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조개가 자연계의 다른 모든 것을 능가하는 대칭 수준의 초내구성 구조인 진주를 만드는 방법을 처음으로 밝혀낸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미시간대학,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코넬대학, 호주국립대학, 노르웨이 웨스턴대학 등의 국제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는 미래에 고성능의 나노 소재에 대한 제조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진주조개는 모래알 같은 이물질이 몸속으로 들어오면 ‘진주층(nacre)’이라는 물질을 계속 분비해 조금씩 모래알을 감싸서 진주를 만든다. 이처럼 겹겹이 층을 만들어 진주를 성장시키므로 진주층은 ‘진주의 어머니’로 불리기도 한다.

굴과 같은 연체동물의 껍질을 구성하는 무지개 빛깔의 내구성이 매우 강한 유기-무기 합성물인 진주층은 유기물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아라고나이트 조각 위에 구축된다. 아라고나이트는 사방정계에 속하는 광물로서 선석(霰石)이라고도 한다.
진주 부피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진주층은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형성되면서 점차 얇아지고 더 촘촘하게 쌓인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진주조개가 진주층의 각층 두께를 조정해 진주의 대칭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즉, 한 층이 두꺼우면 다음 층은 더 얇아지며, 반대로 한 층이 얇으면 다음 층은 더 두꺼워진다. 연구진은 호주 동부 해안에서 생산되는 아코야 ‘케시 진주’를 이용해 548일 동안 퇴적된 2615개의 미세하게 일치하는 진주층을 연구했다.
침대 시트처럼 생긴 진주층
케시 진주란 양식 과정 중에서 인공 핵이 아니라 우연히 모래, 공기 등 자연 환경 원인으로 진주층이 만들어지는 진주를 말한다. 따라서 인공 핵을 넣은 양식 진주와는 달리 형성되므로 제각각의 모양을 지닌다. 연구진은 케시 진주를 다이아몬드 와이어 톱으로 자른 다음 전자현미경으로 분석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미시간대학의 로버트 호브덴(Robert Hovden) 교수는 “얇고 매끄러운 진주층은 침대 시트처럼 생겼는데, 그 사이에 유기물이 있다”며 “각 층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있으며, 우리는 그 상호작용이 시스템이 진행됨에 따라 수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각 층의 상호작용 방식에 대한 세부 정보도 발견했다. 진주층에 대한 수학적 분석 결과 ‘1/f 노이즈’로 알려진 현상을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즉, 무작위로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며, 각각의 새로운 사건들은 이전 사건들의 영향을 받는다.

1/f 노이즈는 지진 활동, 경제 시장, 전기, 물리학, 심지어 클래식 음악을 포함해 다양한 자연 과정 및 인공 제조 과정을 지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면 주사위를 굴릴 때 모든 주사위는 완전히 독립적인 사건이며, 다른 주사위와 연결되지 않는다. 그러나 1/f 노이즈는 각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따라서 연구진은 그것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혼돈 속에 있는 구조는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 구조 안에는 수천 개의 진주층이 질서와 정밀도로 합쳐질 수 있게 만드는 복잡한 메커니즘이 숨어 있다.
무질서에서 놀랍도록 대칭적인 구조로 변신
또한 연구진은 진주가 수천 개의 층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신중히 계획되는 대칭인 ‘장기적’ 질서가 결여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대신 진주는 한 번에 약 20개 층의 대칭을 유지해 ‘중기적’ 질서를 보여주었다. 이는 진주를 구성하는 수천 개의 층에 걸쳐 일관성과 내구성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최신호에 게재됐다. 이 연구 결과는 진주가 만들어질수록 대칭이 점점 더 정확해지며, 진주 중심부의 무질서가 일종의 완전체가 되는 방법에 대한 지난 수백 년간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로버트 호브덴 교수는 “기술에 대한 모든 접근이 가능한 인간도 진주처럼 복잡한 나노 규모의 건축물을 만들 수 없는데 연체동물은 새로운 전략을 사용해 그것을 만든다”며 “우리는 진주가 무질서에서 놀랍도록 대칭적인 구조로 어떻게 변하는지 연구함으로써 미래에 더 강하고 가벼운 나노 소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캐나다 맥길대학의 연구진은 진주층의 층상 구조에서 영감을 얻어 일반 유리에 비해 3배의 강도와 5배의 파손 저항성을 지닌 유리를 최근에 개발하기도 했다. 유리와 아크릴의 혼합으로 진주층 구조를 재현한 이 새로운 유리는 향후 스마트폰 액정에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1-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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