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조류의 기원 추적
지구 온난화와 극지방 기후 변화가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극한 환경에 사는 생물의 진화사에 대한 연구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여름에도 평균 기온이 0℃ 안팎에 불과한 북극에서 번식하는 조류들은 어떻게 이처럼 가혹한 환경에 적응해왔는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운 과제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미국 알래스카 북부의 프린스 크리크 지층에서 발굴된 화석이 북극 생태계와 조류의 기원을 재구성할 중요한 증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초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약 9천4백만 년 전 백악기 시기의 것으로 확인된 조류 화석 분석을 통해 오늘날 북극 철새의 기원이 당시 고위도 지역에서 이미 번식하고 성장했던 개체군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를 이끈 로렌 윌슨((Lauren N. Wilson) 콜로라도대학교 교수와 패트릭 드러켄밀러(Patrick S. Druckenmiller)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대학교 교수는 이 화석이 극지방에서의 조류 번식이 장기적인 정착과 생존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보여주는 진화적 증거라고 설명했다. 윌슨 박사는 “이 화석은 북극이 경유지가 아닌 조류의 실제 번식지였다는 첫 실증적 증거”라고 강조했다.
북극에서 자란 새들, 9천4백만 년 전의 흔적
백악기 중기, 오늘날 알래스카 북부에 해당하는 고위도 지역은 여름철 수 주에서 수개월 동안 해가 지지 않는 극지 환경이었다. 오늘날 철새들의 여름 번식지로 알려진 이 땅에 9천4백만 년 전에도 실제로 둥지를 틀고 자란 새들이 있었을까?
미국-캐나다 연구진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알래스카 콜빌강 상류 지역의 프린스 크리크 지층(Prince Creek Formation)에서 2012년부터 2023년까지 채집된 백여 점 이상의 조류 화석 표본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이 화석들은 주로 제이콥스 베드(Jacob’s Bed)와 폴스 펄스(Paul’s Pearls)라 불리는 마이크로버터브레이트 렌즈에서 수집됐으며 다양한 골격 부위를 포함하고 있다. 연구진은 이를 통해 백악기 북극 지역에서 살았던 조류들의 계통적 위치, 골격 구조, 형태적 다양성을 포괄적으로 분석했다.
그중에서도 연구진이 특별히 주목한 것은 세 점의 미성숙 개체 화석이다.
이들 표본은 각각 부리뼈, 아래턱뼈, 흉골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생후 초기 성장 단계에 있었던 개체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이 화석들에 나타난 뼈의 융합 상태, 미성숙한 표면 조직, 내부 공기주머니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이들이 이주 도중 사망한 철새가 아니라 북극에서 알을 깨고 자란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논문에 따르면 그 근거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일부 화석에서는 아직 어린 개체임에도 불구하고 좌우 부리뼈가 이미 완전히 융합되어 있었다. 이는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골격이 빠르게 발달했음을 의미한다. 둘째, 뼈 표면이 미성숙한 조직 특유의 다공성 구조를 띠고 있었다. 셋째, CT 스캔 결과 뼈 내부에는 공기주머니(pneumatic chambers)로 해석되는 빈 공간이 잘 발달돼 있었다. 이는 현대 조류가 가볍고 효율적인 비행을 위해 진화시킨 골격 구조와 매우 유사한 특징이다.
논문 주 저자인 윌슨 박사는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할 때 해당 조류들이 고위도 지역인 북극에서 실제로 부화하고 성장한 개체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이 화석들은 이주 흔적이 아닌 실제 번식 개체군의 일부로 보인다”며 “이는 조류가 온대지방에서만 진화했다는 기존 가설에 반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북극에서 태어나 자란 새, 조류의 새 진화사 될 듯
한편 이 세 개의 미성숙 조류 화석은 조류 진화의 흐름을 다시 그릴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도 주목받고 있다. 연구진은 이 화석들이 조류 계통도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280개의 해부학적 형질을 반영한 계통발생학적 분석(phylogenetic analysis)을 수행했다.
그 결과 이 화석들은 중생대 후기에 번성했던 원시 조류인 에난티오르니스류(Enantiornithes)와 가장 가까운 친연성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 그룹은 과거 중국, 스페인, 아르헨티나 등 다양한 위도에서 출토된 백악기 조류들과 유사한 골격 구조를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리뼈와 아래턱뼈, 흉골에서는 특유의 융합된 뼈 구조와 공기주머니 흔적이 확인되었다. 일부 표본은 오늘날 조류의 직접 조상으로 여겨지는 오르니투라에(Ornithurae)와 형태학적 유사성도 보여주어 북극에서 이들 계통 간의 진화가 활발히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드러켄밀러 교수는 “이 조류들은 철새처럼 이동 중에 죽은 것이 아니라, 북극에서 태어나 성장한,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북극이 과거 조류 생태계의 일시적 경유지가 아닌, 지속적인 정착과 진화가 이뤄진 핵심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A)는 다양한 조류 그룹 간의 주요 계통학적 관계를 단순화한 도식으로, 색으로 표시된 그룹은 프린스 크리크에서 확인된 조류 분류군을 나타낸다.
(B)는 후기 백악기 당시 북아메리카의 지도로, 프린스 크리크의 위치는 노란색 별표로, 북극권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백악기 북극의 진짜 모습은 ‘온난한 숲’?
고위도 지역에서 조류가 번식하고 성장했다는 사실은 당시 환경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음을 뜻한다.
연구팀은 화석이 발견된 프린스 크리크 지층의 고기후 데이터를 분석해 약 9천4백만 년 전 백악기 중기 당시 이 지역의 평균 기온이 약 14℃에 달했음을 확인했다. 이는 오늘날의 북유럽 고위도 지역(노르웨이 북부)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알래스카 북부는 빙하가 없었고, 침엽수와 양치식물이 울창하게 자라는 온난하고 습윤한 삼림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다만 이곳은 북위 약 75도에 해당했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해가 지지 않고, 겨울철에는 수개월 동안 지속적인 어둠이 이어지는 극지의 계절적 특성은 분명 존재했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안정적인 번식이 가능하려면 긴 여름의 낮을 활용해 빠르게 성장하고, 겨울의 혹독한 기후에 대비하는 생리적 적응이 필요했을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환경에 맞춰 에난티오르니스류 계통의 새들이 이미 장거리 비행 능력, 체온 조절 기능, 빠른 골격 발달 같은 특성을 진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이는 이들이 따뜻한 지역에만 의존하지 않고, 계절성과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 살아남은 유연한 생물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윌슨 박사는 “우리는 그동안 북극을 조류가 잠시 머무는 ‘이주 경로’로 인식해왔지만 이 화석들은 북극이 조류 진화의 무대이자 정착지였다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라며, “이는 조류 기원의 공간적 범위를 다시 정의해야 할 시점임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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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5-06-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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