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노래, ‘루돌프 사슴코(Rudolph the Red-Nosed Reindeer)’. 노래 속 루돌프는 붉고 빛나는 코 때문에 놀림을 받지만, 안개 낀 어느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의 썰매를 이끌며 안내하는 영웅이 된다. 루돌프의 빛나는 코는 그가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만큼이나 환상적으로 보이지만, 몸에서 빛을 내는 것이 ‘굳이’ 마법의 영역일 필요는 없다. 실제로 많은 동물들이 생물발광(bioluminescence)을 통해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국제대학 해양생물학자 다니엘 드레오(Danielle DeLeo)와 다트머스 대학의 진화생물학자 나다니엘 도미니(Nathaniel Dominy) 등의 전문가가 사이언스 뉴스 (SNExplores)에 밝힌 의견을 바탕으로 루돌프의 코에 대한 비밀을 과학적으로 분석해보자.
생물발광 메커니즘, 그러나 루돌프에게는 불가능?
생물발광은 루시페린(luciferin)이라는 화합물과 루시퍼라제(luciferase) 효소가 산소와 반응해 빛을 내는 간단한 화학 반응으로 이뤄진다. 이 반응은 아귀같은 심해어의 머리에서 흔들리는 청록색 등불, 반딧불의 엉덩이에서 나오는 노란 빛, 심지어 일부 곤충의 붉은 빛까지 다채로운 색상을 만들어낸다.
사실 생물발광은 대체로 파란색 계열이 많지만, 반딧불이나 철도벌레(railroad worm) 딱정벌레, 일부 용고기는 빨간 빛을 내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빨간 빛을 내는 생물들은 대개 어둡고 탁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 능력을 사용한다. 일부 심해어가 빨간 빛을 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빨간 빛은 바닷물 속에서 멀리까지 퍼지지 않아 포식자를 피할 수 있고, 칠흑 같은 심해에서는 짧은 거리를 비추는 용도로 쓸 수 있다. 드레오 박사는 "붉은 빛은 근거리 탐지를 돕지만, 조금 더 먼 곳에 있는 동물들은 그 빛을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격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안개 낀 공기 중에서는 빨간 빛은 안개를 뚫기에 가장 적당한 색이다. 빨간색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색 중 파장이 가장 길다. 파장이 길수록 안개 속 물방울에 의해 산란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루돌프의 빨간 빛나는 코는 안개 낀 조건에서 다른 어떤 빛보다 효과적으로 길을 찾게 할 수 있다.
도미니 다트머스 대학 진화생물학과 교수는 "파란 빛, 녹색 빛, 노란 빛은 산란되지만, 빨간 빛은 멀리까지 도달한다."면서 썰매를 끄는 순록이 빛나는 코를 가진다면 빨간색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다만 순록에서 이런 특성이 진화할 가능성은 ‘매우 매우’ 낮다. 드레오 박사는 “생물발광 동물의 대부분은 해양에 서식하며, 육상 동물 중에 포유류는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썰매 끄는 모습을 봤다면, 파란불?
다시 동화적 상상력을 펼쳐 지상에서 루돌프가 날아가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사람에게는 루돌프의 코가 빨갛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광원이 관찰자를 향해 다가올 때 빛의 파장이 압축돼 더 파랗게 보이고, 멀어질 때는 파장이 늘어나 더 빨갛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급차가 다가올 때 사이렌 소리가 높게 들리다가 멀어지면 낮게 들리는 것과 같은 원리다. 소리의 파동이 압축되고 늘어나듯 빛의 파동도 같은 방식으로 변한다. 천문학에서는 이를 각각 청색편이(blueshift)와 적색편이(redshift)라고 부르며, 멀리 있는 별이나 은하가 우리에게서 멀어지는지 가까워지는지를 판단하는 데 활용한다. 실제로 호주 시드니대학의 전파천문학자 로라 드리센(Laura Driessen) 교수는 "우리 주변에서 이런 현상을 보통 보지 못하는 이유는 적색편이나 청색편이가 일어나려면 물체가 정말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산타의 썰매를 끄는 루돌프의 붉은 코는 어떻게 보일까.
드리센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모든 아이들의 집을 방문하려면 산타는 시속 820만 km(광속의 약 1%)로 하늘을 가로질러야 한다. 굴뚝을 통해 들어가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 선물을 놓고 우유와 쿠키를 즐길 시간까지 고려하면 더 빨리 움직여야 할 수도 있다. 또 도시의 아파트에서 배달 라이더와 마주치지 않으려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도 없으니 계단을 날아다니는 수준으로 움직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세워 만약 산타가 광속의 10%로 움직인다면, 루돌프가 집에 다가올 때 그의 코는 청색편이로 주황색으로 보일 것이다. 반대로 선물을 놓고 다음 집으로 멀어질 때는 적색편이로 인간의 눈이 볼 수 있는 가장 짙은 진홍색, 거의 검은색에 가까워 보일 것이다. 원래의 빨간색은 오데간데 없고, 다가올 때와 멀어질 때 전혀 다른 색깔로 보이는 ‘잔혹 동화’가 펼쳐지는 셈이다.
루돌프가 끄는 썰매의 색도 변한다?
루돌프와 산타 콤비는 시속 820만 km로 이동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본래의 색을 잃는다. 도플러 효과(Doppler effect)는 빛을 포함한 모든 파동에 적용되기 때문에 루돌프의 코 색깔이 바뀌어 보이는 것처럼 썰매 전체의 색깔도 변해 보이는 게 맞다. 또, 루돌프의 갈색 털도 청색편이를 겪으면서 초록빛을 띠게 된다.
드리센 교수는 “이들의 이동 속도를 감안하면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녹색 썰매와 녹색 순록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그러다 산타가 잠깐 멈춰서 굴뚝으로 선물을 던져 넣는 동안에는 모든 것이 정상 색깔로 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 흥미로운 일은 썰매가 멀어질 때 벌어진다. 적색편이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산타와 순록은 우리 눈에 보이는 빨간색 영역을 넘어 적외선 영역으로 이동한다. 적외선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파장이기 때문에 썰매 일행은 말 그대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마치 투명망토를 쓴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빠른 움직임과 밝게 빛나는 코는 루돌프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생물발광 자체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한 생리 현상이지만, 여기에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다니는 것까지 더해지면 에너지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도미니 교수는 "루돌프가 최대한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당분이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를 위해 간식을 준비한다면 루돌프와 순록들을 위해서도 쿠키를 충분히 놓아두는 것이 좋겠다. 루돌프는 산타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할 테니까.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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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12-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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