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즈는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을 함유하고 있으며 부드러운 맛과 깊은 풍미 덕분에 다양한 요리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치즈는 모양과 질감, 숙성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맛과 향을 만들어낸다. 브리처럼 부드럽고 크리미한 치즈는 디저트처럼 즐길 수 있고, 파르미지아노처럼 잘게 갈아 요리에 뿌려 먹는 치즈는 감칠맛을 더해준다. 모차렐라 치즈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덕분에 피자와 샐러드에 자주 활용되며, 체다 치즈는 진한 풍미와 단단한 질감으로 버거와 샌드위치에 빠지지 않는 재료로 꼽힌다. 이처럼 치즈는 종류마다 색다른 매력으로 음식을 더욱 맛있게 만드는데, 수많은 치즈 중에서도 '꽃처럼 아름다운 치즈'라는 별명을 가진 특별한 치즈가 있다. 바로 스위스의 전통 치즈인 '테드 드 무안(Tête de Moine)'이다.
이름도 모양도 특별한 테드 드 무안치즈
테드 드 무안은 프랑스어로 ‘수도사의 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12세기 스위스의 한 수도원에서 만들기 시작한 이 치즈는 숙성이 끝난 뒤 원통 모양으로 제공된다. 특이한 점은 지롤(Girolle)이라는 전용 칼을 이용하여 윗면을 돌리듯 깎아, 얇은 꽃잎을 둥글게 말린 형태로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원통형 치즈를 위에서부터 깎아내는 모습이 삭발한 수도사의 머리를 연상시킨 데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견과류의 고소함과 부드러운 버터 풍미를 가진 테드 드 무안은 잘라먹는 것조차 하나의 퍼포먼스처럼 보이며 전 세계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치즈보다 단단하고 짭짤하며, 꽃잎처럼 펼쳤을 때 공기와 닿는 면적이 넓어져 향이 더욱 풍부하게 느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한 송이의 예쁜 꽃과 같은 이 형태에도 섬세한 과학적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프랑스 파리의 파리 대학교와 소르본 대학교 공동연구팀은 이 신기한 치즈 모양이 단순히 칼로 얇게 잘라서 나오는 결과물이 아닌, 물리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지난 5월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저널에 발표하였다.
연구를 진행한 장 박사는 원래 플라스틱이나 종이처럼 찢어지면서 주름이 생기는 재료의 물리적 특성을 연구하고 있었는데, 동료가 보여준 테드 드 무안 치즈 사진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이 치즈가 왜 그런 꽃잎 모양으로 깎이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도 주름 생성 메커니즘이 작용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름진 치즈꽃의 과학적 비밀
일반적으로 물체가 찢어질 때 주름이 생기는 이유는 찢어지는 부위의 길이가 다른 부분보다 상대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 필름을 찢으면, 찢어진 경계 주변은 늘어나서 길어지게 되고 그 결과 주름이 생긴다. 테드 드 무안 치즈를 깎을 때에도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팀은 고속 카메라와 정밀 측정 장치를 이용해 치즈가 깎이는 과정을 실험적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칼날이 치즈를 회전하며 얇게 벗겨낼 때 중심부는 상대적으로 큰 압축을 받는 반면, 가장자리로 갈수록 압축력이 점차 줄어드는 패턴이 나타남을 확인했다. 즉, 치즈의 중심 부위와 외곽 사이에 압축 정도의 차이가 생기고, 이 물리적 불균형으로 인해 치즈를 얇게 자를 때 웨이브 형태로 말리며 꽃잎 모양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치즈와 칼날 사이의 마찰 차이에서 비롯된다. 테드 드 무안 치즈는 외곽에 단단한 껍질이 있고 중심으로 갈수록 부드러워진다. 전용 칼인 지롤로 치즈를 회전하며 깎을 때, 단단하고 매끈한 껍질 부분은 칼날이 쉽게 미끄러지기 때문에 칼과의 마찰이 작은 반면, 부드러운 속살은 칼날이 파고들면서 표면이 변형되기 때문에 마찰이 더 커진다. 바로 이 차이가 치즈의 압축 정도를 다르게 만들고, 결국 깎여 나오는 치즈 조각이 주름진 꽃잎처럼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추가적인 검증을 위해 치즈의 단단한 외곽 껍질을 모두 제거한 뒤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마찰 조건이 일정해진 치즈는 지롤로 잘랐을 때 더 이상 꽃잎처럼 펼쳐지지 않고 평평한 형태로 잘려 나왔다. 꽃 모양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칼의 회전 운동이 아니라, 치즈 내부의 물성 차이와 그로 인한 마찰력의 불균형이라는 점이 입증된 것이다.
일상 속 치즈에서 찾아낸 과학의 원리
이렇게 꽃 모양으로 잘린 치즈는 단순히 보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맛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장 박사는 동일한 치즈를 네모난 큐브 형태로 자른 뒤 시식해 보았을 때, 얇은 꽃잎 형태로 깎은 것보다 풍미가 떨어진다고 느꼈다고 한다. 공기와 접촉하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치즈의 향이 더 잘 퍼져나가고, 따라서 더 풍부한 맛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치즈라는 일상적인 재료에서도 복잡하고 정교한 물리적 원리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다른 소재 과학이나 연성 물질 물리학 분야에서도 이와 유사한 기전이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안타깝게도 연구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장 박사는 실험 과정에서 테드 드 무안 치즈를 수없이 깎고 맛보아야 했는데, 결국 너무 많은 치즈를 먹게 되어 한동안은 치즈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 정회빈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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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8-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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