은 서구화된 한식을 먹은 대조군에서는 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근거로 전통 한식이 식이염증지수가 낮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항염증 식단이라고 평가했다.

멕시코 전통 식단을 다룬 연구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개입 실험이 이뤄졌다. 이 연구에서는 염증 지표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인슐린 민감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확인됐다. 세 지역의 연구 결과를 나란히 놓고 보면, 헤리티지 다이어트가 몸에 남기는 생물학적 신호는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가 각 식단이 발전해 온 고유한 생태적·문화적 맥락을 반영한다고 봤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연구가 각기 다른 방법으로 다른 지표를 측정해 온 탓에, 이 개별 신호들을 서로 비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전통 식단들이 산업적으로 가공된 식품 위주의 단일화된 서구식 식단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bioengineer.org
지난 반세기 동안 전통 식단들이 산업적으로 가공된 식품 위주의 단일화된 서구식 식단으로 빠르게 대체되었다. Ⓒbioengineer.org


지도로 기록하고, 임상시험으로 검증한다

세계 식단 이니셔티브는 이 비교 불가능성을 해소하기 위해 두 축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는 세계식단지도(World Diet Atlas, WDA)다. 식재료와 조달·조리·섭취 방식은 물론, 발효 같은 전통 가공법과 함께 먹는 관습, 식사 시간, 간식, 단식 여부 같은 행동적 차원까지 표준화된 틀로 문서화해, 누구나 무료로 접근할 수 있는 자료로 만드는 작업이다. 두 번째는 세계식단프로젝트(World Diet Project, WDP)로,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식단 전환 실험에서 이미 검증된 연구 설계를 표준 모델 삼아 여러 인구 집단에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헤리티지 다이어트가 면역과 대사에 미치는 영향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근거 기반을 쌓는다. 이와 함께 식이 노출과 면역·대사·미생물군 표현형을 연결하는 다중오믹스 바이오뱅크도 구축해,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될 식이 유래 화합물과 미생물군 유래 대사물질을 대규모로 발굴할 계획이다.

이 컨소시엄은 각 지역의 연구 파트너가 주도권과 데이터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국제 연구공동체와 성과를 책임 있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연구팀은 이 원칙을 "가능한 한 개방적으로, 필요한 만큼만 폐쇄적으로(as open as possible, as closed as necessary)"라고 표현했다.

세계 식단 이니셔티브는 탄자니아, 루마니아, 부르키나파소 등 여러 지역에서 헤리티지 다이어트와 면역·대사 반응을 검증하는 연구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worlddietinitiative.org
세계 식단 이니셔티브는 탄자니아, 루마니아, 부르키나파소 등 여러 지역에서 헤리티지 다이어트와 면역·대사 반응을 검증하는 연구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worlddietinitiative.org


과거로 돌아가자는 게 아니다

연구팀은 이 프로젝트가 과거의 식습관으로 돌아가자는 제안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헤리티지 다이어트가 항상 더 건강하다고 전제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논평은 이런 식단들의 영양학적 적절성과 건강 효과가 그것이 발전해 온 생태적·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인구 집단마다 다르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더마스트 교수는 "이 식단들은 건강한 식사의 설계도가 아니라, 생물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고유한 존재"라며 "음식은 여러 경로로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며 질병 예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식단과 건강을 다룬 메커니즘 연구는 지중해식과 일본식 식단을 중심으로 유럽과 동아시아 인구 집단에 치우쳐 있었다. 그 결과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식단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비한 채 남아 있다. 연구팀은 지중해식 식단에 대한 순응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도 북미에서 연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의료비 절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기존 경제성 분석을 근거로, 다른 지역의 헤리티지 다이어트를 제대로 연구하면 비슷한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이 이니셔티브는 올드웨이스의 헤리티지 다이어트 자료, 유네스코의 문화유산 사업, 유엔식량농업기구의 원주민 식량체계 조사, 슬로푸드 운동 등 기존의 음식 문화 보전 활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생물의학적 검증이라는 층위를 더하는 작업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6-08-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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