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더위가 계속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노래 한 곡은 더위를 잊게 하는 청량제와도 같다.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배우들의 가창력은 물론 수준 높은 무대를 선보여 몰려드는 관람객들로 연일 붐비고 있다.
뮤지컬을 보고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매니아들은 가끔 화려하고 스펙터클한 무대와 무대 메커니즘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궁금증을 갖기도 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샹들이에가 머리 위로 스쳐 지나가고, 수 백개의 촛불이 반짝거리는 가운데 크리스틴과 유령이 배를 타고 오페라 극장 지하 호수를 미끄러지듯 유영하는 등의 명장면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정말 이처럼 무대 뒤에 숨겨진 비밀은 어떤 과학 혹은 무대기술로 무장하고 있을까.
뮤지컬 <오페라 유령>은 프랑스 소설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탄생했다. 1911년에 <오페라의 유령>을 쓴 프랑스 작가 가스통 러루는 극장을 위해 끊임없는 열정을 쏟았던 사람이다. 그는 수년 동안 신문 비평기사와 여러 편의 희극을 썼지만 큰 수확을 얻지 못했으나, 프랑스 오페라 극장 지하에서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오페라 유령>을 써서 역사에 문학적 발자취를 남겼다.
러루는 오페라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19세기, 파리 오페라 극장 지하에 살고 있는 유령과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을 중심으로 집착과 열정, 불멸의 사랑, 천재성과 광기, 그랜드 오페라의 웅장한 테마와 감동이 공포와 마법으로 전개되는 <오페라 유령>을 썼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제는 당시 러루의 동료인 작가 빅토르 위고의 작품 <노트르담의 곱추>이나 에드가 월레스의 후기소설이자 영화인 <킹콩>과 같은 작품들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내용이었다.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그다지 많이 팔리지 않았고, 그 책에 대한 비평들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단지 프랑스, 영국, 미국 신문을 통해 유령이 오페라 하우스의 희미한 불빛 속을 걸어가거나, 그랜드 홀의 샹들리에가 흔들리는 모습, 또는 가면을 벗은 끔찍한 유령과 같은 그래픽 삽화와 함께 실린 연재물이 대중의 흥미를 끄는 정도였다.
그럼 소설로써 너무나 평범한 <오페라 유령>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오페라의 유령>이 갖는 신비한 매력 때문이었다. 러루는 평범한 주제 위에 초신비주의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프랑스 19세기 후반부의 분위기를 불어 넣었다. 그 신비감은 앤드류 로이드 웨이버의 음악, 볼거리로 가득한 특수효과와 무대장치 등에 의해서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 장면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그럼 오감을 자극하는 뮤지컬 <오페라 유령> 속 무대는 어떻게 꾸며졌을까.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 속 샹들리에의 추락이다. 서구 오페라 하우스의 필수 장식물인 천장의 샹들리에 장식은 파리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오페라 유령>에서 없어서 안 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오페라의 유령>에서 경매장면과 함께 무대 전면에 놓여진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샹들리에의 스위치를 연결하면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서곡이 시작된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오페라 하우스는 옛날 모습으로 복원되고,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거대한 샹들리에는 마법의 힘에 끌리듯 무대에서 솟아올라 천장에 높이 매달린다. 영화 속 장면은 샹들리에의 복원을 통해서 현재에서 과거로 시점이 이동하는 영상기법으로 샹들리에가 하얀 유령 가면과 함께 <오페라의 유령>을 대표하는 이미지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와 달리 뮤지컬 속 샹들리에는 경매 장면이 끝나면 중앙 상단에서 무대로 추락한다. 이 장면은 보는 이를 아찔하게 할 정도로 놀라운 장면이다. 그럼 엄청난 무게를 자랑하는 샹들리에는 어느 정도의 속도감으로 추락하는 것일까. 예술의 전당에 설치된 샹들리에는 주변 장비까지 합해 800kg의 무게에 달한다. 이것은 프로시니엄 아치 중앙 상단의 객석에서 수직으로 12m 지점까지 천천히 상승하다가 1막 끝의 추락 장면에서 2.2m/s의 빠른 속도로 추락해 약 20m의 비스듬한 경로를 움직여 다시 무대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이번 공연의 기술 감독을 맡은 말콤 램은 “밑에서 올려다봤을 때, 샹들리에의 구체적인 수치는 타원형인 샹들리에의 장축이 3.7m, 단축이 1m, 높이가 2.3m이며 샹들리에에 알알이 박힌 유리구슬은 약 1만여 개에 이른다. 실제로 매회 공연마다 추락 후 1막과 2막 사이의 휴식시간 때 무대 진행 요원들이 떨어진 부분들을 즉석에서 수리하고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실제 관객들에게 아찔한 공포와 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무대 장치로서 샹들리에의 추락은 극의 재미와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다음에 관람객의 시선을 끄는 장면은 어디일까. 크리스틴이 유령의 지하 은신처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영화 속 이 장면은 특별한 기술적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즉 크리스틴이 거울로 가장된 비밀의 문을 열고 지하 물길을 따라서 배를 타고 간다. 그러나 영화 속 이 장면은 잔뜩 기대했던 <오페라 유령> 매니아들에게 큰 만족을 주지 못 했다. 그럼 뮤지컬에서 이 장면은 어떻게 연출되었을까.
뮤지컬 속 크리스틴은 지하 은신처로 유혹하는 거울을 쳐다본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거울 속 반대편에 있다. 그리고 거울의 반대편에 있던 크리스틴은 처음에 유령이 들고 있는 등불 하나에 의지해서 길을 찾다가 이내 유령이 노를 젓는 배를 타고 무대에 등장한다. 무대에서 크리스틴이 거울의 반대편으로 이동하고 배를 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뮤지컬에서 마술을 부리는 것일까.
무대에서 사용되는 거울은 칼라필름 한쪽 표면에 은코팅이 살짝 되어 있어서 뒷편에 조명이 안 들어가면 거울처럼 보이고, 뒷편에 조명이 들어가면 은코팅이 제 역할을 못 하고 투명하게 보이는 효과를 한다. 그래서 무대 속 크리스틴은 조명의 여부에 따라서 반대편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그리고 무대에 등장한 배는 실제 물길을 가로 지르는 배가 아니다. 무대용 배는 오페라극장 무대 바닥 위에 새로 설치한 공연용 무대(show deck) 안에 들어있는 케이블들과 연결되어 전기 공급을 통해 케이블 사이 구석구석에 배치되어 있는 도르래를 통해 방향성을 가지며 움직인다.
그리고 바닥을 덮는 드라이아이스는 총 10개의 스모그 기계를 통해 내뿜어지는데, 이 배가 마치 물안개가 낀 음침한 강가를 여행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281개의 촛불이 들어있는 장식과 촛대가 무대 위로 미끄러져 들어와 실제 촛불처럼 반짝이는 유령의 은신처는 음악에 미쳐 사는 유령을 편집증 환자처럼 보여준다. 이렇듯 무대에서 기계 장치로 무대와 소품 등을 조작하는 것을 오토메이션이라고 하는데 <오페라의 유령> 전체에서 무려 120번의 오토메이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장면 전환 자체가 하나의 볼거리를 만들어 낸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극 속에서 또 다른 극을 볼 수 있다. <오페라 유령>에서 공연되는 세 개의 오페라 공연은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무대의 볼거리를 제공한다. 세 개의 공연은 무대 위에서 수시로 오르내리는 각종 막들을 통해서 순식간에 전혀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화려하게 펼쳐지는 극 사이에 등장하는 세 가지의 오페라, <한니발> <일 무토> <돈 주앙의 승리>은 화려하게 작화된 무대 막들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화려한 프랑스 궁정의 오페라 분위기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이는 유령의 어두운 지하 은신처와 색 대비를 이루어 극한 상황의 대비를 보였고, 기술적으로 스무 개의 막을 통한 빠른 장면전환을 통해 속도감 있는 극의 진행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 들어 무대미술은 공연예술에서 너무나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무대 미술가들은 고전적인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목재를 통해서 무대의 전면을 장식하던 차원을 벗어나서, 요즘은 조명의 조도와 각도를 계산해 관람객들의 안정감을 유도하는 재료를 고르는 능력까지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무대미술에서 ‘영상효과’는 절대적인 요소가 되었는데, 컴퓨터로 믹싱 된 사운드, 진보된 스피커 시스템, 대형 비디오 프로젝터, 회전 조명기 등 영상효과의 기발함과 기술력은 갈수록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이처럼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명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업하는 무대미술가 혹은 무대기술자들은 예술적 능력, 과학적 사고력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기술력으로 무장되어 있다.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서 밤을 노래하는 크리스틴과 함께 예술과 과학적 사고력에 기반해 탄생한 무대미술의 또 다른 면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공 연 명 :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공연기간 : 2005년 6월 10일 - 8월 31일
공연장소 :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공연문의 : 02) 580-1300
사 이 트 : 오페라의 유령 http://www.musicalphantom.co.kr/
- 공채영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5-07-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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