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꺼낸 1억 년의 비밀 — 화석이 쏟아지는 해변의 지질학
영국 남부 라임 레지스 해안에서 최근 한 아마추어 화석 수집가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해양 악어 화석의 희귀한 파편을 발견했다. 전문 고생물학자들도 흥분할 만한 성과였지만, 사실 이 해안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쥐라기 해안과 와이트섬 일대에서 선사시대 생물의 흔적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수백 년에 걸쳐 반복돼 온 일이기 때문이다.
왜 이 해안들은 이토록 화석이 풍부할까? 답은 지질학에 있다.
침식은 화석의 창문
화석이 생성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유기물이 빠르게 퇴적물에 묻혀 부패 전에 보존돼야 하고, 수억 년 뒤 그것이 지표 가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영국 남부 해안은 이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드문 지형이다.
도싯 주 올드 해리 록스에서 동데번 주 엑스머스까지 약 153킬로미터에 걸쳐 이어지는 쥐라기 해안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이다. 이 해안의 절벽은 트라이아스기부터 쥐라기, 백악기까지 중생대 전체, 이른바 파충류 시대의 퇴적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라임 레지스 박물관의 지질학 큐레이터 폴 데이비스 박사는 이것을 "중생대 전체를 아우르는 레이어 케이크를 멋지게 잘라낸 단면"이라고 표현한다.
핵심은 끊임없이 진행되는 해안 침식이다. 파도가 절벽을 깎아낼 때마다 수백만 년 동안 암석 속에 갇혀 있던 화석들이 해변으로 밀려 나온다. "절벽 위에 집이 있다면 침식이 달갑지 않겠지만, 고생물학자라면 오히려 반긴다"고 데이비스는 말한다. 옥스퍼드셔처럼 최초로 공룡 화석이 발견된 내륙 지역에서는 채석장을 직접 파야 화석이 나오지만, 이 해안에서는 자연이 그 일을 대신 해준다.
쥐라기 해안 — 파충류들의 바다
쥐라기 해안에서 발견되는 화석의 주인공은 대부분 해양 생물이다. 이 일대가 약 1억 8,000만 년 전 쥐라기 초기에 따뜻한 열대 해역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먹이사슬의 정점에는 어룡(ichthyosaur)이 있었다. 현재의 돌고래를 연상시키는 유선형 몸체에 커다란 눈을 가진 이 파충류는 중생대 바다에서 가장 성공적인 대형 포식자 중 하나였다. 어룡보다 희귀하지만 생김새가 더 인상적인 것이 수장룡(plesiosaur)과 플리오사우루스(pliosaur)이다. 수장룡은 넓적한 몸통에 네 개의 지느러미, 길고 뱀처럼 구부러진 목 끝에 작은 머리를 달고 있어 네시 전설의 원형이 된 형태이다. 이 수장룡이 진화하면서 목이 짧아지고 머리가 거대해진 것이 플리오사우루스이다. 2023년 도싯 킴메리지 만 절벽에서 발굴된 플리오사우루스 두개골은 길이만 2미터에 달했다.
물론, 육지나 하늘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강에 씻겨 내려온 공룡 뼈가 해양 퇴적층에 묻히기도 하고, 바다 위를 날던 익룡(pterosaur)의 뼈가 드물게 발견되기도 한다. 다만 데이비스의 말대로 "대부분의 해양 생물은 거대한 포식자가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생물들"이다. 해변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것은 이매패류(조개), 복족류(달팽이), 그리고 암모나이트이다. 오징어처럼 생긴 연체동물이 나선형 껍데기 안에 살았던 암모나이트는 중생대 바다에 무수히 번성했던 생물이다.
와이트섬 — 영국 공룡 다양성의 절정
쥐라기 해안이 주로 해양 생물의 보고라면, 와이트섬은 육상 공룡의 박물관이다.
다이노사우르 아일 박물관의 큐레이터 데이비드 버튼 박사는 약 1억 2,500만 년 전 백악기 초기의 와이트섬을 "영국 공룡 다양성의 절정"이라고 부른다. 당시 이 섬은 유럽 대륙과 이어진 육지였으며, 뜨겁고 건조한 계절과 온난습윤한 계절이 번갈아 찾아오는 지중해성 기후 속에 풍요로운 생태계가 펼쳐져 있었다. 이 섬에서 확인된 공룡 종은 25종이 넘는다.
버튼은 "뿔 달린 공룡, 돔 머리 공룡, 스테고사우루스를 제외한 주요 공룡 그룹이 거의 다 있었다"고 전한다. 카르노사우루스, 용각류, 조각류, 티라노사우루스류, 스피노사우루스류에 드로마에오사우루스로 추정되는 랩터까지 발견되었으며, 최근에는 유럽 최대 육상 포식 공룡으로 기록된 '화이트 록 스피노사우리드'의 잔해가 발견되었다. 컴프토나투스와 이스티오라키스 같은 신종도 잇따라 이름을 올렸다. 이 화석들은 대부분 콤프턴 만에서 샌다운까지 약 17.7킬로미터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는 웨섹스 층이라는 암석군에 보존돼 있다.
화석을 찾고 싶다면?
전문가가 아니어도 이 해변에서 화석을 발견할 수 있다. 공룡들은 지금도 땅속에 묻혀 있고, 파도가 매일 조금씩 그것을 꺼내고 있기 때문이다. 라임 레지스 박물관은 매년 약 6,000명을 데리고 공식 화석 탐사 워크숍을 운영하며, 찰마우스 해안 센터 등 다른 기관들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버튼은 초보자에게 두 가지를 권한다. 첫째, 해변에 이미 떨어져 있는 느슨한 돌덩이와 조각들을 살펴볼 것. 절벽에 박혀 있는 화석을 무리하게 꺼내려 하면 표본이 손상되기 쉽고 낙석 사고 위험도 있다. 둘째, 파도에 굴려진 뼛조각들을 눈여겨볼 것. 버튼은 "인식 가능한 공룡 뼈를 발견하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난다"고 말한다. 위 해변을 제대로 살피며 걷는다면, 공룡 뼈와 마주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6-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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