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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강봉 객원기자
2020-09-09

생화학무기 ‘노비촉’의 비밀 독일 약리학‧독성학 연구소에 세계 이목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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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세이 나발니(Alexey Navalny)는 현 푸틴 정권에 반대해온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다.

영향력 있는 인물로 주목을 받고 있었는데 지난달 20일 러시아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수도 모스크바로 가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국제 사회를 통해 독극물 중독 가능성이 제기됐고 이를 부인하던 러시아 의료진은 사실 확인을 위해 그를 독일로 이송했다. 그리고 지난 2일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연방군 연구소를 통해 진해된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나발니에게서 치명적 화학 무기로 분류되는 신경작용제 ‘노비촉(Novichok)’ 성분이 발견됐다는 것.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생화학무기 ‘노비촉(Novichok)’에 대한 연구가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wbcsd.org

베일에 싸여 있던 노비촉 독성 메커니즘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은 1970~1980년대 러시아에서 군사용으로 개발한 생화학무기 중 가장 강력한 독극물 중 하나다. 이 물질에 노출되면 보통 30초에서 2분 사이에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에 이르게 된다.

다른 신경작용제들이 가스인 것과는 달리 미세한 분말의 형태로 흡입을 통해, 또는 피부와 점막을 통해 흡수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 만큼 상대적으로 운반하기가 쉬어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독극물이 러시아 외부에서 공개적으로 노출된 것은 2018년 3월이다.

영국 남부 솔즈베리에서 과거 러시아 스파이로 활동했던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가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는데 노비촉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러시아에 해명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화학자들은 이 독극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1992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화학자 빌 미르자야노프 박사가 그의 자서전 ‘국가의 비밀(State Secrets)’을 통해 노비촉의 화학 구조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대응에 나선 서방 측은 1997년 발효된 화학무기 금지협정을 통해 사용할 수 없는 화학무기 리스트에 노비촉을 추가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독극물 사용처를 러시아와 서방측 간에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순식간에 사람에게 침투해 정교하게 신경중독 현상을 일으키는 독성물질을 식별하기 힘들다는 점 때문이다.

다양한 물질을 혼합해 사용하는 노비촉의 특성 때문에 어떤 과정을 통해 독극물 현상을 일으키는지 명확한 과정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독성을 유지하는지 그 기간에 대해서도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을 뿐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분광광도법 통해 신경중독 밝혀내는 중

9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이런 상황에서 세계가 독일을 주목하고 있다.

독일 뮌헨에 있는 분데스베르 약리학‧독성학 연구소(Bundeswehr Institute of Pharmacology and Toxicology)에서 독성 연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은 노비촉이 여러 계열의 신경작용제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독성이 매우 강해 사린가스는 물론 2017년 김정남이 암살될 당시 사용했던 신경독(VX) 보다 5~8배 이상 강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또 다른 사실 중의 하나는 노비촉이 인체 내 아세틸콜린 에스테라아제(AChE)란 효소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AChE는 아세틸콜린을 아세틸과 콜린으로 가수분해하는 효소이다. 부교감 신경을 지배하는 기관과 자유 신경절 등에 존재하는데 뇌속의 정보회로인 시냅스 신호 전달 물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이라 불리는 신경 전달 물질의 활동을 억제하는데 AChE가 활성화시킬 경우 헛구역질이나 호흡곤란, 마비 등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심각한 증상을 유발하게 된다.

주목할 점은 독극물 노비촉이 이 효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분데르베르 연구소에서는 첨단기술인 분광광도법(spectrometry)을 사용해 노비촉에 접촉했을 때 인체 내에서 어떤 생리작용이 발생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밝혀내는 중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혈청 알부민(serum albumin)과 관련이 있다. 인체 내에서 영양 물질, 대사 물질, 약제 등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단백질이다.

미국 아메리칸 대학의 화학자 스테파노 코스탄지(Stefano Costanzi) 교수는 “이 단백질 분석을 통해 노비촉 중독 이후 수 주 동안 독성물질을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가능성은 중추신경계 효소인 ‘BChE’다. UCSD의 조란 라딕(Zoran Radic) 교수는 노비촉 단백질이 이 효소와 연결돼 남아 있을 수 있다며, 분광광도법을 통해 그 실체를 밝혀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알렉세이 나발니 관련해 집중되고 있는 관심은 누가 노비촉이라는 독극물을 사용했느냐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그 출처가 밝혀질 수 있을지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독성 연구가 진행되는 사이 혼수상태에 빠졌던 알렉세이 나발니는 의식을 일부 되찾았다는 소식이다. 7일(현지 시간) 베를린 샤리테병원 관계자는 “나발니가 언어적 자극에 반응하고 있다.”라며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강봉 객원기자
aacc409@hanmail.net
저작권자 2020-09-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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