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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민재 리포터
2026-03-20

화학계를 뒤흔든 '하프 뫼비우스' 탄소 고리 분자 위상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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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 위상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수학적 기묘함의 상징인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겉의 구분이 없는 연속된 면으로 오랫동안 예술가와 과학자들에게 여러 가지로 영감을 주어 왔다. 특히, 화학자들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2003년 최초의 뫼비우스 형태 분자가 합성된 이후, 화학자들은 탄소 사슬을 뒤틀어 더 복잡하고 기괴한 구조를 만드는 데 도전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2026년 3월 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를 통해 이전까지 유례가 없던 새로운 형태의 뒤틀림인 '하프 뫼비우스(Half-Möbius)' 탄소 분자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화학자들이 전례 없는 ‘반 모비우스’ 꼬임을 지닌 탄소 기반 분자를 합성했다. ©IBM Research and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화학자들이 전례 없는 ‘반 모비우스’ 꼬임을 지닌 탄소 기반 분자를 합성했다. ©IBM Research and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와 스위스 IBM 유럽 연구소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탄소 사슬을 정확히 90°만 뒤틀어 연결한 고리형 분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는 분자의 물리적·자기적 성질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위상 화학'의 기념비적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180°의 상식을 깬 90°의 미학: 하프 뫼비우스의 탄생

일반적인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기 위해서는 띠의 한쪽 끝을 180° 뒤집어 반대편과 연결해야 한다. 분자 수준에서도 그동안의 시도는 이 '완전한 뒤틀림'에 집중되어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팀은 탄소 원자 13개로 이루어진 고리 구조에서 단 90°의 뒤틀림만을 구현해 냈다.

특히 우리는 이 90°라는 수치가 화학적으로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맨체스터 대학교의 이론 화학자 이고르 론체비치(Igor Rončević) 박사는 "90° 뒤틀림은 시계 방향 혹은 반시계 방향 중 어느 쪽으로 틀었느냐에 따라 분자의 '카이랄성(Chirality, 거울상 이성질성)'이 명확히 결정된다"고 설명하는데, 즉, 왼손 장갑과 오른손 장갑처럼 겉모습은 같지만 서로 겹쳐질 수 없는 두 가지 버전의 분자가 존재하게 되며, 시스템 자체가 뒤틀림의 방향성을 기억하게 된다. 이는 정밀한 분자 제어가 필요한 나노 기술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특성이다.

 

전자 오비탈의 '+' 결합: 공액 구조의 새로운 위상

연구팀이 합성한 13개의 탄소 고리 중 마주 보는 두 개의 탄소 원자는 염소(Cl) 원자와 결합해 있으며, 나머지 11개의 탄소 원자들은 인접한 탄소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이 원자들은 각각 아령 모양의 전자 오비탈을 고리 평면에 수직으로 뻗고 있는데, 이들이 이웃한 오비탈과 전자를 공유하며 '공액(Conjugated)' 구조를 형성한다.

기존 뫼비우스 분자에서는 이 오비탈들이 일직선으로 만나 연결되지만, 하프 뫼비우스 구조에서는 두 오비탈이 '+' 모양으로 만나 90° 뒤틀린 채 결합한다. ©Rončević et al. 2026
기존 뫼비우스 분자에서는 이 오비탈들이 일직선으로 만나 연결되지만, 하프 뫼비우스 구조에서는 두 오비탈이 '+' 모양으로 만나 90° 뒤틀린 채 결합한다. ©Rončević et al. 2026

벤젠이나 그래핀 같은 물질에서 나타나는 공액 구조는 전자가 특정 원자에 머물지 않고 사슬 전체를 자유롭게 이동하며 독특한 전도성이나 강도를 부여한다. 기존 뫼비우스 분자에서는 이 오비탈들이 일직선으로 만나 연결되지만, 하프 뫼비우스 구조에서는 두 오비탈이 '+' 모양으로 만나 90° 뒤틀린 채 결합한다.

IBM 유럽 연구소의 레오 그로스(Leo Gross) 박사팀은 최첨단 원자 현미경 기술을 동원해 이 미세한 뒤틀림을 시각적으로 입증했다. 연구 결과, 하프 뫼비우스 상태의 뒤틀림은 전자가 각 오비탈을 짝수 개로 채우도록 유도하여, 뒤틀리지 않은 상태보다 분자를 훨씬 더 안정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분자는 에너지가 높은 '평면 상태'로 잠시 전이했다가도, 다시 안정한 왼쪽 혹은 오른쪽 뒤틀림 상태로 되돌아오는 복원력을 보였다.

 

자기장 민감성과 '준입자' 연구의 새로운 플랫폼

이 독특한 기하학적 구조는 전자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기존 분자에서는 볼 수 없었던 기이한 물리적 현상을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코펜하겐 대학교의 젬마 솔로몬(Gemma Solomon) 박사는 "이러한 새로운 위상 구조가 자기장에 대한 추가적인 민감성을 열어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언급했다.

해당 결과를 통해서 분자의 특수한 기하학적 구조가 전자의 스핀이나 자기적 효과에 영향을 주어, 차세대 양자 컴퓨팅이나 나노 센서 개발에 필요한 새로운 물리적 상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Rončević et al. 2026
해당 결과를 통해서 분자의 특수한 기하학적 구조가 전자의 스핀이나 자기적 효과에 영향을 주어, 차세대 양자 컴퓨팅이나 나노 센서 개발에 필요한 새로운 물리적 상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Rončević et al. 2026

또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 독일 킬 대학교의 라이너 헤르게스(Rainer Herges) 박사는 이 분자가 고체 물질에서나 관찰되던 '준입자(Quasiparticle)'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연구할 수 있는 훌륭한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분자의 특수한 기하학적 구조가 전자의 스핀이나 자기적 효과에 영향을 주어, 차세대 양자 컴퓨팅이나 나노 센서 개발에 필요한 새로운 물리적 상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프 뫼비우스 분자의 등장은 화학적 합성이 단순히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수학적 위상학을 분자 단위에서 구현하여 극한의 물리 법칙을 탐구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이제 이 뒤틀린 고리 속을 흐르는 전자가 어떤 새로운 물리적 기적을 일으킬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관련 논문 바로 보기

반모비우스 위상 구조를 가진 분자 (A molecule with half-Möbius topology)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3-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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