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다. 신약을 개발해서 수많은 사람을 구하고, 우주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없으면 인터넷도, 양자물리학도, 철학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 어느 때 보다 막대한 양의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과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다소 철학적이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지식보다 무지가 때로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우리의 상식에 반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개발 연구소는 이 철학적인 질문에 착안해서 <적응 합리성> 그리고 <고의적 무지> 라는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정보를 차단하는 일은 생활에서 매우 흔히 발생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종종 그 이유 조차 알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많은 경우 사람들이 특정 정보나 사실을 의도적으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연말에 가장 많은 보너스를 받는 동료가 누구인지, 또는 자신이 알츠하이머 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지 알고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설문 응답자들은 아니오를 선택하기도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때로는 무지를 선호한다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어린이들에게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가령 8-14세 사이 학생들에게 "당신은 친구들과 놀고 있습니다. 잠시 후 방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깨져 있습니다. 누가 장난감을 깨뜨렸는지 알고 싶나요?" 라는 질문에 87%가 그렇다고 응답했지만, 친구가 말하고 싶어하지 않으면 추가로 알아보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73%으로 줄어들었다. 즉 친한 친구일수록 더 알아보길 원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말은 아이들이 무조건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어떤 사실을 알지 않은 채로 지나치는 것을 선호함을 의미한다.

어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30여년 전 독일 통일 이후 구 동독 비밀 정보기관 슈타지(Stasi)의 아카이브에 대해 약 200만명의 시민들이 열람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500만 명 이상의 동독 시민들이 슈타지에서 자신에 대한 문서를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고 있으나 나머지 300만명은 이를 굳이 열람하고 싶어하지 않고 있다. 연구진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 161명을 인터뷰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열람 행위로 인해 동독이 서독 사람들에 의해 낮게 평가되는 것 자체를 원치 않기 때문으로 나타났지만, 두번째 이유(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가까운 사람들이 자신을 염탐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두려움이라고 대답하였다. 즉 비밀문서를 열람한 후 슬픔, 실망, 분노와 같은 부정적 경험을 마주치길 원치 않기 때문인 것이다.
무지가 주는 실용적 이득
연구진은 "알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보통은 성숙하지 못하고, 의심스럽고,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간주하는 시각이 많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볼 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의도적인 무지가 때로는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건강이다. 많은 사람들은 보험사가 비용을 부담해도 질병 발견에 대한 두려움으로 건강 검진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 행동을 단순한 회피 형태로 간주할 수는 없다. 발견이 빠를 수록 치료가 빠르고 확실한 녹내장 같은 질병이 있는 반면, 난소암 처럼 조기 발견을 위해 초음파 진단을 한다고 해서 종양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1,000명을 대상으로 수행된 한 연구에 따르면 6건의 정확한 진단과 32개 오진이 있었으며, 이를 통해 건강한 난소를 제거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건강 검진을 통해 전혀 무해한 양성 종양을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 경우 심리적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불필요하게 발생한다. 연구진은 현대의학의 과잉진단과 과잉치료가 주는 맹점과 의도적인 무지가 주는 균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보다 최근의 예를 들어보면 2023년 6월 미국 소아과 의사들은 American Journal of Human Genetics 을 통해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유전병 발병 여부를 부모에게 알려주기 위해 위해 신생아의 게놈 전체를 정기적으로 검사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아마도 부모들은 이러한 행위의 필요성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유전병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발생하고, 그 가능성을 알아내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지는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검사 중에 발견되는 질병의 대부분은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예방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발병할지 여부를 기다리며 초조하게 기다릴 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길 원하는 경우에도 의식적인 무지는 오히려 긍정적이다. 때로는 너무 많이 습득한 지식이 동기를 꺾기 때문이다. 테니스와 골프를 배우거나 새로운 언어를 배울때 이미 완성의 단계에 이른 사람들의 경험을 보고 끊임없이 비교하면 종래에는 좌절로 이어지기 쉽다. 가급적 많은 정보는 차단하고 매일의 작은 향상에 만족하며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무지가 주는 공정

의도적인 무지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오케스트라 오디션에서 이미 수십년 전 부터 여성 단원이 늘어난 것은 블라인드 오디션의 도입 때문이라는 점은 매우 좋은 예이다. 실제 연주 능력을 제외하고는 다른 정보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는 보통의 채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류 전형에서 성별, 나이가 면접으로 이어지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미와 영국에서는 차별로 이어질 정보를 기입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며, 독일의 경우도 많은 공공 부문에서 이를 시도했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고령자, 여성, 외국인들이 면접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제도를 통해 이뤄지는 의도적 무지는 공정성을 가져다줌을 방증하는 좋은 사례들이다. 다른 말로 종합하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경험에 근거한 규칙이 때로는 수집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활용하는 것보다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 안현섭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23-11-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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