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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시간대 논쟁: 말레이시아는 정말 '잘못된' 시간에 살고 있는것일까 과학과 정책 사이의 간극을 보이고 있는 말레이시아 시간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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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시간대 논쟁: 말레이시아는 정말로 '잘못된' 시간에 살고 있는것일까?

말레이시아 투자무역산업부 장관 텡쿠 자프룰 아지즈가 지난주 사바주 코타키나발루에서 올린 소셜미디어 게시물이 예상치 못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곳은 해가 일찍 떠서 오전 6시에 달리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는 그의 일상적인 운동 인증은 40년 넘게 이어진 국가적 논쟁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말레이시아는 과연 '잘못된' 시간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1982년 당시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는 말레이시아 반도의 시계를 30분 앞당겨 보르네오섬의 사바와 사라왁주와 시간대를 통일했다. 국가 통합과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단행된 이 조치는 말레이시아 전역을 단일 시간대(GMT+8)로 묶었지만, 동시에 반도 지역 주민들의 생활 패턴을 천문학적 실제 시간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현재 말레이시아 반도에서는 태양이 대략 오전 7시에 떠오르는데, 이는 동말레이시아보다 약 1시간 늦은 시각이다.

이 시간대 변경이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 Getty Images
이 시간대 변경이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 Getty Images

이 시간대 변경이 현재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학교가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하는 말레이시아에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등교 전 겨우 30분의 일광만 누릴 수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또한 해가 상대적으로 일찍 지기 때문에 많은 직장인들이 퇴근하거나 통근하는 시간에 이미 어두워지며, 일몰 후 한참 지나서야 저녁 식사를 하게 된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정부가 반도 지역의 시계를 1시간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언론들은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지리적 위치와 시간대의 불일치

말레이시아의 시간대 선택이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지리적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다. 수도 쿠알라룸푸르는 태국의 방콕,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와 거의 같은 경도에 위치해 있지만, 이들 도시보다 1시간 빠른 시간을 사용한다. 반면 쿠알라룸푸르는 동쪽으로 약 2,500킬로미터 떨어진 필리핀의 마닐라와 같은 시간대(GMT+8)를 공유한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반도 남단에 위치하며 1982년 말레이시아의 결정에 따라 "사업가와 여행자들의 불편을 피하기 위해" GMT+8로 이동했다.

이러한 지리적 불일치는 역사적 우연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일본 점령군의 명령으로 도쿄 시간에 맞춰 GMT+9를 사용해야 했다. 전후 말레이시아 반도는 전쟁 이전 시간과 점령기 시간의 중간점인 UTC+7:30을 채택했다가, 앞선 설명처럼 1982년 1월 1일 GMT+8로 최종 이동했다. 현재 동남아시아는 GMT+7과 GMT+8 시간대로 거의 균등하게 나뉘어 있으며, 말레이시아 반도와 싱가포르는 지리적으로는 서쪽에 위치하면서도 동쪽 시간대를 사용하는 이례적인 사례가 되었다.

 

생체리듬과 건강에 대한 논쟁

시간대 변경 반대론자들은 늦은 일출과 이른 일몰이 말레이시아인들의 '서캐디언 리듬'(circadian rhythm: 일주기 리듬)을 교란한다고 주장한다. 서캐디언 리듬은 빛과 어둠에 의해 조절되는 24시간 주기의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 변화를 의미하며, 인간의 수면-각성 주기, 호르몬 분비, 체온 조절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일부 시민들은 시간대 변경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으며, 특히 아침 등교와 출근 전 충분한 일광 노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서캐디언 리듬은 빛과 어둠에 의해 조절되는 24시간 주기의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 변화를 의미하며, 인간의 수면-각성 주기, 호르몬 분비, 체온 조절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 Getty Images
서캐디언 리듬은 빛과 어둠에 의해 조절되는 24시간 주기의 신체적, 정신적, 행동적 변화를 의미하며, 인간의 수면-각성 주기, 호르몬 분비, 체온 조절 등 다양한 생리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 Getty Images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는 신중하다. 말레이시아 국립대학교의 임상심리학자 마하디르 아마드는 1시간 차이가 광범위한 건강 문제를 일으킬 만큼 충분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수면-각성 주기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수면 루틴이 멜라토닌 생성을 억제하지 않는 한, 낮과 밤의 주기에 따라 잠들고 깨어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까지의 연구들은 수면 부족과 서캐디언 리듬의 불일치가 인지 기능 저하와 기분 장애를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지만, 말레이시아의 시간대 선택이 이러한 문제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지역 연구는 부족하다.

임상영양사 누룰 아킬라 하산 아샤아리는 "올바른" 시간대를 따르는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일부가 말레이시아보다 나쁜 건강 지표를 보인다고 지적하며, 식습관, 운동, 근무 시간과 같은 사회적 행동이 정확한 일출 시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로서는 말레이시아의 건강 문제가 세계 시간대 지도상의 위치보다는 생활방식에 의해 더 크게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 통합을 위한 단일 시간대 제안

시간대 논쟁의 또 다른 축은 개인 건강이 아닌 경제적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25년 1월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 회장 압둘 와히드 오마르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전체가 단일 시간대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안한 시간대는 자국에 유리한 GMT+8이었다. 그는 이것이 "ASEAN을 강력한 경제 블록으로 더욱 통합"하고 중국, 홍콩, 대만과 시간대를 맞출 것이라고 비즈니스 포럼에서 밝혔다.

싱가포르 역시 GMT+8을 사용하며 이 제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이 아이디어는 1995년 당시 싱가포르 총리 고촉통이 처음 제기했고, 2006년과 2015년 말레이시아가 ASEAN 의장국을 맡았을 때 다시 부상했다. 단일 시간대 채택은 상당한 변화를 요구한다.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은 GMT+7에서 이동해야 하며, 방콕과 하노이도 과거에 이 아이디어를 논의한 적이 있다. 현재 GMT+6:30을 사용하는 미얀마는 시계를 1시간 반 앞당겨야 한다.

경제적 통합을 위한 단일 시간대 제안은 이루어질까? ⓒ Getty Images
경제적 통합을 위한 단일 시간대 제안은 이루어질까? ⓒ Getty Images

이에 가장 큰 도전은 인도네시아가 직면할 것이다. 이 광대한 군도 국가는 GMT+7, GMT+8, GMT+9의 세 개 시간대에 걸쳐 있으며, 대부분의 주요 도시가 위치한 자바섬은 GMT+7을 따른다. 2012년부터 단일 GMT+8 시간대로 통일하는 방안이 간헐적으로 논의되었지만, 이 제안은 반복적으로 연기되었고 결코 시행되지 않았다. 현재 동남아시아는 GMT+7과 GMT+8로 거의 균등하게 나뉘어 있으며, 말레이시아 반도와 싱가포르가 지리적 이례 사례로 남아 있다.

 

과학과 정책 사이의 간극

지난해 시간대 문제가 의회에까지 상정되었을 때, 당시 투자무역산업부 장관 류친통은 시간대 변경이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정부가 변경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는 시간대 선택이 단순히 과학적 또는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경제적, 정치적 고려사항을 포함한다는 복잡성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시간대는 국제 무역, 금융 시장 운영, 통신, 교통 등 현대 경제의 핵심 요소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말레이시아가 시간대를 변경하면 싱가포르와의 시간 차이가 생기고, 이는 양국 간 긴밀한 경제 관계에 실질적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동아시아 주요 시장들과의 시간대 정렬은 금융 및 무역 거래에서 중요한 이점을 제공한다. 주식 시장 개장 시간, 국제 회의 일정, 항공편 스케줄 등 수많은 시스템이 현재 시간대를 전제로 구축되어 있어, 변경에는 막대한 조정 비용이 따른다.

한편 쿠알라룸푸르의 한 주요 은행에서 근무하는 모드 라만은 "최근 마닐라 출장에서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몇 시간의 햇빛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조지타운에 사는 두 자녀의 어머니 시티 압둘라는 "과학은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간대 변경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등굣길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개인의 일상적 경험과 국가 차원의 경제적 고려사항 사이의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5-12-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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