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코끼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사는 거대한 동물이다. 그런데 선사시대에 사이프러스, 크레타, 시칠리아와 같은 지중해의 섬에는 난쟁이 코끼리들이 살고 있었다. 지금은 멸종했지만, 화석을 통해 보면 몸체가 1.5-2.3m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난쟁이 코끼리와 모습이 비슷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코끼리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되는 스테고돈(Stegodon)도 멸종 전까지 술라웨시, 플로레스와 같은 인도네시아의 섬에 살았다. 이는 대륙에 살던 동물이 ‘섬’이라는 자원이 제약되고 포식자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환경으로 이주해 적응한 결과로 해석된다.
작아지기도 하지만 커지기도 하는 ‘섬의 법칙’
그러나 섬에 정착한 동물이 조상들보다 몸집이 항상 작아지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30cm의 길이로 태어나 무려 2m 이상의 길이로 자라는 도마뱀이 있다. 바로 코모도 도마뱀인데, 세계에서 가장 큰 도마뱀이자 강력한 포식자로, 이름이 유래한 코모도 섬과 린카 섬 등지에 살고 있다. 과거에 개체수가 많았을 때는 플로레스 섬에도 서식지가 컸다고 알려져 있다.
플로레스 섬은 흥미로운 곳으로, 한때, 호빗이라는 별명을 가진 작은 인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빙하기가 끝날 무렵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이 작은 사람들은 키가 1m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이 섬에는 작은 사람들과 작은 코끼리, 그리고 아주 거대한 도마뱀들이 모두 살았다. 이렇게 섬으로 이주한 동물들이 조상이나 대륙의 동종들에 비해 몸집이 아주 작아지거나 아주 커지는 것은 세계 여러 곳에서 자주 관찰되는데, 이는 ‘섬의 법칙’이라고도 부른다.
메타 연구
최근 ‘네이처’지에 발표된 연구는 여러 발표된 연구를 종합해 천여 종의 조류, 포유류, 파충류를 조사하고 이 규칙이 전 세계적으로 관찰된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이 같은 몸집의 변화는 작고 멀리 있는 섬에 사는 포유류와 파충류에게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섬에서 1,165개 종, 대륙에서 890개 종의 척추동물들에 대한 이제까지 발표된 관련 연구를 모두 종합 분석(메타분석)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제까지 발표된 여러 연구는 특정 섬에서 모은 일부 동물종에 대한 자료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섬의 법칙’이 얼마나 일반성을 갖는지를 두고 서로 반박하는 결과를 보고해 왔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진은 이 같은 자료를 모두 모아 데이터의 출처와 표본수의 차이, 종간 차이와 집단 내의 차이, 가까운 계통의 종에 대한 바이어스(bias)와 같은 요인들을 통제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하는데 목표를 뒀다. 총 20만 개체 이상의 동물들에 대한 형태학적 측정치들이 분석되었다.

‘섬의 법칙’ 양서류를 제외하면 유효해
그 결과, 연구진은 먼저 포유류와 조류, 파충류에서 전반적으로 몸집이 작은 종은 커지고 큰 종은 작아지는 연관성을 관찰했다. 그에 비해 양서류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지만, 몸집이 작건 크건 상관없이 더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양서류를 제외하고 다른 종들에게서 ‘섬의 법칙’의 일반성이 관찰된 것이다.
또한, 분석 결과는 여러 가설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를테면, 대륙의 동종에 비해 섬에 사는 포유류나 조류 종들의 몸집의 크기의 차이는 섬의 표면적이나 고립도, 기온과 관련성을 보였다. 포식자나 자원에 대한 경쟁과 같은 여러 생태학적 조건의 완화에 의한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이 중 한 가지 요인으로 특정할 수는 없었지만, 이 같은 생태적 요인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도 덧붙였다.
다만, 분류군에 따라 보면 그 차이를 볼 수 있었는데, 포유류의 경우 몸집의 차이는 섬의 크기와 고립도, 기후와 관련성을 보여 작고 멀리 떨어진 섬일수록 그 차이가 극명해졌다. 그에 비해, 조류는 따뜻한 섬의 환경에서는 몸집이 더 작아지고 기온이 낮은 섬에서는 몸집이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파충류의 경우, 섬의 크기와 고립도가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작고 멀리 있는 섬일수록 작던 동물은 아주 커지고 크던 동물은 아주 작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이번 연구는 이제까지 발표된 방대한 자료를 메타 분석해 양서류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에게서 ‘섬의 법칙’의 일반성을 확인했다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분석 결과에 비춰 연구진은 섬에 정착하는 동물들의 몸집이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를 자원의 양이나 경쟁, 포식자의 수, 기후와 같은 생태 조건에 따라 예측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지금 세계가 우려하는 기후변화 역시 미래에 섬에 사는 동물의 몸집 진화에 영향을 주게 될 거라고도 덧붙였다.
- 한소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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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05-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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