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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현정 리포터
2025-11-03

2천 년 침묵 깬 ‘신들의 도시’, 테오티우아칸 문자 해독되다 코펜하겐대 연구진, 우토-아즈텍어 재구성해 벽화 속 기호 해독… "아즈텍은 테오티와칸 직계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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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 전 세워진 고대 도시의 침묵이 깨어나다

지중해 세계가 로마 제국의 질서 아래 ‘팍스 로마나’를 누리던 시기, 지구 반대편 메소아메리카에서는 또 다른 거대 문명이 피어나고 있었다. 멕시코시티 북동쪽 50㎞ 떨어진 곳, 높이 65m에 달하는 ‘해의 피라미드’와 43m 높이의 ‘달의 피라미드’가 솟은 곳, ‘죽은 자들의 거리’라 불리는 2㎞ 대로를 따라 신전과 궁전이 늘어서 있는 ‘테오티우아칸’에서. 

기원전 1세기경에 세워진 테오티우아칸은 전성기에는 약 12만 5천 명이 거주했고, 20㎢에 달하는 도시 면적을 보유하며 600년 동안 번영한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천문학적으로 정밀하게 설계된 도시 구조, 다층 아파트 건물, 화려한 벽화를 남겨 오늘날에도 그 기술력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로마가 수천 개의 기록을 남겼지만, 테오티우아칸은 이름도 언어도 사라진 채 침묵 속에 남았다.

매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이 신비로운 도시를 찾지만, 누가 이곳을 세웠고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테오티우아칸은 단순한 종교 중심지가 아니라 고도의 기술과 철학으로 조성된 국가였음에도, 마야나 아즈텍과 달리 역사 속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즈텍이 이곳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폐허였고, 그들은 경외심을 담아 ‘신들의 도시’라는 뜻의 나와틀어 이름인 ‘테오티우아칸’을 붙였지만 실제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그누스 파라오 한센(Magnus Pharao Hansen) 코펜하겐대학교 교수와 크리스토퍼 헬름케(Christophe Helmke) 박사가 국제 학술지 커런트 앤트로폴로지(Current Anthropology)에 발표한 논문이 이 오랜 미스터리를 풀 열쇠를 제시했다. 이번 달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테오티우아칸 벽화와 도자기에 새겨진 기호들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실제 문자 체계이며, 이를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테오티와칸의 달의 피라미드에서 해의 피라미드를 바라본 모습. Ⓒwikimediacommons 
테오티와칸의 달의 피라미드에서 해의 피라미드를 바라본 모습. Ⓒwikimediacommons 

문자 해독의 돌파구를 찾다

연구진이 제시한 핵심 가설은 테오티우아칸 문자가 우토-아즈텍어족(Uto-Aztecan)의 고대 형태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이 언어 계통은 수백 년 뒤 아즈텍 제국의 나와틀어로 발전했고, 오늘날에도 멕시코 원주민이 사용하는 코라어, 위촐어의 뿌리가 된다. 연구진은 테오티우아칸 전역의 벽화와 도자기에서 발견된 100개 이상의 기호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구조화된 언어 체계의 증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기호의 해독 작업은 두 개의 거대한 난제를 동시에 풀어야 하는 도전이었다. 첫째, 문자 체계 자체의 작동 원리를 밝혀내야 했다. 둘째, 2천 년 전에 사라진 언어를 재구성해야 했다. 퍼즐과 퍼즐 풀이 규칙을 동시에 찾아내야 하는 두 과제를 병행하는 연구진은 '언어학적 고고학' 방법론을 새롭게 개발했다.

논문에 따르면 테오티우아칸 문자의 핵심은 표의문자(logogram)와 레부스(rebus) 원리의 결합이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그림은 그 자체를 가리킨다. 코요테를 그린 기호는 '코요테'라는 동물을 뜻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같은 코요테 그림이 다른 문맥에서는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 이때 그림은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대상을 부르는 '소리'를 나타낸다. 이 소리를 조합해 원래 그림과 무관한 단어를 만드는 것이다.

영어로 비유하면 'bee'(벌) 그림과 'leaf'(잎) 그림을 나란히 놓아 'belief'(믿음)라는 추상 개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림은 더 이상 벌과 잎을 뜻하지 않는다. 단지 그 소리를 빌려줄 뿐이다. 테오티우아칸 서기관들도 바로 이 방식으로 추상 개념이나 복잡한 단어를 기록했다.

테오티우아칸 벽화에서 말하는 장면과 의례 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된 문자 기호들의 예시. ⒸUniversity of Copenhagen
테오티우아칸 벽화에서 말하는 장면과 의례 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된 문자 기호들의 예시. ⒸUniversity of Copenhagen

더불어 연구진은 여기서 더 정교한 층위를 발견했다. '이중 철자법(double spelling)'으로 명명한 이 기법은 서기관들이 기호를 쌍으로 배치해 의미나 소리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하나의 기호가 시각적 의미(표의문자 기능)와 음성적 가치(음절문자 기능)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었다. 이는 마야 문자나 후대 메소아메리카 문자 체계에서도 발견되는 고도로 정교한 언어학적 기법이다. 이런 이중 체계의 존재는 테오티우아칸 문자가 단순한 그림 기호가 아니라 완전히 발달한 문자 체계였음을 보여준다.

한센 교수는 이번 연구가 테오티우아칸 기호들이 고립된 상징이 아니라 유연하게 조합 가능한 진짜 문자 체계로 작동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전에는 그 시대에 맞는 언어를 사용해 이 문자를 해독하려 한 연구가 없었다. 또한 특정 표의문자가 본래 의미 외의 맥락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음성적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테오티우아칸 문자 체계를 구성하는 표의문자 기호들. ⒸUniversity of Copenhagen
테오티우아칸 문자 체계를 구성하는 표의문자 기호들. ⒸUniversity of Copenhagen


사라진 언어를 되살린린다. 

문자 체계의 원리를 밝혀냈지만, 이것만으로는 해독할 수 없었다. 레부스 퍼즐을 풀려면 당시에 사용한 언어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진은 2천 년 전에 이미 사라진 테오티우아칸어를 복원하기 위해 역사언어학의 비교재건법(comparative reconstruction)을 동원했다. 현대 나와틀어, 코라어, 위촐어를 비교 분석하고 음운론적 특징을 추적해 이들의 공통 조상 언어를 역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언어의 DNA를 분석해 조상의 모습을 복원하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헬름케 박사는 "언어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언어와 가까운 형태를 사용해야 한다.“라며 당시의 언어 복원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구진은 테오티우아칸 전성기인 4~6세기의 우토-아즈텍어를 재구성하여 여러 기호에 대한 구체적인 새 해독안을 제시했다. 특정 기호들이 재구성된 우토-아즈텍 조어(Proto-Uto-Aztecan)의 단어 및 음절과 어떻게 대응되는지 보여주었다. 핵심은 기호의 음성적 가치를 파악하고, 동일한 기호가 본래 의미와 다른 맥락에서 음성 기호로 사용되는 사례를 증명한 것이다. 이는 테오티우아칸이 진정한 문자 체계를 보유했다는 최초의 체계적 증거다.

하지만 마야 문자처럼 수천 개의 비문을 분석한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료가 짧은 기호 군집이 벽화와 도자기에 흩어져 있는 상황은 연구의 한계로 이어진다. 

한센 박사는 "테오티우아칸에서는 여전히 텍스트가 새겨진 도자기를 발견할 수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벽화가 나타날 것을 예상한다면 우리 연구의 명백한 한계는 텍스트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테오티와칸 도자기에 새겨진 문자 기호들. 연구진은 이처럼 벽화와 도자기에 흩어진 짧은 기호 군집을 분석해 일관된 사용 패턴을 찾아냈다. ⒸUniversity of Copenhagen
테오티와칸 도자기에 새겨진 문자 기호들. 연구진은 이처럼 벽화와 도자기에 흩어진 짧은 기호 군집을 분석해 일관된 사용 패턴을 찾아냈다. ⒸUniversity of Copenhagen

 

잊혀진 문명의 베일을 벗기다

텍스트 자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가 지닌 의미는 크다. 

테오티우아칸은 마야나 아즈텍과 달리 오랫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문명으로 남아 있었다. 마야 문명은 수천 개의 비문과 코덱스를 남겼고, 1950년대부터 본격화된 문자 해독 작업으로 그들의 왕조, 전쟁, 의례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아즈텍 역시 스페인 정복 당시 원주민과 스페인 기록자들이 남긴 방대한 자료가 있다.

반면 테오티와칸은 도시 중심부가 불에 타 주민들이 모두 떠나면서 서기 600년경 갑작스럽게 쇠퇴했다. 후대 사람들은 이곳의 거대한 건축물을 보고 '신들의 도시'라는 뜻의 '테오티우아칸'이라는 나와틀어 이름을 붙였지만, 마야처럼 긴 역사 서사를 담은 비문도, 아즈텍처럼 스페인 정복기의 상세한 기록도 없었다. 남은 것은 벽화와 도자기에 흩어진 짧은 기호들뿐이었다.

게다가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이 기호들이 진짜 문자인지조차 논쟁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 단순한 종교 상징이나 장식용 그림문자일 뿐 언어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테오티우아칸의 기호들이 다른 메소아메리카 문자처럼 음성적 가치를 지니고, 레부스 원리로 작동하며, 특정 언어를 기록한다는 언어 체계가 밝혀지지 않았던 이유다.

따라서 이번 발견은 바로 이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즈텍이 테오티우아칸 붕괴 후 중앙 멕시코로 이주한 외부 집단이라고 여겨졌던 기존 학설을 대신해 나와틀어 사용 집단이 훨씬 더 일찍, 테오티우아칸 시대부터 이 지역에 있었다는 언어적 연속성이 밝혀진 덕분이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를 통해 이것이 확인된다면 아즈텍은 사라진 문명의 후계자가 아니라 테오티우아칸의 직계 후손이 되며, 중앙 멕시코의 문화사는 다시 써야 할 것라고 말했다.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The Language of Teotihuacan Writing, Hansen et al., 2025, Current Anthropology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1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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