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가스병?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
중남미 지역의 토착 질병으로 여겨졌던 샤가스병(Chagas disease)이 미국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2025년 9월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통해 샤가스병을 미국 내 "풍토병"으로 분류할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 이는 샤가스 병이 더 이상 '수입된' 열대병이 아닌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고유한 공중보건 위험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샤가스병은 참고로 1907년 브라질 의사 카를로스 샤가스(Carlos Chagas)가 발견한 질병으로, 트리파노소마 크루지 (Trypanosoma cruzi) 기생충에 의해 발생한다. 이 기생충은 트리아토민 벌레라고 불리는 흡혈 곤충의 배설물을 통해 전파되며, 이 벌레가 주로 얼굴 부위, 특히 입술이나 눈꺼풀 같은 얇은 피부 부위를 물기 때문에 '키스 벌레(kissing bug)'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샤가스병을 "소외열대질환"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700만 명 이상이 감염되어 있고 매년 약 1만 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했다. 이 질병은 주로 중남미의 빈곤 지역에서 만연하여 "가난한 자들의 질병"이라고도 불린다.
미국 내 풍토병 분류 배경
현재 미국에서는 8개 주에서 자생 감염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며, 텍사스주가 가장 많은 감염자를 기록하고 있다. CDC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텍사스주에서는 2013년부터 2023년까지 매년 지속적으로 현지 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미국 내 총 감염자 수는 현재 약 30만 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대부분은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이지만 현지 감염 사례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테네시, 루이지애나, 미주리, 미시시피, 아칸소주에서도 현지 감염 사례가 확인되었다. 전체적으로 32개 주에서 키스 벌레의 존재가 확인된 상태이다.
중요한 점은 풍토병 분류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의료진과 수의사들의 질병 인식 제고, 진단 역량 강화, 공중보건 대응 체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다. 현재 비풍토병 지역으로 분류된 미국에서는 의료진들의 샤가스병에 대한 인식이 낮아 적절한 감별진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과소 보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매개체의 생태학적 특성
트리아토민 벌레는 미국 남부 지역에 11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가장 다양성이 높은 지역은 텍사스 남서부와 애리조나 남중부이다. 텍사스주에서는 트리아토마 게르스태케리(Triatoma gerstaeckeri), 트리아토마 인딕티바(T. indictiva), 트리아토마 렉티큘라리아(T. lecticularia), 트리아토마 산귀수가(T. sanguisuga), 트리아토마 프로트랙타 우디(T. protracta woodi) 등 5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들 벌레는 주로 진흙, 초가지붕, 어도비 건물의 벽 틈이나 지붕 틈에 서식하며, 낮에는 숨어 있다가 밤에 활동한다. 감염된 벌레가 사람이나 동물을 물고 난 후 배설하는데, 이때 배설물에 포함된 기생충이 상처 부위나 눈, 입을 통해 인체에 침입한다. 물린 부위를 긁거나 비비는 행위를 통해 기생충이 체내로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반려동물, 특히 개가 중요한 감염 매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텍사스주 주거지역 연구에 따르면, 채집된 트리아토민 벌레의 69-82%가 트리파노소마 크루지에 감염되어 있었다. 개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벌레의 혈액 공급원이자 기생충 저장소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문제는 증상과 진단의 어려움
샤가스병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된다. 먼저 급성기에는 감염 후 수주에서 수개월 동안 대부분의 환자가 무증상이거나 경미한 증상만을 보인다. 일부에서는 발열, 피로, 상처 주변 부종 등의 비특이적 증상이 나타나며, 특징적인 증상으로는 눈꺼풀 부종(로마냐 징후)이 있다. 이는 대개 한쪽 눈꺼풀의 무통성 부종으로 나타나며 결막염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이러한 초기 증상들이 사라진 후에도 기생충이 체내에 남아있다는 점이다. 수년간의 잠복기를 거쳐 만성기로 진행되면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 심근염, 심부전, 부정맥 등의 심장 질환과 식도 및 대장의 병적 확장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감염자의 최대 30%가 이러한 합병증을 경험한다.
진단은 급성기에는 혈액에서 기생충을 현미경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지만, 만성기에는 항체 검사가 주요 진단 도구가 된다. 하지만 단일 혈청학적 검사로는 민감도와 특이도가 충분하지 않아, 서로 다른 항원을 사용하는 두 개 이상의 검사를 통해 감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치료와 예방 대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아쉽게도 현재까지 샤가스병에 대한 백신은 개발되지 않았다. 치료는 니푸르티목스(Nifurtimox)와 벤즈니다졸(Benznidazole)이라는 두 가지 항기생충제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들은 급성기에 특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두 약물 모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미국에서는 대개 입원 치료 시에만 투여된다. 유럽연합에서는 아직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만성기 환자의 경우 치료가 증상 완화에 그치며, 질병의 진행을 막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감염 지역에서의 철저한 방충 대책을 권장한다. 살충제 처리된 방충망 사용, 집 벽면의 틈새 밀봉, 특화된 해충 방제 등이 도움이 된다.
반려동물의 경우 수의사들은 진드기와 벼룩 방제에 사용되는 약물을 권장하고 있다. 또한 혈액 공급에 대한 안전성 확보를 위해 많은 국가에서 헌혈 시 기생충 검사를 정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2007년부터 혈액 공급원에 대한 샤가스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약 27,500명 중 1명이 양성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과제와 대응 전략
앞선 설명처럼 미국에서의 풍토병 분류는 단순히 명칭 변경이 아닌 실질적인 대응 체계 변화를 의미한다. 즉, 샤가스병의 미국 내 풍토병 인정은 의료계와 공중보건 당국에게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시한다. 이 "조용한 살인자"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고위험 지역 거주민과 의료진의 인식 제고, 진단 역량 강화, 예방 대책 수립이 종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한 매개체 서식지 확장 가능성을 고려할 때, 선제적 대응 체계 구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전문가들은 의과대학 교육과정 개선을 통해 차세대 의료진들이 현지 감염 위험을 인식하고 적절한 진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중남미 등 다른 지역에서 감염된 환자들에 대한 진단과 치료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특히 중요한 것은 표준화된 사례 조사와 분류 체계 구축이다. 여행력, 트리아토민 벌레 노출력, 적절한 서식지 근접성 등을 포함한 체계적인 데이터 수집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감염 경로를 정확히 파악하고 효과적인 예방 대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매개체 서식지 변화도 주목해야 할 요소이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풍토병 감염 지역의 경계가 북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는 현재 비감염 지역으로 여겨지는 곳에서도 새로운 감염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9-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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