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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정회빈 리포터
2026-01-20

천천히 성장한 아이들이 더 높은 성취를 낸 이유 조기 영재교육은 벗아웃과 중도 이탈 위험을 키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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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2> 우승자 최강록 셰프는 요리만 바라온 외길 인생은 아니었다. Ⓒ Netflix Korea
<흑백요리사2> 우승자 최강록 셰프는 요리만 바라온 외길 인생은 아니었다. Ⓒ Netflix Korea

천재 과학자로 손꼽히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어린 시절부터 학교 성적이 뛰어난 모범생은 아니었다. 대신 그는 음악과 철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평생에 걸쳐 연구했던 바이올린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과학적 영감을 얻게 도와준 동반자였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한 후 학교에 남아 우연히 서예 수업을 청강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에 쓸모없어 보였던 이 경험 덕분에 훗날 애플의 차별화된 글꼴과 혁신적인 디자인을 탄생시키는 씨앗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2>에서 최종 우승한 최강록 셰프도 요리만 바라본 외길 인생은 아니었다. 고교 시절엔 밴드 드러머를 꿈꿨었고, 처음 열었던 음식점을 폐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요리 학교를 졸업했다. 귀국 후 반찬가게를 열었지만 다시 실패하고 참치 무역회사를 다니던 중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 우승하게 된 케이스다. 자기 분야에서 정상급 성취를 이룬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의 길만을 어릴적부터 파고들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거치며 그 분야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영재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재는 어려서부터 남다르게 육성되어야 한다’는 통념 역시 존재한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영재를 조기에 발견해 전문 교육을 집중 투자하기 위한 영재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특수 교육을 위한 영재학교나 엘리트 스포츠 아카데미, 청소년 음악 콩쿠르 등이 그 예시이다. 이러한 제도의 바탕에는 어릴 때부터 한 분야에서 최대한 많은 연습을 쌓아 놓아야 나중에도 계속 우위에 설 수 있고,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2020년대에 들어 이런 전통적인 조기 영재교육 모델에 의문을 제기하는 증거들이 속속 등장했다. 2024년 스포츠 헬스 저널에 실린 한 연구는 수십명의 고등학생들에 대한 운동 참여 비율을 6년 간 추적 관찰한 결과 단일 종목에 집중할수록 중도에 포기하거나 번아웃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재교육과 같은 조기 전문화 프로그램이 성취를 장기적으로 지속하는 데에는 오히려 불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이를 뒷받침하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독일 라인란트팔츠 공과대학교의 아르네 귈리히 박사 연구팀은 과학, 음악, 스포츠, 체스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성장 경로를 조사했다. 여기에는 노벨상 수상자, 올림픽 메달리스트, 세계 랭킹 1위 체스 거장, 저명한 클래식 음악 작곡가 등 총 3만 4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자료가 포함되었다.

어릴 때 다방면의 경험을 쌓으며 천천히 성장한 아이들이 결국 성인이 되어 세계 최고의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 Science
어릴 때 다방면의 경험을 쌓으며 천천히 성장한 아이들이 결국 성인이 되어 세계 최고의 성취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 Science

 

청소년 1등과 성인 1등은 다른 사람

이들의 성장 경로를 살펴본 결과,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영재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 성과를 이어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세계 청소년 체스 대회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선수들 중 10% 남짓만이 성인이 되어도 세계 10위권에 남아 있었다. 학업의 경우에도 중학교 시절 최상위권이었던 학생들이 대학교 때까지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경우는 9%에 불과했다. 반면, 성인이 되어서 세계적인 성과를 이룬 사람들은 대체로 어린 시절에는 평범한 성적이거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천천히 실력을 키워나간 대기만성 유형이 많았다. 이들은 어릴 때 한 분야에만 몰두하지 않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과학처럼 지적인 영역과 스포츠같이 신체를 쓰는 영역 모두에서 나타났다.

청소년기에 최고의 성적을 냈던 사람들 중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되는 경우는 10% 남짓이었다. Ⓒ Science
청소년기에 최고의 성적을 냈던 사람들 중 성인이 되어서도 유지되는 경우는 10% 남짓이었다. Ⓒ Science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연구진은 세 가지 가설을 제시하며 이를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 가설은 탐색과 매칭(search and match) 가설인데, 이는 여러 분야를 경험할수록 자신의 재능과 흥미를 찾고 가장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어릴 때 한 길만 고집하면 적성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을 경험해 볼 기회가 줄어들지만, 다양한 탐색 기회는 자신의 천직을 찾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학습 자본 증진(enhanced learning capital) 가설은 여러 분야에서 배우는 경험이 장기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 자체를 키운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문제 해결 과정을 거치면서 유연성과 통찰력, 창의력이 강화되고, 매번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학습하는 법을 익혔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한 분야에 집중할 때도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세번째 위험 제한(limited risks) 가설은 일찍 한 분야에만 깊이 몰두하는 것이 성공을 보장하기 보다는 몸과 마음에 부담으로 작용하여 중도 포기 확률이 커질 수 있다는 관점이다. 반면 다양한 활동에 분산 투자하면 신체적, 심리적 부담을 줄이면서 진로 전환의 유연성도 확보할 수 있어 커리어 단절 위험도 낮아진다.

어린 나이에 일찍 한 분야에 깊이 몰두하면 몸과 마음에 부담으로 작용하여 중도 포기 확률이 높아진다. Ⓒ Getty Images
어린 나이에 일찍 한 분야에 깊이 몰두하면 몸과 마음에 부담으로 작용하여 중도 포기 확률이 높아진다. Ⓒ Getty Images

 

폭넓은 경험이 실력을 만든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재교육과 인재 양성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 아이들을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오히려 장기적 잠재력을 제한할 수 있다. 연구진은 어린 시절 두세 가지 분야를 병행하며 폭넓은 경험을 쌓도록 지원하는 것이, 세계적 수준의 성취를 이끌어내는데 더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교육 현장과 가정에서는 아이가 다양한 활동과 학습을 경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한 발 느리더라도 폭넓게 성장하는 것이 결국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 현장과 가정에서는 아이가 다양한 활동과 학습을 경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 Getty Images
교육 현장과 가정에서는 아이가 다양한 활동과 학습을 경험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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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nt discoveries on the acquisition of the highest levels of human performance, Gullich et al., 2025, Science

정회빈 리포터
저작권자 2026-01-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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