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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공채영 객원기자
2005-11-01

박물관이 호기심의 상자라고요!!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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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상상력의 보고이자 선조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곳으로 가장 으뜸인 곳은 박물관보다 좋은 곳이 없다. 박물관은 예전에 그저 보기만 했던 장소였다면, 이제는 문화재에서 시작해 희귀하고 진귀한 것,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세세하게 전시해 우리들의 오감을 자극해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곳이다.


세계 6대 박물관에 속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0월 28일 용산에 새롭게 문을 열었다. 방학만 되면 배낭여행을 꿈꾸며 마냥 부러워만 했던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뉴욕근대미술관(MOMA), 에르미타주박물관 등에 버금가는 박물관이 용산에 들어선 것이다. 박물관은 부지 면적 9만3천여 평에 4만1천여 평의 건축물에 지하 1층 지상 6층의 박물관에 40여 개의 상설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의 구조를 보면, 1층은 고고관(1) 구석기실부터 삼국시대 이전의 원삼국실까지. 고고관(2) 백제, 가야, 신라 등 삼국시대 전시실과 통일신라, 발해 등 후삼국시대 전시실. 역사관과 역사의 길, 본관 전시실 1층 통로에 야외 전시장이 있다. 2층은 여러 기증관과 미술관 I, 3층은 미술관 II(1) 불교 조각실과 미술관 II(2), 아시아관과 중앙아시아실, 신안 해저문화재 등이 있다. 각 전시관에 국보 59건, 보물 79건, 중요민속문화재, 그 외 문화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하면 우리나라에 소재한 박물관을 생각하기 이전에 서양의 박물관이 먼저 떠오르고 가고 싶어 한다. 서양의 박물관이 가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장소이지만, 그 곳에 전시된 문화재가 더욱더 우리들의 발길을 옮기게 할 것이다. 잠시 동안 그 곳 전시물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한번쯤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현대의 박물관(museum)은 지식의 증대, 문화재와 자연물의 보호와 교육 그리고 문화의 발전을 목적으로 자연계와 인류의 대표적 유산들을 수집, 보존, 전달 및 전시하는 기관이라고 정의된다. 초기 ‘박물관’ 이라는 용어(불어로 musée, 영어와 독어의 museum)는 ‘뮤제의 집’ 혹은 ‘뮤즈에 헌납된 사원’을 의미했던 알렉산드리아에 설립된 무제이온(museion)에서 유래했다. 이 곳은 일종의 연구, 교육센터로 도서관 외에 천체 관측소와 다양한 연구 및 교육시설, 그리고 모든 분야의 수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로마시대 이후 무제이온은 그 자취를 감추었고, 박물관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 곳은 수도원의 ‘보고’였다. 중세의 사원박물관은 귀족이나 부호의 후원 아래 고대로부터 전해진 유물과 기독교 성물을 중심으로 진기한 것을 수집하는 곳이었다. 르네상스기에 이르러 박물관의 개념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14세기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과거의 유산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나면서, 인문주의자들은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성경의 필사본, 조각품, 동전, 메달, 건물의 파편 등을 새롭게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부호와 권력자들이 고대의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후원하면서 전시가 급증했고, 지금의 의미와 가까운 ‘박물관’(museum)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례로, 르네상스 시대 후원과 수집에서 가장 앞선 가문은 금융업으로 성장해 도시국가 피렌체의 권력을 거머쥔 메디치 가문이었다. ‘구 코시모’라고 불렸던 코시모 데 메디치에서 교황 레오 10세를 거쳐 피렌체 공화정을 종식시킨 코시모 1세에 이르기까지 메디치 가문이 이룩한 문화적 위업은 서구 근대의 고고학 박물관이나 문화사 박물관의 시작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의 수집활동은 예술품에 대한 미적 동기보다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키고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예술작품의 시각적 권위를 이용한 것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예술품이나 문화재를 이용해 정치적 권력, 혹은 국력을 과시하려는 모습은 비단 메디치 가문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일례로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라는 책 제목에서 보이듯이 전쟁기간 동안 많은 국가들은 문화재 약탈을 일삼고 있다. 이에 대해서 인류학자 키스 니클린은 문화재 약탈 행위를 ‘강탈’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모든 채 박물관을 방문한 관람객은 아름다운 박물관과 방대한 소장품에 압도당하곤 한다. 하지만 프랑스나 영국의 박물관에 전시된 소장품의 대부분이 전리품이거나 식민지에서 불법 반출한 문화재라는 사실은 관람객을 무척 놀라게 한다.


20세기 후반부터 제 3세계를 비롯한 신생 독립국이 자국의 민족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문화재 반환과 보상 문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표적인 문화 보유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신생 독립국이나 식민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오히려 약탈된 자국의 문화재를 반환하라는 요청만을 거듭 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의 물건은 돌려주지 않은 채 자신의 물건만을 찾는 모습이다. 어떤 이는 이에 대해서 자신의 민족 정체성, 문화 정체성을 획득하려는 목적에서 문화재 반환을 둘러싼 국가 사이의 알력을 ‘제3차 세계대전’이나 ‘문화전쟁’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박물관이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기관인 만큼 국가는 대중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전달해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대부호들의 전유물이었던 전시물을 대중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곳으로 1887년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50주년 행사와 함께 대규모의 대박람회를 개최했는데, 이 대박람회의 결과물이 사우스켄싱턴 박물관(현재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이다. 그곳은 빅토리아 중기 영국의 문화적 이상에 대한 기념물이자 대중교육을 추구한 최초의 박물관이다.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이 설립될 당시 영국 사회는 길드 견습공 체제가 붕괴되면서 응용 예술 부분 교육의 무관심으로 새로운 제조 기술과 생산 방식의 광범위한 악화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프랑스산 제품들이 영국으로 밀려들어 왔다. 영국 정부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영국 제조업 디자인의 개선을 목적으로 대박람회를 개최했으나, 언론은 영국 디자인 교육에 대한 실패의 목소리와 함께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사우스켄싱턴 박물관 설립을 기획한 헨리 콜은 디자인 학교에서 보였던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보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박물관의 관람대상도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까지 확대했다. 이는 헨리 콜이 주장한 “박물관은 더 이상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어른들을 위한 인상적인 교실”이 될 것이라는 목적에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소비자를 가르치지 않으면서 생산자를 교육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그의 의도를 함의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은 관람 정책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것은 당시에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박물관 사무실에 신임장을 제출하고, 14일 정도 지난 후 입장허가증을 받고, 방문 당일 대기실에서 기다린 후 관리자의 감시 하에 관람하는 방식과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은 일반 대중교육이라는 목적아래 적극적으로 관람객을 유치했다. 예를 들어,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은 가스등을 도입하여 저녁 시간까지 개관을 한 최초의 박물관이었고, 월, 화, 목요일은 무료입장에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개관했다. 무엇보다도 박물관에 설립된 부속학교는 저녁 9시까지 운영하여 수공업자들이 낮에 일터에서 일하고 밤에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당시의 다른 박물관과 다른 정책을 펼친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은 노동계급을 비롯해 일반 대중들의 호응을 얻은 대중박물관이 되었다.


또한 사우스켄싱턴 박물관은 여러 가지 방법을 이용해 독자적으로 실용 예술 부분의 역사를 썼다. 그 중에서 중요시 된 것은 전시품과 관련된 전략적인 출판과 박물관의 전시에 특정한 작품을 부각시켜 전시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박물관과 전시회가 가치중립적인 장소일 것이라는 가정 아래 이 곳에서 전달되는 지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 하지만 앞서 보였던 것처럼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이나, 전시방식, 출판물 등은 박물관 기획자가 의도했던 바, 국가가 의도했던 바를 은연중에 함축하고 있다. 이는 박물관과 전시회가 교육과 경험의 도구이자 권력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국립중앙박물관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들은 미적 이미지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장소 때문인지 박물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거대한 건축물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박물관의 외관은 가장 인상에 남는 장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와관은 서양의 화려함과 달리 물과 성벽의 조화, 극도의 단순함을 보였다. 이는 건축가 박승홍 씨가 “어떻게 하면 한국적일 수 있을까. 우리의 선조들이라면 과연 어떻게 설계했을까. 그런 질문 앞에서 수없이 고심했어요. 그 당시 영주 부석사에 갔었죠. 그 곳에서 자연미를 살린 질감과 독특한 공간배치, 크고 작은 돌들이 어우러져 펼쳐 보이는 절묘한 조화에 감동했어요” 라고 말한 것에도 잘 나타나 있다. 더욱더 자세히 국립 중앙박물관의 내부를 살펴보면,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고심한 흔적들이 박물관 여기저기에서 보인다.


문화는 그 나라를 이끄는 경쟁력 중 하나이고, 문화재가 전시된 박물관은 경쟁력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눈의 즐거움만을 생각하면서 전시를 관람하기보다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선조들의 숨결과 또 다른 의미를 되새기면서 박물관 여행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시간 :평일 : 오전 9시 - 오후 6시, 토·일요일/공휴일 : 오전 9시 - 오후 7시

관람요금 :일반(19세 ~ 64세) 2,000원, 청소년(7세 ~ 18세) 1,000원, 어린이 500원 (2006년부터 적용)

위 치 :지하철 1,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

사 이 트 : http://www.museum.go.kr

공채영 객원기자
저작권자 2005-11-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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