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관련된 노벨상 중에서 가장 광범위한 분야로 흔히 화학상을 꼽는다. 화학은 우리 몸과 주변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기본 요소인 원자와 분자가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변화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가는 학문이다. 따라서 그만큼 분야가 아주 넓다.
예를 들면 요즘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는 염색제의 개발에서부터 특수한 조건에도 견딜 수 있는 비행기 동체 물질의 개발과 같은 응용 분야는 물론이고, 눈 깜짝할 새보다 훨씬 짧은 1펨토초(1천조분의 1초) 사이에 변화하는 화학반응을 관찰한다거나 자연계에서 관찰되지 않은 새로운 화합물을 합성하는 순수 연구분야까지 끝이 없을 정도다.
실제로 지난 100년간의 노벨 화학상을 돌이켜봐도 유기화학 분야의 수상이 가장 많긴 하지만, 위와 같은 화학의 전 분야에 걸쳐 수상자가 골고루 배출되었다.
올해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의 이브 쇼뱅 박사(70)와 미국의 로버트 그럽스 박사(63), 리처드 슈록 박사(60)는 유기합성의 복분해 반응(상호교환반응)이란 새로운 화학합성법을 개발한 공로를 함께 인정받았다.
유기(有機)라는 말은 원래 ‘Organic(생물의)’에서 유래되었는데, 화학에서는 오래 전부터 동식물에서 만들어지는 것과 그의 인위적인 합성이 가능한 것을 유기물이라고 해왔다. 그에 비해 돌이나 광물 같은 것은 무기물이라고 정의되었다.
그러나 후에 석유가 인공적으로 여러 가지의 유기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생물’ ‘무생물’로 나누는 것이 무의미해져 버렸다. 그래도 예전의 관습대로 현재까지 탄소를 포함한 화합물을 일반적으로 유기화합물이라고 부른다. 따져보면 원래 석유도 목재가 땅속에서 형태를 바꾼 것이므로 꼭 틀렸다고만 할 수도 없다.
이브 쇼뱅 박사는 1971년 탄소의 원자와 원자 사이에 4개의 전자가 공유된 상태인 이중결합 구조의 석유화합물이 서로 분자결합의 위치를 바꾸면 새로운 유용 화합물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처음 주장했다. 즉, 두 종류의 화합물이 반응할 때 서로 성분을 맞교환함으로써 새로운 두 종류의 화합물이 생기는 복분해 반응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이다.
화학반응이란 원자들이 재배열함으로써 물질의 성질이 바뀌는 것으로, 화합과 분해, 치환 반응이 있다. 화합이란 두 가지 이상의 물질이 반응하여 한 가지 물질이 되는 반응으로서, 이를 식으로 표현하면 ‘A+B→C’가 된다. 분해는 한 가지 물질이 두 가지 이상의 물질로 되는 반응인데, ‘AB→A+B’로 나타낼 수 있다. 또 치환반응은 화합물 구성성분 중 일부가 다른 원자나 원자단으로 바뀌는 반응으로서 ‘AB+C→AC+B’와 같은 경우이다.
이에 비해 복분해 반응은 서로 짝을 이룬 두 가지 물질이 반응하여 새로운 두 가지 물질이 되는 반응으로서, ‘AB+CD→AD+BC’가 된다. 이를 두고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두 쌍의 커플들이 춤을 추다가 서로 파트너를 바꾸는 것과 같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복분해 반응을 설명했다.
하지만 쇼뱅 박사의 복분해 반응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가 필요했다. 이를 해결한 사람이 이번에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두 교수이다. 1990년 리처드 슈록 교수는 텅스텐(W)과 몰리브덴(Mo)을 이용한 금속착물 촉매를 개발해 새로운 화합물의 대량 생산 길을 열었다. 그러나 이 촉매는 산소나 습기가 있으면 반응이 잘 안되고 불안정한 경향이 있었다.
1992년 로버튼 그럽스 교수는 루세늄(Ru)이라는 금속을 써서 공기와 물에도 잘 견디는 새로운 촉매를 개발함으로써 이런 문제를 해결했다.
이들의 연구결과는 현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드는 데 응용되고 있다. 특히 시력을 교정하는 소프트렌즈와 생체적합 플라스틱 및 목욕탕 욕조 등의 첨단 플라스틱 소재와 같은 고분자 물질 재료를 만드는 데 폭넓게 사용된다. 또 에이즈, 알츠하이머병, C형 간염, 암 등 질병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필요한 물질합성에 중요한 방법을 제공했다. 생물농약 등에 필요한 곤충 페르몬(호르몬)을 생산하는 데도 역시 이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
더구나 이들이 개발한 복분해 반응은 소량의 촉매를 사용, 두 화합물이 결합해 서로 다른 화합물을 만들기 때문에 일반 화학반응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위험한 부산물이 적다. 따라서 환경친화적인 ‘그린 화학’을 향한 큰 걸음을 내디딘 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쇼뱅 박사는 프랑스 파리 근교의 뤼에이-말메종 소재 프랑스 석유연구소 명예 연구담당 소장으로 있다. 그럽스 박사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Caltech) 화학과 교수로, 슈록 박사는 매사추세츠공대(MIT) 화학과 교수로 각각 재직하고 있다.
- 이성규 편집위원
- 저작권자 2005-10-09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