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행성 금성
금성은 가장 밝을 때 대략 겉보기 등급 -4~-5등급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금성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천체 중 태양, 달 다음으로 밝은 천체이다. 우리말로 샛별이라 불리는 태양계의 두 번째 행성 금성은 특유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서양에서도 사랑과 미의 여신 비너스(Venus)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금성은 평균 700K가 넘는 엄청나게 높은 고온의 온도를 보이는데 이는 금성의 대기가 주로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농도 또한 매우 짙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일으켜 금성 표면의 온도를 높게 유지한다. 이처럼 금성의 대기는 지구의 대기와 완전히 다르다.
인류는 왜 금성에 집착할까?
금성은 예로부터 인류의 큰 관심사 중 하나였다. 금성은 우리 지구보다 약간 작기 때문에 종종 지구의 쌍둥이 행성이라고 불리지만 금성의 대기는 앞선 설명대로 지구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이때문에 인류는 비슷한 크기 그리고 비슷한 위치의 행성이 왜 이토록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는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금성은 오랫동안 베일에 싸여있는 행성이었고 인류가 금성에 관해서 자세히 파헤치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십 년이 되지 않는다.
또한 인류가 끝없이 넓은 우리 태양계 내 어딘가에 또 다른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을 때 가장 주목을 받기 시작한 행성이 바로 화성과 금성이었다. 현재까지 생명체가 거주하는 행성은 지구뿐이지만, 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 비행센터 마이클 웨이 박사(Dr. Michael Wei)팀의 최근 시뮬레이션 결과들에 따르면 지구가 생명체의 첫 번째 고향이 아닐 수도 있다는 다소 재미있는 결과가 공개되었다. 연구팀의 결과에 따르면 지금은 폐허로 변한 금성도 몇십억 년 전에는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행성이었을 수도 있으며 이산화탄소와 느린 자전으로 인해서 금성이 죽음의 행성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무인탐사선 ‘Akatsuki (아카쓰키; あかつき:일본어로 새벽이라는 뜻)’ 팀 역시 과거 금성에서의 생명체 존재 여부 사실은 여전히 의구심에 쌓여있지만, 금성이 한때 지구와 유사했던 것은 사실로 추측된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의 금성 탐사 도전
이처럼 최근 대두되고 있는 금성의 인기를 대변하듯 유럽 우주국은 코스믹 비전 프로젝트의 중간 규모 미션(M-class missions)의 다섯 번째 미션 (M5 미션)으로 금성을 매핑해내는 금성 궤도 미션 EnVision을 선택한 바 있다. 유럽의 이같은 선택을 통해서 SPICA 및 THESEUS 미션 등의 쟁쟁한 경쟁자를 제치고 선택된 것이므로 유럽이 금성 탐사에 얼마나 열정적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유럽의 첫 번째 금성 탐사는 어떤 미션이었을까? 인류는 위 미션으로부터 어떤 과학적인 결과를 얻었으며 유럽 역시 왜 이토록 금성 탐사에 열정을 보이는 것일까?
유럽의 첫 번째 금성 탐사 임무는 2005년 11월에 발사된 Venus Express 미션(혹은 VEX라고 부름)이다. 위 임무는 2001년 드미트리 티토프 (Dr. Dimitri Titov), 엠마뉴엘 레로 (Dr. Emmanuel Lellouch) 및 프레드 테일러 (Dr. Fredric William Taylor) 박사가 이끄는 컨소시엄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위 임무가 본래 유럽 우주국(ESA)과 러시아 우주과학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한 유럽 최초의 화성 탐사선 Mars Express 임무의 주요 페이로드 및 설계 등을 다른 행성의 미션에 재활용하기 위하여 제안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그대로 이용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서 금성은 화성보다 태양에 훨씬 더 가깝기에 복사열은 대략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때문에 유럽은 전임 임무 Mars Express를 금성의 환경에 맞추어서 변경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금성 주위의 극궤도에서 금성의 대기를 장기간 관찰하며 과학적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된 Venus Express 미션은 이전의 어느 금성미션보다 금성을 장기간 관측하고자 계획했다. 장기간의 관측은 금성의 대기역학을 자세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며 이는 지구의 기후 변화에 관해서도 힌트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Venus Express는 최초의 유럽 금성 미션이지만 장기간의 금성 관측을 통해서 금성을 가장 잘 알게 해준 미션 중 하나이다. Venus Express의 대성공은 유럽이 새 미션을 선택할 때 금성 미션을 선택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 미션 덕분에 유럽은 보다 강력한 금성 탐사 미션을 준비하고 있는것이다.

Venus Express의 페이로드
Venus Express는 총 7가지의 페이로드를 탑재했다. 태양풍과 금성 대기 간의 상호 작용 및 대기와 플라스마의 상호작용을 관측하고 연구할 목적으로 탑재된 ASPERA-4 (Analyzer of Space Plasmas and Energetic Atoms)는 Mars Express에 사용된 ASPERA-3 설계를 그대로 재사용했지만, 금성의 혹독한 환경에 맞추어서 조정되었다. MAG라 명명된 자력계는 금성 자기장의 강도를 집중적으로 조사하며 금성 대기와 태양풍의 상호 작용 연구에서 ASPERA-4를 지원할 계획으로 탑재되었다. MAG는 혜성 연구 미션 Rosetta의 착륙선에 탑재되었던 ROMAP 장비를 바탕으로 설계되었다. 가시광선, 자외선 및 근적외선을 이용하여 금성의 화산 활동 검색 및 상부 대기 자외선 흡수 현상의 분포를 연구하며 금성 표면의 밝기 분포를 매핑하기 위해서 탑재된 CCD 카메라인 VMC (Venus Monitoring Camera)는 Mars Express에 탑재된 Visual Monitoring Camera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0.9 ~ 45 µm 파장 범위의 적외선에서 작동하며 금성 대기의 보다 자세한 관측과 대기 성분 및 에어로졸 분석 그리고 이들의 상호작용을 조사하기 위하여 탑재된 PFS (Planetary Fourier Spectrometer) 역시 Mars Express의 분광계를 기반으로 조립된 페이로드 중 하나이다. Mars Express에서 비행한 SPICAM 장비에서 파생된 SPICAV (SPectroscopy for Investigation of Characteristics of the Atmosphere of Venus)는 금성 대기의 조사를 위한 분광계이며 VIRTIS(Visible and Infrared Thermal Imaging Spectrometer)는 가시광선과 적외선을 이용한 열화상 분광계이다. 마지막으로 Vera (Venus Radio Science)는 전리층 그리고 대기 및 금성의 표면을 분석하기 위해서 탑재된 페이로드이다.

Venus Express는 로켓 상부의 단열재의 작은 파편을 검사하기 위해서 2주 지연된 후 2005년 11월 9일 카자흐스탄에서 Soyuz-FG/Fregat 로켓과 함께 발사되었다. 독일 다름슈타트에 있는 ESA의 통제 센터인 ESOC에서 모니터링한 결과 153일간의 긴 여행 끝에 Venus Express는 2006년 4월 11일 금성에 도착했음을 확인했다. Venus Express가 금성의 24시간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추가 제어가 필요했고 같은 해 5월 7일 마침내 목표 궤도에 진입하게 되었다.
발사 당시 500일 정도 임무를 계획하고 출발한 Venus Express는 매우 성공적으로 금성을 관측하며 이후 5번이나 더 연장되었고 이에 따라서 2015년까지 임무가 늘어나게 되었다. 금성의 대기와 구름 그리고 표면의 특성, 플라스마 등을 자세히 관측하며 연구했던 Venus Express는 2014년 11월 28일 지구와의 송신이 두절되면서 같은 해 12월 16일 임무가 최종 종료되었다. 우주선의 마지막 신호는 2015년 1월 18일에 감지되었다.

Venus Express의 과학적 발견 (1) - 금성의 전리층은 마치 혜성의 꼬리처럼 부풀어 오른다.
Venus Express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발견과 함께 수많은 과학적인 연구를 수행했는데, 특히 태양풍 압력이 감소한 기간 동안 금성의 전리층이 밤에 혜성의 꼬리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전리층은 행성 대기보다 높은 곳에 있는 층으로 약하게 전하를 띠는 가스 영역을 말한다.

2010년 8월 NASA의 Stereo-B 우주선은 태양풍의 밀도가 평소보다 약 50배 정도 낮음을 관측했고 이는 약 18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바로 이때 Venus Express 역시 금성을 자세히 관측하여 혜성의 이온 꼬리 모양과 매우 흡사한 형태의 금성 전리층 풍선을 관측했다. 눈물 모양의 전리층은 정상적인 고압력 태양풍이 약해진 후 30분에서 1시간 이내에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지구 시간으로 이틀 동안 금성의 전리층이 최소 두 배 정도 확장되었음을 확인했다.
자기장이 강한 지구의 경우 전리층이 태양풍의 변화에 비교적 안정적이다. 하지만 금성은 자체 내부 자기장이 없으므로 전리층을 형성하기 위해서 태양풍과의 상호 작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전리층의 모양이 태양풍의 세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은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Venus Express의 관측은 자화되지 않은 행성의 전리층에 매우 낮은 태양풍 압력이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밝혀냈다는데에 큰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서 태양풍이 금성의 전리층 플라스마가 이동하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서 알게 되었기 떼문이다. 결과적으로 Venus Express는 태양풍이 감소하더라도 태양이 여전히 이웃 행성의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 관측이다. 연구진은 비슷한 효과가 화성과 같이 자화되지 않은 행성에서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Venus Express의 과학적 발견 (2) - 금성의 풍속 변화
Venus Express는 금성의 풍속 변화에 관해서도 관측을 수행했다. Venus Express팀은 금성의 10년(지구 6년) 동안 행성의 지표면으로부터 약 70km에 존재하는 구름의 움직임을 추적했고 이를 통해서 풍속의 패턴을 모니터링할 수 있었고 금성의 바람이 꾸준히 빨라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모스크바 우주 연구소의 IgorKhatuntsev 박사는 Venus Express가 2006년에 처음 금성에 도착했을 때 위도 50º 사이 구름의 평균 풍속이 대략 300km/h 정도였지만, 임무가 진행되는 동안 풍속이 약 400km/h까지 증가하였다고 밝혔다.
Venus Express의 과학적 발견 (3) - 금성의 글로리(glory) 현상
Venus Express는 2014년 3월 금성의 아름다운 글로리(glory) 현상을 포착해냈다. 이는 무지개와 비슷하게 태양 빛이 구름의 작은 물방울에 산란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여겨지며 무지개는 아치 모양인데 반해 글로리는 더 작고 밝은 핵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는 다양한 빛깔의 고리 모양 연속체이다. 글로리는 관측자가 태양 그리고 구름의 입자들 사이에 위치해 있을때만 관측할 수 있으며 구름 조각들이 구형이어야 하며 액체 상태의 물방울의 크기는 작아야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200km 정도로 넓게 퍼져있는 글로리는 자외선 흡수로 인해서 만들어졌다고 예측되지만, 여전히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Venus Express의 과학적 발견 (4) - 금성과 물
Venus Express는 현재 왜 금성에 물이 부족한지에 관해 밝히기 위한 추가적인 관측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서 Venus Express팀은 물의 중요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산소를 고갈시키기에 충분한 강력한 전기장이 금성의 상층대기에 존재한다고 밝혀냈다. 연구팀은 금성의 전기장이 예상했던 수치보다 최소 5배 이상 큰 규모라고 밝혔는데, 전기장이 존재한다면 태양풍으로 인해서 행성 대기의 수소 이온 (양성자)와 산소 이온이 제거될 수 있다. 이는 물을 만드는 주원료들이므로 금성에 왜 물이 적은지에 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금성은 지구보다 태양에 더 가까우므로 더 많은 자외선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행성 대기에 더 많은 수의 자유 전자 생성과 더 강한 전기장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나 위 연구는 항성에 가까운 행성에서 물이 없어지는 메커니즘을 확인하는 발견으로 우리 태양계뿐 아니라 외계 행성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의미있는 발견으로 여겨진다.
- 김민재 칼럼니스트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1-10-21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