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은 매우 다양한 몸 색깔을 지니고 있는데, 흰색 또는 검은색 등 무채색에 가까운 경우도 있고, 빨강, 파랑 등 화려한 색을 지닌 동물들도 적지 않다. 동물의 몸 색깔은 대개 피부나 털에 함유된 색소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홍학(紅鶴)이라고도 불리는 플라밍고(Flamingo)는 다리와 목이 긴 대형 조류인데, 아름다운 분홍 또는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동물원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런데 플라밍고의 원래 깃털의 색은 하얀색으로서, 갓 부화한 새끼 플라밍고는 전혀 붉은색을 띠지 않는다.
플라밍고는 성체가 되면서 몸 색깔이 분홍 또는 붉은색으로 변하는데, 이는 먹이에 포함된 색소 성분에서 기인한 것이다. 즉 플라밍고는 새우나 게 등의 갑각류를 주로 잡아먹고 사는데, 먹이가 되는 이 동물에는 카로티노이드(Carotinoid) 계열의 색소가 포함되어 있다. 분홍이나 노랑, 또는 주황색 등을 내는 카로티노이드는 동식물계에 널리 포함된 색소이다.

특히 아스타신(Astacin)은 적색 카로티노이드계 색소로서 새우나 게의 껍데기 등에 존재하는데, 이들을 주된 먹이로 섭취하는 플라밍고는 깃털조직에 아스타신이 축적됨에 따라 분홍 또는 붉은색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새우나 게에 포함된 붉은 색소 역시 그들이 원래 먹이로 삼는 해초의 색소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동물원에 사는 플라밍고들은 분홍 또는 붉은색의 색깔을 유지하기 위하여 아스타신이 포함된 사료를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 중에는 몸 색깔을 바꿀 수 있는 것들도 많은데, 특히 바다에 사는 동물 중에는 주변 환경에 맞춰 은폐하거나 구애 또는 위협 등을 위해 몸 색깔을 변화시키는 종류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특히 갑오징어는 변신의 귀재라 할만한데, 순식간에 밝은색 또는 어두운색으로 몸 색깔을 바꿀 수가 있다.
갑오징어는 색소를 합성하거나 저장하는 세포인 색소포(Chromatophore)를 통하여 몸 색깔을 바꾼다. 즉 색소세포 주변의 근섬유를 수축하거나 확장하여 색소의 상대적 면적을 늘이거나 줄임으로써 밝게 또는 어둡게 변화시킬 수 있다. 갑오징어 이외의 연체동물, 또는 어류 중에서도 색소세포 내의 색소의 과립을 변화시키거나 이동함으로써 몸의 색깔을 바꿀 수 있는 종들이 있다.

갑오징어가 변신에 가장 뛰어난 바다 동물이라면, 육지에서 최고의 변신 귀재로 꼽히는 동물은 단연 카멜레온일 것이다. 파충류인 카멜레온(Chameleon)은 뱀목 카멜레온과에 속하는 도마뱀류의 동물을 총칭하는 것으로, 고대 그리스어로 '땅 위의 사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큰 눈을 굴리면서 긴 혀를 내밀어 곤충 등을 잡아먹는 카멜레온은 몸 색깔을 자주 바꿀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수십 개 이상의 종이 있는 카멜레온은 변신능력과 가능한 몸 색깔 역시 종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멜레온은 주변 환경에 맞춰서 몸의 색깔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위장의 목적으로만 그런 것은 아니고 구애를 하거나 의사소통 또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몸 색깔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 즉 편안하거나 침착한 상태일 때에는 초록색이고, 동요하거나 이성을 유혹할 때에는 노랑 또는 빨강으로 변하며, 화가 나면 검은색으로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멜레온 피부의 색은 원래는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수단이었다고 하는데, 다양한 목적에 이용되도록 진화한 셈이다.

카멜레온이 몸 색깔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이유로는, 예전에는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색소의 축적이나 분산으로 인하여 피부색이 변화하게 된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몇년 전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카멜레온의 변신 메커니즘은 피부에서 나노 수준의 결정구조를 바꿈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즉 단순히 색소의 변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빛의 파장별 반사 패턴이나 광간섭 등과 같은 고도의 광학적 특성을 이용하는 셈이다.
카멜레온의 피부에는 빛을 반사하는 층이 2개가 있는데, 카멜레온이 피부를 당기거나 느슨하게 하면 피부층에 있는 나노결정의 격자구조가 바뀌게 된다. 매우 미세한 격자(Grating)의 간격과 구조가 변화하게 되면, 이를 반사하거나 간섭하는 빛의 파장 대역 역시 바뀌게 되므로 결과적으로 피부의 색이 변화하는 것이다. 피부에 힘을 주지 않은 편안한 상태에서는 카멜레온이 대체로 초록색을 띠게 되지만, 동요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생겨서 피부에 힘이 가해지면 노랑, 주황, 빨강 등의 색을 띠도록 변화하게 된다.
카멜레온처럼 색소가 없이도 색깔을 내는 것을 구조색(Structural Color)이라고 하는데, 자연에는 카멜레온 이외에도 구조색으로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을 내는 동물들이 더 있다. 또한 카멜레온의 변색 메커니즘을 보다 상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첨단군복이나 위장 물질의 개발 등으로 관련 연구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
- 최성우 과학평론가
- 저작권자 2021-03-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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