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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권예슬 리포터
2026-05-27

과자가 주식, 흙이 간식인 원숭이가 있다? 인간의 관광문화가 야생동물의 진화 방향을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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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이 두고간 비스킷을 먹고 있는 지브롤터의 원숭이 ⒸMartin Nicourt/Gibraltar Macaques Project
▲ 관광객이 두고간 비스킷을 먹고 있는 지브롤터의 원숭이 ⒸMartin Nicourt/Gibraltar Macaques Project

스페인 속의 영국 ‘지브롤터’에는 명물이 있다. 바위산에서 자유롭게 서식하는 원숭이다. 지브롤터에 방문한 여행객들은 소지품을 주의하라는 당부를 듣는다. 이곳의 터줏대감인 원숭이들이 관광객의 가방 등 소지품을 낚아채는 것은 물론,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 과자 등 간식까지 뺏어 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이 이 원숭이들에게서 흥미로운 행동을 발견했다. 관광객과 밀접하게 지낸 지브롤터 원숭이들이 흙을 먹는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연구결과는 4월 2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

 

흙 섭취가 정크푸드로 교란된 장내 미생물 구성을 다시 균형 있게 만들어

지브롤터에는 약 230마리의 바바리마카크가 무리를 이뤄 바위산의 서로 다른 지역에 서식한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야생 상태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원숭이 집단이다. 전설에 따르면 8세기 지브롤터의 원숭이들이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의 공격을 감지해 영국군에 경고했고, 그 덕분에 연합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그만큼 지브롤터의 원숭이들은 인간 역사와 깊이 얽혀 있는 상징적인 존재다.

▲ 초콜릿 한 봉지를 다 먹어 치워버린 지브롤터의 원숭이 ⒸMartin Nicourt/Gibraltar Macaques Project
▲ 초콜릿 한 봉지를 다 먹어 치워버린 지브롤터의 원숭이 ⒸMartin Nicourt/Gibraltar Macaques Project

그런데 인간의 문화가 지브롤터 원숭이들의 행동과 문화를 바꾸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2022~2024년 중 총 98일 동안 지브롤터에 서식하는 마카크 집단을 관찰했다. 원숭이 집단에서는 평균 주 12회의 지오파지가 관찰됐다. 이는 영장류에서 기록된 지오파지 빈도 중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곳의 원숭이들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평균 7분 뒤, 빵을 먹고 6분 뒤, 비스킷을 먹고 48분 뒤 흙은 먹는 행동이 보였다. 지브롤터 원숭이 무리에서 의도적으로 흙을 섭취하는 행동인 ‘지오파지(geophagy)’가 정기적으로 관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여러 원숭이 무리를 관찰한 연구진은 관광객과 자주 접촉하는 개체일수록 훨씬 더 많은 흙을 먹으며, 관광 성수기에 흙 먹는 빈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광객들이 많은 지브롤터 정상 부근에 사는 마카크는 다른 지역의 개체보다 관광객의 정크푸드를 먹을 가능성이 2.5배 높았다. 반면, 경사면 아래쪽에 사는 무리에서는 지오파지 사례가 훨씬 적었다. 관광객과 접촉하지 않아 인간 음식에 접근할 수 없는 한 무리에서는 흙을 먹는 행동이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 마카크는 겨울철에 여름보다 관광객의 음식을 먹을 가능성이 약 40% 낮았으며, 이에 따라 지오파지도 겨울철에 약 31% 감소했다.

▲ 지브롤터의 고도 경사와 마카크 원숭이의 서식 범위  ⒸScientific Reports
▲ 지브롤터의 고도 경사와 마카크 원숭이의 서식 범위 ⒸScientific Reports

연구진은 지브롤터 마카크의 지오파지가 정크푸드를 계속 먹기 위한 나름의 생존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원숭이의 자연식은 잎, 씨앗, 곤충 등 고섬유질 식단이다. 이와 달리 인간은 식량 부족 시기에 에너지 밀도가 높은 지방과 당을 찾고, 저장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과 과자 등 정크푸드를 갈망한다. 또한, 인간이 아닌 영장류는 젖을 떼면 유당 불내증이 생기기 때문에 아이스크림과 같은 유제품은 원숭이에게 소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연구책임자인 실뱅 르무안 영국 케임브리지대 고고학과 교수는 “마카크들은 에너지는 높지만 섬유질이 적은 간식과 정크푸드로부터 소화계를 보호하기 위해 흙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섭취한 흙은 소화관에 장벽을 형성해 유해 화합물의 흡수를 제한하고 메스꺼움, 설사 등 다양한 위장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야생 원숭이들의 문화로 자리매김

지브롤터 관리국에서는 매일 원숭이들에게 과일, 채소, 물을 제공한다. 원칙적으로는 관광객이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는 행동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먹이를 주고, 원숭이들이 직접 관광객이 가져온 간식을 찾아내거나 훔쳐 먹는다. 연구진이 관찰한 전체 기간 동안 마카크가 섭취한 음식의 18.8%는 관광객에서 얻은 음식으로 나타났다.

▲ 감자칩을 먹고 있는 지브롤터의 원숭이 ⒸMartin Nicourt/Gibraltar Macaques Project
▲ 감자칩을 먹고 있는 지브롤터의 원숭이 ⒸMartin Nicourt/Gibraltar Macaques Project

이어 연구진은 지브롤터 마카크의 지오파지가 ‘문화’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추가 조사했다. 연구진이 조사한 총 지오파지 사례 중 30%는 여러 개체가 같은 장소에서 함께 흙을 먹는 형태로 나타났다. 또한 전체 사례의 89%는 다른 마카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생했다. 즉, 이 행동이 사회적으로 학습된다는 의미다.

대부분 원숭이들은 지브롤터 전역에서 발견되는 붉은 점토 토양인 ‘테라 로사’를 주로 섭취했다. 그러나 바위산 서쪽 하단에 서식하는 무리는 아스팔트 도로의 움푹 팬 곳에 고인 타르 섞인 흙을 선호했다. 서로 다른 무리가 즐겨 먹는 흙이 다르다는 것은 각 집단 내부에 ‘지역적 전통’이 형성됐음을 시사한다.

르무안 교수는 “지브롤터 마카크의 지오파지는 침팬지의 견과 깨기처럼 기능적이면서도 문화적인 행동이지만, 그 원인이 전적으로 인간과의 근접성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며 “인간과 영장류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인상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브롤터의 다양한 인간 접촉 수준은 인간이 만든 환경이 영장류의 행동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자연 실험을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6-05-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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