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류준영 머니투데이 미래산업부 차장)
“ 과학기술계가 앓는 모든 문제가 복합적핀포인트로 해결 안 되고 또 다른 문제 야기
예산 삭감은 ‘최후의 수단’일 뿐 기조 아냐
‘세계 최고, 세계 최초’ 지향하는 R&D에 투자 ”
내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따른 과학자들의 우려, 우주항공청 설립 난항,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첨단기술 분야 전문인재 부족, 글로벌 기술 패권 다툼 심화…겹겹이 쌓인 문제들을 그는 어떻게 풀어나갈까?
정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 4대 과학기술원 등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산하 공공기관에 ‘방만 경영’ 프레임을 걸고 ‘뼈를 깎는 고통’을 요구한 엄중한 상황에서 「과학과기술」은 지난 7월 3일 과기정통부 1차관에 임명된 조성경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실 과학기술비서관을 만났다.
대통령의 ‘질책’ 그리고 이어진 ‘유례없던 삭감’. 여지껏 본 적이 없는 낯선 모습에 과학기술계가 술렁인다. 작은 균열이 일고, 이를 지켜본 세간 안팎의 희비도 엇갈린다. 이른바 허니문 기간이 끝나갈 시점인 80여 일 만에 돌변한 과학자들의 싸늘한 시선, 출신을 고려할 때 든든한 백이 되어줄 것만 같았던 큰 믿음이 깨져버린 탓이었을까. 일련의 상황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고민이 깊어간다.
“그 질문은 제가 정리한 내용을 보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부처 수장급이라면 으레 사전 질의서 답변을 비서실이나 담당 과에서 대신 써주고 확인하는 정도로 처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 차관은 때가 때인 만큼 자신의 업무노트 속에 직접 자필로 써내려간 답변 문구를 꼼꼼히 짚어가며 또렷한 발음과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갔다. 매 답변마다 그는 문제의 근본 맥을 짚어 때리는 인파이터(상대편에게 바짝 달라붙어 공격하는 유형의 선수) 성향을 숨기지 않았다.
혼돈의 과학기술계를 그는 어떤 혜안을 갖고 정면돌파할 것인가? 또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까? 여론과 민심을 살피며 사고의 대전환, 전략의 시프트, 원팀 등 주어진 소명을 이뤄내기 위한 스텝을 조심스럽게 밟아야 할 시점. 지금부터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Q 취임 소감은.
A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책임지고 있는 과기정통부의 일원이 됐다는 책임감이 급습하듯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한민국의 과학과 기술,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고 세계 최고가 될 인재를 키우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기술개발을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과기정통부의 막강한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떠나질 않습니다.
Q 과학기술비서관으로 지근거리에서 본 대통령의 과학기술 철학이나 기조는 무엇인가.
A 저도 원래 인연이 있어서 간 게 아니다 보니, 최소한 과학기술에 대해서 대통령의 철학, 생각과 저의 생각이 동일해야 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통령으로부터 한 얘기를 듣고 너무 신이 나서 메모한 게 있습니다. (업무수첩을 뒤적여 해당 글귀를 찾은 후) 이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연구개발의 결과는 성공과 실패가 있을 수 없다. 기준을 낮추면 성공이고 기준을 높이면 실패인데, 중요한 것은 그 성과물이 다른 연구를 자극하고 응용의 기반을 잘 마련하느냐다. 이를 기준으로 연구개발 결과를 평가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냥 누가 옆에서 얘기한다고 툭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 철학을 갖고 계신 겁니다. 이번 예산 삭감이 대통령의 과학기술 정책 기조는 아닙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할 텐데 우리가 시스템을 빨리 바꾸지 못하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꺼낸 거지, 그게 정책 기조는 아닌 겁니다.
Q 임직원들과의 첫 회의 때 어떤 얘기를 나누셨나.
A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 혁신, 인재 육성 등 과학기술 전 주기를 책임지고 있는 부처입니다. 이곳 구성원의 하나가 됐다는 것 자체가 긴장도 되고, 책임감도 느낍니다. 제가 처음에 드렸던 말은 “차관이지만 제가 책임질 수 있는1차관는 일은 다 하겠다.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 하고 싶은 일, 그것이 바람직한데 책임 때문에 미뤄왔던 일들은 갖고 오시면 기꺼이 사인해 드리겠다. 여러분들은 사인 안 하시고, 제가 사인하겠다.” 그리고 괄호 열고 ‘법적 책임은 없었으면 좋겠다’를 넣었는데(웃음), 그게 정말 중요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그래서 우리 과기정통부가 좀 신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Q 내년 국가 R&D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과학기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한편에선 성과창출형 도전적 R&D에 집중투자하겠다는 정부의 혁신 의지에 공감하면서도 앞으로 연구자 자율의 창의적 연구보다 하향식(Top-down) 연구가 다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A 우리 정부는 성과창출형 도전적 R&D가 아니라 세계 최고, 세계 최초를 지향합니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R&D에 투자합니다. 지금 당장 돈이 되는 기술개발은 기업이 훨씬 더 잘할 수 있고 빠르게 해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대한민국의 과학과 기술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고 세계 최고가 될 가능성에 투자합니다.
하향식 연구라고 하셨는데, 물론 코로나19처럼 국가가 필요에 의해 긴급하게 해야 하거나, 길게 가져가야 할 연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R&D 논의 자체는 과학기술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인이 “이거 연구해”라고 할 수 있습니까? R&D의 방향성은 누가 정합니까? 과학기술계가 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하향식 R&D라는 게 존재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하향식이냐 상향식이냐를 가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Q 정부 발표에 보면 ‘국가 R&D 생태계에 누적된 비효율 제거’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무엇을 말하나.
A 소위 ‘카르텔’이란 뭔가, 이런 말씀이신 거죠. 이건 제가 정리를 한 걸 말씀 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보통 정부 R&D는 국가 그다음 공공을 위해 가치 창출을 해야 한다있는 목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 아니면 특정 집단의 이익 확보를 위해 R&D 기획, 예산 배정, 수행, 평가까지 일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개입함으로써 실제로 공정하게 참여해서 R&D를 할 수 있는 기능을 훼손하는 것. 이런 게 가장 큰 비효율, 소위 ‘카르텔’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부분을 어떻게 걷어낼까요? 그(과학기술계) 일부가 그런 건데, 이로 인해 많은 부분들이 사실 다치잖아요. 그뿐 아니라 새롭게 도약하는 연구자들, 새로운 연구에 도전하는 분들이 이로 인해 기회가 박탈되거든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걷어내는 게 핵심입니다.
Q 그러면 이참에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정량평가 등 예전부터 연구현장에서 문제 있다고 지적받았던 제도들을 개선해 나갔으면 좋겠다.
A 연구현장에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함께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PBS와 정량적 평가, 또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기초로 하는 평가 등이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일은 이런 문제가 하나의 원인만 제거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핀포인트로 PBS를 고친다? 그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겁니다.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고, 그 원인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또 다른 문제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문제를 들여다보고 방안을 찾는 게 우선입니다. 그 과정에서 PBS 등의 문제들이 풀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내년 R&D 예산안에서 국제협력, 해외진출 지원에 1조 1,000억 원을 쓴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앞으로 어떻게 끌고 갈지 구체적 밑그림이 있나.
A 내년 해외진출 지원에 1조 1,000억 원이 정확한 숫자인지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국제협력, 국제공동연구를 통한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도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인재를 발굴하고 또 성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을 가져오고 개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세계 최고의 기관, 실력자들과 같이 연구하고 부딪히면서 우리가 커가는 것, 그것이 제일 큰 목적입니다.
통찰력 있는 과학기술 인재를 기르는 바람직한 길 중의 하나가 최고의 실력자들과 잘 갖춰진 연구환경과 시스템 속에서 함께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방향성을 갖고 연구주제와 여건에 따라 최선의 국제협력, 국제공동연구 형태로 도전해나갈 것입니다. 열어놓고 가장 최선의 방법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고, 바이오 쪽은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어떤 게 제일 최선인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Q 해당 국제협력 관련 사업은 과학기술계에서 관심이 많은 탓인지 외부 위원회를 꾸려 운영하자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A 지난 4월 미국 국빈방문 시 대통령께서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를 찾아가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DARPA에서 어마어마한 예산을 상당기간 투자하는데, 그 대상을 어떻게 정하는가? 그랬더니 전문가들이 각자 의견을 제시하고 토론을 통해 그걸 좁히고, 또다시 심층 토론을 통해 정한다고 답하더군요.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각자 의견이 다를 텐데 그게 가능하냐고. 그랬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각기 세상을 보다 바람직하게 바꾸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 꿈을 존중하고 인정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시도를 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걸 지금 우리에게 적용할 자신은 없습니다. 대신 제가 그런 얘기는 했습니다. 누가 결정을 할 거냐가 중요한데, ‘어떤 형태든 최고의 전문가들, 해외 전문가들까지 해서 토론은 꼭 한번 한다. 그렇게 올려서 마지막에 결정을 합시다.’ 그리고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기술 심의 기구이고, 위원장도 대통령이니 이렇게 우리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아직 결정된 건 없습니다.
Q 최근 프렌드쇼어링의 기조가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나라 과학기술 국제협력 추진에 주안점을 둘 부분은
A 세상을 뒤흔들 기술, 세계 질서를 뒤바꿀 기술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퀀텀, AI, 디지털바이오, 우주개발 그리고 미지의 무언가 등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누가 먼저 이러한 기술을 선점하고 세계 표준을 만들 것인가에 따라 전 세계 구도는 물론 인류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국가도 단숨에 이러한 기술을 독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국가들과 협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퀀텀, AI, 바이오, 우주개발 등의 연구는 데이터 공유가 출발점입니다. 데이터 접근성과 공유를 위한 국제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국가 간 신뢰는 기본입니다.
Q 과기정통부에서는 세계 최고 인재를 길러내는 데 투자하겠다고 하셨는데, 관련한 인재 양성 계획은.
A 과학기술 인재는 강의실 수업만으로 길러지지 않습니다. 실질적으로 R&D에 몰두하면서 문제에 부딪치고 이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성장해나가는 겁니다. 과기정통부는 무엇보다 최고의 실력자들과 함께 R&D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뿐만 아니라 박사후연구원의 독자적인 연구수행을 대폭 확대하고, 해외 선도국 대상 국외 연수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우수 신진연구자에 대한 연구비 지원도 두 배로 확대하고, 초기 정책을 위한 연구시설, 장비 등 연구실 구축도 지원합니다.
젊은 연구자들에게 최대 10년간 장기도전 연구 지원 계획도 갖고 있으며, 집단연구에 신진연구자 참여를 의무화할 계획입니다. 또 이공계 대학원생들에 대한 인건비 실수령액 확대도 조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 과학기술 인력이 갖고 있는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많은 여성 과학기술 인재가 배출될 수 있도록 단순 배려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은 이 놀라운 변화의 속도와 방향성을 정하는 핵심 역할을 합니다. 때문에 과학기술인들도 과연 지금 하고 있는 연구가, 기술개발이 성공했을 때 세상에,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영향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과학기술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A 제가 2022년 초까지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국민들이 누구를 가장 신뢰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단 한 차례도 1위는 바뀌지 않았는데, 바로 과학기술 전문가였습니다. 과학기술인은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대상입니다. 언론인도, 정치인도, 정부도 할 수 없는 일을 과학기술인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기술인의 한마디는 막강합니다. 누군가에 의해 과학기술계가 갈라치기당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람직하게 설계하기 위해 과학기술계가 똘똘 뭉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과학기술인 여러분께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고, 또 들어도 주시면서 함께 이 낯선 상황을 새로운 과학기술계 퀀텀 점프의 동력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겠습니다.
* 이 글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에서 발간하는 ‘과학과기술’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홍보팀
- 저작권자 2023-10-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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