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멜레온이 몸의 색깔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여러 색소를 지니고 있어서가 아니라 피부의 결정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구조색(構造色; Structural coloration)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몸이 나타내는 색채, 즉 체색(體色; Body color)에는 색소에 의한 색과 구조색 두 가지가 있다.
색소의 존재에 의한 체색은 화학색(Chemical color)이라고도 하는데, 멜라닌, 구아닌, 카로티노이드 등의 특정 색소에 의하여 동물의 몸 표면이 색을 나타내게 된다. 반면에 구조색은 격자구조, 박층구조 등 동물 체표면의 독특한 물리적 구조에 의해 빛이 반사 또는 회절, 간섭하면서 색을 내는 것으로서, 물리색(Physical color)이라고 볼 수 있다.
색소에 의한 화학색도 물론 미시적으로 보면 해당 색을 나타내는 빛의 파장을 반사함으로써 더욱 정확하게는 보색의 파장 대역을 흡수함으로써 발현되는 것이다. 다만 색소가 내는 색깔은 색소와 빛의 상호작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색소의 크기나 모양과는 관계가 없고, 이에 의한 화학색은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동일한 색을 낸다. 그러나 구조색의 경우 미세 구조의 배열 등이 달라지면 색도 변하게 되며, 사람이 보는 각도 등을 달리해도 색감이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동물의 체색 중에는 화학색과 구조색을 다 함께 지니는 경우도 많다.
생활용품 중에서 구조색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예로서 CD(Compact Disc)나 DVD(Digital Versatile Disc)를 들 수 있다. 음성, 영상 등의 디지털 정보를 저장하기 위해 이들 디스크 표면에는 미세한 홈들이 파여 있는데, 이 홈들이 일종의 회절격자(Diffraction grating) 역할을 하여 무지갯빛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몸 색깔을 자랑하는 동물 중에도 색소에 의한 것이 아닌 구조색으로 체색을 발현하는 것들이 적지 않은데, 공작이 대표적이다. 공작의 우아하고 화려한 꽁지깃의 색은 깃털 자체의 색소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곤충류 중에서도 화려한 구조색을 지닌 종들이 많은데, 중남미의 신비로운 파란색 나비로 알려진 모르포 나비(Morpho butterfly) 역시 이에 해당한다. 모르포 나비는 곤충강 네발나비과 (Nymphalidae)에 속하며, 아마존 지역을 비롯한 남아메리카와 멕시코 등 중앙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나비들이다. 모르포(Morpho)는 이 나비류의 속명으로서 ‘변한다’는 의미이며, 나비의 날개 색이 보는 각도에 따라서 현란하게 바뀌는 데에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모르포 나비 속 아래에 서식 지역과 모양 등을 달리하는 수십 개 이상의 종이 있으며, 그중 헬레나 모르포 나비(Rhetenor Blue Morpho) 등의 일부 종은 화려하고 강렬한 푸른 빛을 지니고 있어서 세계의 곤충 수집가들이 무척 선호하는 나비이기도 하다. 아마존 일대를 탐험했던 어느 박물학자는 500m쯤 떨어진 곳에서도 햇빛에 반짝이는 모르포 나비의 환상적인 푸른 날개빛을 볼 수 있었다고 저술한 바 있다.

그러나 모르포 나비의 날개에도 역시 파란색의 색소는 전혀 없다. 나비 날개의 독특한 나노구조에 의해 파란빛을 반사하고 다른 빛은 흡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모르포 나비의 비늘은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하나는 볼록하게 나와 있고 그 뒤의 짙은 색 비늘은 평평한 구조로 되어 있다. 볼록한 첫 번째 층에서 파란빛의 파장만을 반사하고, 나머지 파장 대역의 빛은 첫 번째 층을 투과해서 두 번째의 어둡고 평평한 층에 의해 흡수된다.
모르포 나비의 파란색 날개에 아세톤이나 알코올 등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나노구조가 바뀌면서 녹색 등의 다른 색으로 변하게 되고, 액체가 증발한 후에야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온다. 나비의 비늘을 문지르거나 하면 물론 비늘의 미세 구조가 파괴되어 본래의 아름다운 색을 잃고 만다.

동물이나 곤충의 구조색은 자연을 모방하여 유용한 신기술을 개발하는 생체모방공학(Biomimetics)에서도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눈에 더 잘 띄는 도로표지판이나 눈부심을 방지하는 스크린 등이 구조색을 응용하여 해외에서 개발된 바 있다. 환경에 해로운 각종 안료 성분 없이도 구조색으로 다양한 색을 구현하는 기술 또한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도 동물의 구조색을 모방하여 가변형 컬러필터 및 자연광을 이용하는 반사형 디스플레이 기술 등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조류 충돌 방지를 위한 광학 소자의 개발에도 조류의 구조색을 응용하고 있다. 즉 투명한 유리창이나 방음벽 등에 구조색을 내는 것과 유사한 특정의 나노구조물을 부착하면, 사람의 시야는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새들은 선택적으로 특정 빛을 감지하여 충돌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각종 신용카드나 지폐에 위조방지용 홀로그램 등이 부착되어 있는데, 여기에 구조색의 나노구조 등을 결합하여 위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 시스템 또한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 최성우 과학평론가
- 저작권자 2021-04-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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