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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민재 리포터
2026-05-14

개의 가축화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 1만 5천 년 전 동굴에서 찾은 우리의 가장 오래된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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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5천 년 전 동굴에서 찾은 우리의 가장 오래된 친구

영국 남서부 서머셋 주, 체다 고르지의 가우프스 동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숙성 치즈로 유명한 이 지역 땅속 깊은 곳에서 지난 1920년대 발굴된 작은 턱뼈 하나가 수십 년간 박물관 서랍 속에 잠들어 있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9센티미터짜리 뼛조각이었다. 그런데 이 뼛조각이 2026년 3월, 인류와 개의 역사를 통째로 다시 쓰는 주인공이 되었다.

이 뼈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 년 전, 석기시대 인류와 함께 살았던 가축화된 개의 턱뼈였다.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이 뼈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 년 전, 석기시대 인류와 함께 살았던 가축화된 개의 턱뼈였다.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영국 자연사박물관의 박사과정 연구자 윌리엄 마시는 우연히 10년 전 발표된 논문 한 편을 접하게 됐다. 그 논문은 이 턱뼈가 늑대가 아닌 개의 것일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었다. 이에 마시는 직접 DNA 분석에 나섰고, 결과를 보고 경악했다. 이 뼈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5천 년 전, 석기시대 인류와 함께 살았던 가축화된 개의 턱뼈였던 것이다. 이 발견은 '당연히' 네이처에 게재되었으며, 지금껏 알려진 것보다 약 5,000년이나 앞당겨진 개 가축화의 증거가 되었다. 

 

늑대에서 개로 — 가축화는 어떻게 시작됐나

개는 늑대의 후손이다. 이것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어디서 처음으로 인간과 늑대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싹텄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인 문제이다.

지금까지 가장 유력했던 시나리오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가던 무렵, 일부 회색늑대들이 인간 야영지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인간이 남긴 음식 찌꺼기를 먹으며 야영지 주변에 머물렀고, 점차 사람을 덜 두려워하는 개체들이 살아남아 번식하게 되었다. 이 과정이 수백 세대에 걸쳐 반복되면서 늑대는 차츰 길들여진 개로 변해갔는데, 인간이 의도적으로 번식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주둥이는 짧아지고 이빨은 작아졌으며, 소형 애완견부터 대형 경비견까지 폭발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개들이 등장했다.

농경이 시작되기 수천 년 전, 고양이가 인간의 집에 들어오기 한참 전, 심지어 소나 양이 가축이 되기 전부터 이미 개는 인간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Getty Images
농경이 시작되기 수천 년 전, 고양이가 인간의 집에 들어오기 한참 전, 심지어 소나 양이 가축이 되기 전부터 이미 개는 인간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Getty Images

문제는 이 가축화가 언제 처음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디서 시작됐는지였다. 기존에는 약 1만 년 전 중동의 농경 사회가 본격화되면서 여러 동물의 가축화가 시작됐고, 개도 그즈음 탄생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가우프스 동굴의 작은 턱뼈는 이 그림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농경이 시작되기 수천 년 전, 고양이가 인간의 집에 들어오기 한참 전, 심지어 소나 양이 가축이 되기 전부터 이미 개는 인간의 곁에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음식을 나눠 먹은 1만 5천 년의 동반자

이번 연구의 진가는 DNA 분석과 함께 이루어진 화학적 분석이 당시 인간과 개의 관계에 대해 훨씬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자연사박물관의 셀리나 브레이스 박사 연구팀은 유전자 분석으로 유럽 각지와 현재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 중부에서 발견된 비슷한 연대의 뼈들이 모두 개의 것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화학 분석 결과였다. 개들이 먹은 음식의 성분이 당시 함께 살았던 인간들의 식단과 일치했던 것이다. 터키 지역에서는 개와 인간이 모두 물고기를 주식으로 삼았고, 가우프스 동굴에서는 같은 종류의 육류와 식물성 식품을 공유했다.

유럽 각지와 현재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 중부에서 발견된 비슷한 연대의 뼈들이 모두 개의 것임을 확인했다.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유럽 각지와 현재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 중부에서 발견된 비슷한 연대의 뼈들이 모두 개의 것임을 확인했다.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이는 단순히 개가 인간 근처에 살았다는 수준이 아니라, 개가 인간의 식단을 공유했으며, 직접 나눠 먹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1만 5천 년 전 석기시대의 수렵·채집 인류와 그들의 개 사이에는 이미 오늘날 우리가 반려동물과 나누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긴밀한 유대가 존재했던 것이다. 마시는 이를 두고 1만 5천 년 전에 이미 개와 인간이 놀랍도록 긴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며, 이 작은 턱뼈 하나가 그 파트너십이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관한 인류의 이야기 전체를 열어젖히는 데 도움을 줬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DNA가 다시 그린 개의 지도

같은 호에 함께 게재된 두 번째 연구는 이 이야기를 유럽 너머로 확장하고 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와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의 안데르스 베리스트룀 박사 연구팀은 스위스, 스웨덴, 터키, 아르메니아 등 유럽과 근동 지역의 동굴과 유적에서 발굴된 개와 늑대 유골 200여 구의 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가우프스 동굴의 개보다 약간 연대가 낮은 초기 유럽 개들이 시베리아, 동아시아의 개들과 공통 조상을 공유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유럽과 아시아가 각각 독립적으로 개를 가축화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출발한 개들이 이미 빙하기가 끝날 무렵 유라시아 북부 전역으로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적어도 1만 4천 년 전에 이미 유럽에 도달해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개들에게 상당한 유전적 기여를 하고 있다.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그들은 적어도 1만 4천 년 전에 이미 유럽에 도달해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개들에게 상당한 유전적 기여를 하고 있다.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이를 두고, 베리스트룀은 개가 처음 어디서 가축화되었든, 그들은 적어도 1만 4천 년 전에 이미 유럽에 도달해 있었고, 오늘날 우리가 보는 개들에게 상당한 유전적 기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두 연구를 종합하면 인간과 개의 동반자 관계는 농경 문명이 꽃피기 한참 전인 구석기 시대 말,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가 여전히 동굴을 오가던 시절부터 이미 유라시아 대륙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형성돼 있었다는 점이 밝혀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억 가구의 식탁 아래, 개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Getty Images
지금 이 순간에도 수억 가구의 식탁 아래, 개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Getty Images

물론, 인간이 가축화한 동물은 개 말고도 소, 양, 말, 고양이 등이 있다. 하지만, 개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가축들이 대부분 농경 정착 사회 이후에야 인간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된 것과 달리, 인류가 아직 들판을 뛰어다니며 사냥하던 시절, 그 인류의 야영지 불빛 가장자리에서부터 이미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었다. 완벽하게 자신들이 원해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가축화가 된 고양이 같은 경우와 매우 다른 경우라고 보인다. 

1만 5천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개가 인간 곁에서 같은 음식을 나눠 먹었다는 이 사실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억 가구의 식탁 아래, 개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5-1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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