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 우디와 우주사령관 버즈가 돌아왔다. “You've got a friend in me” 약속으로 맺어진 영원한 친구들, ‘토이 스토리’가 다섯 번째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전작 이후 7년 만이다.
지난 6월 17일 국내 개봉한 ‘토이 스토리 5’는 6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누적 관객 10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북미에서도 개봉 첫 주말 1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시리즈 역대 최고 오프닝 성적을 냈다. 1995년 1편이 나온 지 31년, 앤디 또래였던 관객들은 이제 제 아이의 손을 잡고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장난감들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토이 스토리가 세대를 아우르는 힘은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 시리즈의 핵심은 아이가 장난감에 온 마음을 주고, 깊은 관계를 맺는 보편적인 경험을 다룬다는 데 있다. 인형에게 밥을 먹이고, 자동차에 이불을 덮어주며, 방구석의 로봇이 외로워 보인다며 다른 친구 옆에 슬쩍 붙여놓는 아이의 모습들. 아이들의 세상에선 모든 무생물이 살아 숨 쉰다.
인간은 왜 이토록 쉽게 무생물을 '사회적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걸까?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이 인지적 본능을, 발달인지과학은 수십 년간 정밀하게 연구해 왔다. 픽사가 영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장난감의 세계를, 이제 과학의 시선으로 들여다볼 차례다.
뇌는 왜 장난감을 친구로 인식하는가
이전 시리즈의 주인공 보니는 버려진 플라스틱 숟가락에 두 눈과 손, 발을 만들어 붙인다. 그 순간부터 보니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된 장난감 '포키'. 영화 속 이 장면은 인간이 왜 무생물을 이토록 쉽게 사회적 파트너로 수용하는지 보여주는 직관적인 예시다. 실제로 현실의 아이들 역시 눈 모양의 구슬이 달린 인형을 보면 그것이 진짜 살아있는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지 않는다. 우리의 이성이 작동하기도 전에 뇌가 훨씬 빠른 속도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진화론적으로 주변 환경에서 ‘생명의 신호’를 가장 먼저 포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눈처럼 생긴 두 개의 점,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무언가를 감지하면 뇌는 즉각 사회적 존재일 가능성을 타진한다. 이 반응은 아주 어린 영아기부터 이미 시작된다.
캐나다 콩코디아 대학교의 엘리자베스 골드만(Elizabeth J. Goldman) 연구팀이 2024년 WIREs Cognitive Science에 발표한 리뷰 논문에 따르면 영유아들은 심지어 눈·코·입이 없는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이 움직이는 패턴만 보고도 이를 사람과 상호작용할 때와 동일한 방식으로 대한다. 피부나 털 같은 생물학적 특징이 없더라도, 움직임 속에 담긴 의도성을 읽어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무생물에 감정을 부여하는 의인화 성향은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논리적 사고 능력이 자라고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를 구분하는 인지 체계가 완성되면서, 아이는 점점 “이건 그냥 장난감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고전 인지과학이 수십 년간 관찰해 온 정설이자 발달 공식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탑재한 현대의 ‘소셜 로봇’이 등장하면서, 인지과학이 세워둔 이 정교한 경계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반응하는 장난감, ‘우정의 유효기간’을 계산하다
생성형 AI를 탑재한 인형이 아이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아이의 말에 감정을 담아 반응하며, 디스플레이 화면 속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맞추는 시대가 열렸다. 이 똑똑한 AI 장난감들이 아이의 마음을 어떻게 흔들어놓고 있는지 인지과학계는 이제 막 흥미로운 데이터들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골드만 연구팀의 논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소셜 로봇을 만난 아이들에게서는 나이가 들면서 의인화 성향이 줄어든다는 전통적인 발달 공식이 예외적으로 무너진다”는 점을 지적했다. 로봇의 외형이 인간을 닮을수록 실시간으로 눈을 맞추고 대화가 매끄러울수록 아이의 뇌는 그 존재를 물건이 아닌 강렬한 ‘사회적 파트너’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인형이나 블록은 아이가 상상력을 쥐어짜 스스로 이야기를 부여해야 하는 ‘수동적 객체’였다. 반면 AI 장난감은 스스로 이야기를 생성해 내고 먼저 말을 거는 ‘능동적 주체’로 작동한다. 아이 입장에서는 의인화에 필요한 인지적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너무나 쉽게 장난감과 정서적 동맹을 맺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진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이 인공지능 친구와의 우정은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리날도 퀴네 암스테르담 대학교 교수 연구팀은 8~9세 아동들이 소셜 로봇 ‘코즈모(Cozmo)’와 실제로 함께 생활하는 과정을 8주에 걸쳐 정밀하게 관찰한 결과를 2024년 International Journal of Social Robotics에 발표했다. 단일 시점 측정에 의존해온 이 분야에서는 드문 종단 패널 연구다.
먼저 아이들이 코즈모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로봇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의인화 수준은 최고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뜨겁던 감정은 일정 기간 유지되다가 시간이 흐르며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뚜렷한 아이들의 유형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한 집단은 로봇과의 교감을 비교적 높고 안정적인 수준으로 오래 유지했지만, 다른 집단은 로봇의 반응 패턴에 금세 익숙해지며 애착이 빠르게 식어갔다. 속도는 달라지만 결국 인간의 의인화 성향은 시간 앞에서 옅어진다는 결론이다.
완벽한 친구의 역설
우디와 장난감 군단이 앤디에게 그랬듯이 장난감은 성장에 도움을 주는 좋은 도구다. 그러므로 AI 장난감 역시 아이의 외로움을 달래고 사회성을 연습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는 타당하다. 관계 맺기에 서툰 아이들에게 끝까지 들어주고 기억하고 칭찬해 주는 AI 로봇은 실제로 안정적인 정서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 '완벽함'이다.
AI 장난감은 절대 화를 내지 않는다.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실수를 해도 묵묵히 기다린다. 오직 아이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놀아준다. 갈등도, 오해도, 서운함도 없는 세계다. 인간관계라면 피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할 마찰이 여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가 갈등을 해결하고, 상대의 감정을 읽고, 타협하는 능력은 불완전한 관계 속에서 부딪히며 발달한다. 나에게 맞춰주는 디지털 파트너와만 시간을 보낸 아이들이 실제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현재의 과학은 아직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토이 스토리 1편이 개봉한 1995년, 픽사는 “만약 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장난감들이 진짜 살아 움직인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라는 상상력을 펼쳤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인지과학자들은 그 질문을 역으로 묻고 있다. “아이들은 왜 장난감이 살아있다고 믿는가? 그리고 그 믿음이 기술적으로 너무나 쉬워진 세상에서, 아이들의 뇌와 마음은 과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아직 완벽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토이 스토리 5 속 릴리패드가 완벽한 친구가 될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장난감의 눈을 바라보는 미래 세대의 시선에 담긴 과학적 무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는 사실이다.
- 김현정 리포터
- vegastar0707@gmail.com
- 저작권자 2026-06-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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