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나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퀴덩굴(학명 Galium aparine)은 한해, 또는 두해살이풀이다. 햇빛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다른 식물체에 기대서 오른다. 줄기에는 굽은 갈고리 형태의 가시가 무수히 돋아났다. 타고 오르기 쉬운 형태의 구조다.

짧은 생 동안 성장과 번식을 목표로 진화한 영리한 방식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갈퀴덩굴의 접착 방식에 영감을 얻어 응용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탈리아 기술연구소 연구진은 “식물 재배와 환경 모니터링 등의 연구에 갈퀴덩굴의 부착원리를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커뮤니케이션즈 머터리얼즈(Communications Materials)’에 게재됐다.
0.25g 추가 매달릴 정도의 부착력
이탈리아 기술연구소 바바라 마촐라이 로봇 공학 부국장은 “자연을 관찰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적은 로봇 기술을 통해 생물이 사용하는 방식을 모방했다”고 말했다.
갈퀴덩굴의 갈고리는 잎 앞면은 잎끝 방향, 뒷면은 엽저(leaf base, 잎의 밑부분) 방향으로 가시가 휘어 고정 능력을 발휘한다. 연구의 핵심은 인공 갈고리의 고정 능력. 연구진은 3D 프린팅으로 갈고리 프로토타입(Prototype)을 만들어 잎이 매끈한 목련과의 태산목(Magnolia grandiflora)부터 잎에 미세한 털이 난 포도잎 등을 대상으로 부착력을 시험했다.

결과는 여러 식물 잎에 부착 정도가 입증됐다. 부드러운 표면의 잎에서는 최대 제곱센티미터당 7N, 거친 표면 잎에서는 12N의 고정력을 가졌다.
미국 포도주에 주로 쓰이는 품종인 ‘비티스 람부르스카(Vitis lambrusca)’ 잎에서 0.25g의 추가 가뿐히 매달릴 정도의 부착력을 나타냈다. 분리는 제곱미터당 1N 전후로 측정되어 비교적 쉽게 떨어졌다.
패치형 살충제, 측정기, 미니로봇 등…갈고리 모방한 제품 시연
연구진은 부착력이 가장 높은 갈고리의 수와 크기 등을 조합해 식물 재배에 활용할 만한 몇몇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했다.
우선, 식물에 부착할 수 있는 패치로 물질을 전달 효과를 시험했다. 갈고리 끝을 설탕의 종류인 ‘이소말트(Isomalt)’로 제작했다. 이소말트가 물에 용해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형광 물질로 이동 여부를 확인하니 부착지점과 멀리 떨어진 조직에서 나타났다. 물질이 식물 내 수액에 용해된 후 체관부로 전달된 것이다. 식물에 부착되고 용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0분. ‘피브로인(fibroin)’을 사용하면 용해 시간을 더욱 늦출 수 있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영양물질, 살충제나 살균제 등을 잎을 통해서 주입할 수도 있다. 연구진은 “과도한 살충제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갈퀴덩굴 부착 원리 실험 영상 ⓒ이탈리아기술연구소(Italiano di Tecnologia)
또 다른 장치로 연구진은 갈고리의 부착 특성을 살려 소형의 무선 측정 장치를 만들었다. 종이 접이식으로 조립한 장치다. ‘Y’자 형태로 접을 수 있는 이 장치는 PET(polyethylene terephthalate)로 구성된 시트 사이로 잎을 넣어 양쪽을 누르면 붙게 된다. 기판 끝에는 센서와 배터리를 포함한 전자회로가 달렸다.
센서는 빛, 습도와 온도 등 잎의 미기후(microclimate)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이 정보는 블루투스를 통해 컴퓨터로 보내진다. 잎의 앞면과 뒷면 모두 측정이 가능하다. 또 식물의 전체 수분 소비량, 병충해 감염 상태 등 다양한 정보를 측정할 수 있다.
연구진은 실외 포도밭에 설치해 보니 바람 부는 날에도 강한 부착력을 나타냈다. 최대 50일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가해지는 하중의 방향을 돌려서 떼어 낸 후 여러 번 재사용이 가능하다. 연구진은 이 장치와 관련해 “국부적 잎을 통해 식물생리 연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원리를 바탕으로 이동할 수 있는 장치도 고안했다. 잎 표면에 갈고리가 부착과 분리의 연속으로 이동하게 한 것. 거꾸로 뒤집은 ‘V’자 형태로 레이저에 반응하면 작동하는 작동기가 달려 있다.
808㎚ 파장의 레이저를 쏘면 각도를 넓혀 뒷발의 갈고리가 표면과 마찰을 생성한다. 동시에 앞발 갈퀴가 떨어져 내딛는다. 레이저가 차단 상태면 각도가 줄어 수축하면서 앞발은 고정되고 뒷발은 전진하는 방식으로 이동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이 방식을 이용해 환경 모니터링과 정밀 농업에 쓰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프로젝트의 주요 논문 저자인 이사벨라 피오렐로 박사는 “이런 형태의 부착과 고정을 통해 다양한 응용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정승환 객원기자
- biology_sh@daum.net
- 저작권자 2021-11-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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