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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이성규 객원기자
2020-06-01

인류 최초의 치킨은 ‘닭 대신 꿩’? 초기 유적지 조류 뼈 분석 결과 꿩으로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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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척추동물 중 하나다. 전 세계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닭은 인류 수보다 정확히 3배 더 많은 230억 마리다. 이렇게 많이 사육되고 있는 까닭은 닭과 계란이 인류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최초로 먹은 치킨은 닭이 아니라 꿩일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 게티이미지

닭의 야생 원종은 붉은야생닭(적색야계)이다. 또한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닭의 가축화에 대한 최초 증거로 중국 북부의 8000년 된 신석기 다디완 유적지에서 돼지 및 개의 뼈와 함께 발견된 조류 뼈를 가장 많이 꼽고 있다.

다디완 유적지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업 정착지이자 건조한 북서부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붉은야생닭의 서식지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인도 동부, 중국 남부 등의 열대우림이다. 그럼 따뜻한 동남아시아를 서식지로 둔 붉은야생닭이 어떻게 갑자기 1600㎞ 이상 떨어진 중국 북부에서 최초로 인간의 손에 길들여질 수 있었을까.

이를 둘러싼 닭의 기원설 논쟁은 지난 30년간 이어져온 학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즉, 닭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가축임에도 불구하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한 과학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닭의 기원설은 여전히 논쟁 중

그런데 이전에 닭으로 확인됐던 다디완 유적지의 조류 뼈가 닭이 아니라 꿩이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미국의 환경컨설팅 회사 듀덱(Dudek)의 고고학자 루카스 바톤(Loukas Barton)과 오클라호마대학 분자인류학 및 마이크로바이옴연구소의 브리타니 빙엄 연구원 등의 공동 연구진은 다디완 유적지에서 발견된 조류 8마리의 뼈를 미토콘드리아 게놈 염기서열법을 포함한 두 가지 방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그 조류 뼈들은 닭이 아니라 꿩으로 밝혀진 것. 그 꿩들은 당시 신석기인들이 재배한 작물인 기장을 먹으며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년 내내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됐다.

다디완 유적지의 꿩들은 당시 신석기인들이 재배한 작물인 기장을 먹으며 생존한 것으로 드러났다. ⓒ TheOtherKev(Pixabay)

루카스 바톤은 이것이 닭의 초기 사육화 과정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꿩들은 인간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지속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사실 진정한 가축화는 인위적인 인간 선택에 의해 야기되는 물리적 혹은 유전적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진에 의해 밝혀진 고대 꿩의 게놈은 현대 야생 꿩의 게놈과 일치했다. 즉, 그 꿩들은 가축화가 된 것이 아닌 여전히 야생이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중국 산둥대학의 유전학자 유동은 이번 연구 결과가 닭의 기원에 대해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동은 당시의 신석기인들이 과연 꿩을 환영했을지 궁금하다고 주장했다. 요즘도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새들이 농작물을 먹어치우지 못하도록 밭에 그물을 쳐놓기 때문이다.

꿩 대신 닭이 가축화된 까닭

이에 대해 이번 연구의 주 저자인 루카스 바톤 역시 “신석기인들이 야생 꿩을 가축으로 기른 것은 마치 사냥꾼과 함께 살고 있는 사슴처럼 드문 사례”라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인류는 꿩을 좋은 육류 공급원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높다.

루카스 바톤은 바로 거기에 꿩들이 가축화되지 않고 결국 닭이 가축화된 비밀이 숨어 있다고 주장했다. 꿩들은 간헐적으로 알을 낳지만 닭들은 그보다 알을 훨씬 더 자주 낳으므로 결국 꿩 대신 닭이 가축화되었다는 의미다. 한편, 일각에서는 인더스 문명에서 닭싸움을 위해 처음 닭을 길렀던 것이 닭 가축화의 기원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설날에 떡국을 끓일 때 꿩고기로 국물을 내곤 했다. 하지만 일반 서민은 구하기 어려워 대신 마당에서 기르던 닭을 잡아서 사용해야 했다.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할 때 자주 쓰는 속담인 ‘꿩 대신 닭’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런데 이번 연구 결과가 닭의 기원에 대한 정설로 굳어진다면 이 속담의 의미도 약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인류가 꿩 대신 닭을 가축화하게 된 것은 차선이 아니라 단백질 공급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의 야생 꿩들이 닭처럼 알을 자주 낳도록 유전적 변화를 일으켰다면 어쩌면 우리는 주말마다 치킨이 아니라 꿩 튀김을 배달시켜서 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20-06-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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