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년간 인류는 마늘이 해충을 쫓는다고 믿어왔다. 민간에서는 마늘을 먹으면 모기가 덜 달린다는 말도 전해지고, 심지어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흡혈귀를 물리치는 수단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 오랜 믿음의 과학적 근거가 이번에 실제로 확인됐다. 마늘 속 특정 화합물이 곤충의 미각 신경을 자극해 짝짓기와 산란 행동 자체를 차단한다는 사실이 국제 학술지 Cell에 발표됐다. 화학 살충제를 대체할 안전하고 저렴한 '식물 유래 행동 조절 물질'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다.
43가지 식물 중 마늘만 짝짓기 완전 차단
존 칼슨(John R. Carlson) 예일대 교수 연구팀은 초파리(Drosophila melanogaster)의 짝짓기에 영향을 주는 식물 화학물질을 찾기 위해 43종의 과일과 채소를 각각 퓌레로 만들어 실험 기판에 섞었다. 수컷과 미교미 암컷 초파리 한 쌍이 1시간 안에 교미하는지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연구팀은 이 접근법을 '파이토스크린(phytoscreen)', 즉 식물 화학물질 대규모 탐색법이라고 불렀다.
실험에 쓰인 43종 가운데 바나나, 딸기, 복숭아처럼 초파리가 즐겨 찾는 과일은 물론, 다양한 채소와 버섯까지 포함됐지만 짝짓기를 촉진하거나 억제한 식물은 단 하나도 없었다. 유일한 예외가 마늘이었다. 마늘이 섞인 기판에서는 짝짓기가 완전히 일어나지 않았고, 농도를 낮춰도 억제 효과는 유지됐다. 초파리 7종 가운데 6종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타났으며, 알 낳기(산란) 실험에서도 마늘 기판을 향한 암컷의 기피 반응은 거의 100%에 달했다.
연구팀은 마늘 성분을 가스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GC-MS)으로 분석해 68종의 화합물을 확인한 뒤 그 중 '다이알릴 다이설파이드(diallyl disulfide)'가 교미 억제와 산란 기피를 이끄는 핵심 물질임을 밝혀냈다. 이는 마늘 특유의 냄새와 맛을 결정하는 황 함유 화합물 중 하나인데, 같은 계열이라도 알릴 설파이드나 알릴 메틸 다이설파이드는 동일한 효과를 내지 못했다. 분자 구조가 조금만 달라져도 행동 억제 효과가 사라진다는 의미다.
핵심은 '냄새'가 아니라 '맛'…미각 신경이 방아쇠를 당긴다
마늘의 냄새가 강렬한 만큼 초파리가 냄새만으로도 회피 반응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긴다. 연구팀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그물망으로 마늘과 초파리를 분리해 냄새는 맡을 수 있되 직접 접촉은 불가능한 조건을 만들었다. 그 결과 접촉이 막힌 상태에서는 80%의 초파리가 평소처럼 교미했지만, 접촉이 허용되자 교미율은 0%로 내려갔다. 마늘의 행동 억제는 냄새가 아니라 직접 맛을 보는 미각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어떤 수용체가 이 신호를 전달하는지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11가지 미각 수용체 돌연변이 초파리를 하나씩 검증한 끝에 'TrpA1' 채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TrpA1은 초파리 입 부위 미각 기관의 쓴맛 감지 신경세포에 존재하는 이온 채널로 이 채널이 없는 돌연변이 초파리는 고농도 마늘에도 짝짓기와 산란 억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TrpA1이 수컷이 아닌 암컷에게서만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수컷과 암컷을 각각 돌연변이체로 바꿔가며 실험한 결과, 짝짓기 억제는 암컷의 TrpA1이 제거됐을 때만 사라졌다. 마늘이 암컷의 수용 의사 자체를 꺾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산란 억제 경로도 짝짓기와 다소 다르게 작동한다. 짝짓기 억제에는 다리 미각신경도 일부 관여하지만, 산란 기피는 주로 입 부위 미각신경이 주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입 부위 미각신경을 제거한 돌연변이 초파리는 마늘 기판에 대한 산란 기피 반응을 완전히 잃었다. 주목할 점은 포유류의 TrpA1 역시 마늘의 매운 성분에 반응한다는 사실로 이 채널이 진화적으로 오랫동안 보존되어 온 '마늘 감지 경로'임을 시사한다. 실제로 전기생리학 실험에서 마늘은 쓴맛 감지 신경에서 초당 61회의 신호를 유발했는데, 이는 기존에 보고된 쓴맛 자극 가운데 최상위 수준에 해당한다.
여기에 더해 마늘에 노출된 암컷에서는 포만 호르몬을 만드는 유전자(fit)의 발현도 높아졌다. 마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했을 때처럼 포만 신호가 켜지면서 산란 욕구까지 추가로 억제되는 구조다. 결국 마늘은 미각신경 경로와 호르몬 경로라는 두 개의 독립적인 메커니즘을 동시에 작동시켜 암컷의 번식 행동을 차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모기·체체파리에도 통했다…천적은 살리고 해충만 억제
연구팀은 초파리에서 확인한 효과가 실제 해충에도 적용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뎅기열, 지카 바이러스, 황열 등을 옮기는 흰줄숲모기와 이집트숲모기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진행했다. 마늘에 노출된 흰줄숲모기는 짝짓기율이 62.5%에서 0%로 완전히 차단됐고, 이집트숲모기도 82%에서 50%로 줄었다. 두 종 모두 산란 실험에서도 마늘과 핵심 화합물에 강한 기피 반응을 보였다.
체체파리의 경우도 주목할 만하다. 체체파리는 가축에 물려 트리파노소마 원충을 옮기는데, 이로 인해 발생하는 나가나병은 소, 양, 말 등의 체중 감소와 생산성 저하를 유발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농업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혀왔다. 마늘에 노출된 체체파리 역시 짝짓기가 크게 줄었으며, 연구팀은 마늘이 아프리카에서 쉽게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인 만큼 현지에서 조달 가능한 방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해충의 천적인 기생벌 5종에서는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유전체를 분석한 결과 이들에게는 TrpA1 유전자 자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마늘이 천적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해충만 선택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는 뜻으로, 기생벌과 마늘을 함께 활용하는 통합 방제 전략의 가능성도 열어두는 결과다.
마늘은 저렴하고 안전할 뿐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나 재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장점도 크다. 살충제 내성이 확산되고 생태계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연구팀은 파이토스크린이 다양한 해충과 행동 억제 물질 탐색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식물에서 찾아낸 행동 조절 물질의 작동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이번 연구가 차세대 해충 방제 전략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지 주목된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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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6-05-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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