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인류는 다양한 의약품을 이용해 질병이나 기생충 감염 등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발전한 기술을 바탕으로, 잘 정제되고 복잡한 방식으로 조합된 화학성분들이 이에 사용되어, 의약품의 사용은 인간 고유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 외의 동물들도 특정 식물이나 자연의 물질들을 예방의학적, 혹은 치료를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인간과 가장 가까운 판속(Pan)의 침팬지는 국화과의 나무인 베로니카 아막달리아(Vernonia amygdalina)의 수액을 빨거나, 미세한 털이 이파리에 많이 나있는 아스필리아(Aspilia)라는 식물을 씹지 않은 채로 열 개 이상씩을 삼키는 방식 등으로 기생충을 몸 밖으로 배출한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또한 호랑이는 상처를 입었을 때, 센텔라 아시아티카(Centella asiatica)라는 식물에 상처를 문질러 그 수액으로 치료를 한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식물은 ‘호랑이풀’이나 ‘시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중국이나 아프리카 등에서 수천 년간 민간요법에 사용되어 왔다. 최근 한국에서도 ‘시카’라는 이름으로, 화장품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외에도 새가 둥지를 만들 때 향이 나는 식물들을 가져다 쓰는 것도 예방의학적 목적일지 모른다는 가설이 있어왔다. 식물의 성분이 기생충들을 쫓고, 아기 새들이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도록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섬참새(russet sparrows)도 특유의 향을 가진 ‘쓴쑥(wormwood)’의 이파리를 둥지를 만들 때 함께 섞어 쓴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섬참새가 둥지를 만드는 시기에 용선제(龍船節)라는 축제를 여는데, 이때 쓴쑥을 자기 집 문에 걸어놓는 전통이 있다. 이는 쓴쑥이 병으로부터 구해준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는데, 쓴쑥에 기생충을 퇴치하는 물질이 있다는 것도 밝혀진 바 있다.
최근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발표된 연구는 섬참새가 둥지를 만드는데 쓴쑥을 가져다 섞는 것이 실제로 둥지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퇴치하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 같은 결론을 얻기 위해서 연구진은 다음의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가정했다. 하나는 섬참새들이 능동적으로 쓴쑥을 선택해 둥지 만들기에 이용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성분들이 실제로 기생충의 숫자나 효율을 떨어뜨리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먼저 섬참새들이 쓴쑥을 선택적으로 둥지틀기에 사용하는 것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각각 쓴쑥과 대나무를 섞은 두 종류의 새집 48개 쌍을 준비해 새들이 어느 쪽을 선택하는지를 봤는데 확연히 쓴쑥이 섞인 집을 선택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쓴쑥을 둥지로 가져다주지 않는 경우 쓴쑥을 가져다준 경우에 비해 새들이 스스로 쓴쑥을 더 물어다가 둥지에 보충해 넣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연구진은 둥지에 포함된 쓴쑥의 함량이 둥지에 기생하는 진드기 숫자, 그리고 아기 새들의 성장률과 연관성을 갖는지를 확인했다. 이를 위해 새들이 사용하는 둥지를 각각 세 조건으로 나누어 매일 쓴쑥을 보충해 주거나 쓴쑥을 대나무로 매일 조금씩 대체시키거나 둥지에 있는 쓴쑥을 모두 제거하거나 했다.
그 결과 매일 쓴쑥을 보충해 준 둥지에서 진드기의 수가 가장 적고, 아기 새들의 몸무게가 다른 새들에 비해 더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반면 둥지의 쓴쑥을 모두 제거한 경우는 진드기가 가장 많고 아기 새들의 무게는 가장 가벼웠다.
사람들이 쓴쑥을 약초로 사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섬참새들도 이를 진드기 퇴치와 아기 새의 건강을 위한 목적으로 선택적으로 둥지 만들기에 이용해 왔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 한소정 객원기자
- sojungapril8@gmail.com
- 저작권자 2020-12-18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