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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현정 리포터
2025-09-18

못생긴 ‘심해어’, 새로운 계보 등장하나 동태평양 캘리포니아 심해에서 발견된 새로운 달팽이물고기 3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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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심해 4,000미터에서 세 종의 새로운 달팽이물고기가 발견되었다. 뉴욕주립대학교 연구팀이 2019년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채집한 이들 종은 6년간의 정밀 분석을 거쳐 각각 독특한 진화적 특성을 가진 별개의 종임이 확인되었다. 특히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 두 검은색 개체가 유전자 분석 결과 서로 다른 종으로 판명되면서, 심해에 우리가 모르는 '숨겨진 생물다양성'이 광범위하게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발견은 극한 환경에서의 생물 적응과 기후변화 시대 해양 생태계 이해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구 표면의 71%를 덮고 있는 바다는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특히 수심 3,000미터 이하의 심해대는 햇빛이 전혀 닿지 않고, 극저온과 수백 기압의 압력이 지배하는 극한 환경이기 때문에 인류가 실제로 탐사한 영역은 전체 바다의 5% 미만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접근 불가능해 보이는 공간에서 최근 새로운 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태평양 심해에서 채집된 세 종의 달팽이물고기가 그것이다. 분홍빛 돌기가 돋아난 울퉁불퉁한 개체부터 온몸이 새까만 ‘유령’ 같은 물고기까지, 특이한 외형은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캘리포니아 연안 심해 3,000~4,000미터에서 발견된 새로운 달팽이물고기 3종이 발견되었다. ⒸIchthyology & Herpetology
캘리포니아 연안 심해 3,000~4,000미터에서 발견된 새로운 달팽이물고기 3종이 발견되었다. ⒸIchthyology & Herpetology

 

6년간의 연구 끝에 확인된 새로운 종들

이번 발견은 뉴욕주립대학교 제네시오 캠퍼스의 맥켄지 거링어 교수 연구팀이 주도했다. 연구팀은 2019년 캘리포니아 연안에서 유인 잠수정 알빈(HOV Alvin)과 무인 탐사선 독 리케츠(ROV Doc Ricketts)를 이용해 3,268~4,119미터 수심에서 달팽이물고기 세 마리를 채집했다. 이후 6년에 걸친 형태학적 분석과 유전자 연구 끝에 이들이 모두 새로운 종임을 확인했고, 국제 학술지 Ichthyology & Herpetology 최신호에 보고했다.

새롭게 명명된 종은 ▲케어프로크투스 콜리쿨리(Careproctus colliculi, ‘울퉁불퉁한 달팽이물고기’) ▲케어프로크투스 얀세이(Careproctus yanceyi, ‘어두운 달팽이물고기’) ▲파랄리파리스 엠(Paraliparis em, ‘매끈한 달팽이물고기’)이다. 각 종은 채집된 수심과 외형적 특징이 뚜렷이 달랐다. 콜리쿨리는 분홍빛 몸에 작은 돌기가 밀집되어 있고, 얀세이는 4,119미터 심해에서 발견된 온몸이 검은 개체다. 반면 파랄리파리스 엠은 흡착판이 없고 옆으로 납작한 긴 몸에 투명한 꼬리를 가져 다른 두 종과 구별된다.

 케어프로크투스 콜리쿨리(울퉁불퉁한 달팽이물고기)의 형태학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위로부터 채집 직후 모습, 보존 표본, 마이크로CT 스캔 이미지, 복부 흡착판 구조. ⒸIchthyology & Herpetology
케어프로크투스 콜리쿨리(울퉁불퉁한 달팽이물고기)의 형태학적 특성을 볼 수 있다. 위로부터 채집 직후 모습, 보존 표본, 마이크로CT 스캔 이미지, 복부 흡착판 구조. ⒸIchthyology & Herpetology

 

같은 장소·다른 종, 유전자 분석으로 밝혀진 숨겨진 생물 다양성

연구팀은 미토콘드리아 DNA의 COI 유전자와 16S rRNA 유전자를 분석해 이들의 진화적 관계를 추적했다. 

그 결과 파랄리파리스 엠은 무려 18,000km 떨어진 인도양 크로제 분지에서 발견된 P. wolffi와 99.69%라는 높은 유전적 유사성을 보였다. 또한 케어프로크투스 콜리쿨리는 남극해에서만 알려졌던 오스테오카레프로크타 분계군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태평양의 달팽이물고기들이 극지방의 조상으로부터 기원해 심해로 퍼져 나갔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외형이 비슷해 혼동되었던 두 검은색 달팽이물고기, 케어프로크투스 얀세이와 파랄리파리스 엠 역시 유전자 분석 결과 서로 다른 종으로 판명되었다. 

두 종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채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DNA 유사성은 94.97%에 그쳤다. 이는 심해 생태계에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숨겨진 생물다양성(cryptic diversity)’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영상이나 사진만으로는 동일한 종으로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전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어온 별개의 생물일 수 있다는 의미다. 

케어프로크투스 콜리쿨리의 마이크로 CT 스캔 형태학 분석으로, 머리 길이 21.6mm인 개체의 측면도(A), 위턱·아래턱·인두턱의 치아 형태(B), 복부 흡착판의 복면도(C)를 보여준다.
케어프로크투스 콜리쿨리의 마이크로 CT 스캔 형태학 분석으로, 머리 길이 21.6mm인 개체의 측면도(A), 위턱·아래턱·인두턱의 치아 형태(B), 복부 흡착판의 복면도(C)를 보여준다. ⒸIchthyology & Herpetology

 

극한 환경이 빚은 생존 전략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심해의 극한 환경에 적응했을까? 

심해는 햇빛이 전혀 도달하지 않는 암흑의 공간이자, 수백 기압의 압력과 영하에 가까운 저온이 지배하는 세계다. 이런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심해어들은 독특한 생김새와 적응 전략을 진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먼저 먹이 확보가 최대 과제인 만큼 많은 심해어들은 큰 입과 확장 가능한 위를 가지고 있다. 먹이가 드물게 나타날 때 가능한 한 많이 삼켜두기 위한 장치다. 대표적으로 블랙 드래곤피시(black dragonfish)는 턱이 길게 발달해 자신보다 큰 먹이도 삼킬 수 있다. 

신체 조직 역시 특징적이다. 심해어들은 대체로 젤라틴질의 부드러운 몸을 가지는데, 이는 고압 속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부력을 조절하는 데 유리하다. 이번에 새로 보고된 달팽이물고기들도 모두 살이 물컹하고 연약한 질감을 보였다.

빛 없는 환경에서의 감각 발달도 주목된다. 어떤 종은 큰 눈을 발달시켜 희미한 빛을 감지하고, 또 다른 종은 아예 눈이 퇴화한 대신 발광기관을 지녀 먹이를 유인한다. 아귀류(anglerfish)는 이마 끝 발광 돌기를 흔들어 작은 물고기를 유혹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외형적으로는 일반적인 물고기와는 거리가 먼 ‘괴상한’ 모습이 많다. 투명한 피부를 가진 심해어가 있는가 하면, 이빨이 바깥으로 드러난 송곳니 구조, 풍선처럼 부푼 머리, 가늘고 긴 몸통 등 특이한 체형이 흔하다. 최근 발견된 달팽이물고기 중에서도 분홍빛 돌기로 덮인 울퉁불퉁한 개체나 꼬리가 반투명한 개체가 대표적이다.

이처럼 낯설고 기묘해 보이는 모습은 사실 단순한 변이가 아니라, 극한의 심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교한 생존 전략의 산물임이 확인되었다. 

심해의 대표적 포식자인 아귀류는 머리 끝의 발광 돌기를 흔들어 먹이를 유인한다. Ⓒevolutionofplanetearth.com
심해의 대표적 포식자인 아귀류는 머리 끝의 발광 돌기를 흔들어 먹이를 유인한다. Ⓒevolutionofplanetearth.com

 

심해 연구의 새로운 전환점

달팽이물고기과는 8,000미터 이상 초심해에서도 다수 발견되었지만, 3,000~5,000미터 구간에서는 기록이 드물었다. 연구팀은 이 공백이 실제 생물 분포가 아니라 기존 탐사 방식의 한계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끼에 반응하지 않는 종은 그간 관찰에서 누락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보고된 파랄리파리스 엠은 장기간의 비디오 관찰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어종으로 나타났다. 이는 달팽이물고기가 심해 생태계에서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심해는 지구 해양 부피의 95% 이상을 차지하지만 여전히 가장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 온난화와 산성화가 가속화되는 현재, 심해 생물의 진화와 다양성에 대한 이해는 환경 변화 예측에 필수적이다. 거링어 교수는 “심해 생물의 유전적 다양성과 진화 과정을 밝히는 것은 기후변화가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된다”며, “이번 발견은 우리가 심해 생태계의 복잡성을 얼마나 과소평가해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09-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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