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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20-02-28

인간의 발에 대한 통념이 뒤집혔다 발 가로폭의 아치가 진화와 기능의 열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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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두 발로 서서 걷고 뛰게 되면서 두 손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 인류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든 주요 요인의 하나로 알려진다.

그러면 발은 어떤 원리로 우리 몸무게를 지탱하며 걷고 뛰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 예일대를 비롯한 국제연구팀은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26일 자에 오랫 동안 간과돼 온 발 가로폭의 둥근 아치 부분이 발의 작동 방식과 진화, 걷기와 달리기의 핵심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발견은 지난 100년 동안 유지돼 온 인간의 발에 대한 통념을 뒤집고, 진화생물학에서의 새로운 탐구는 물론, 로봇 발과 의족을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이번 연구는 예일대 공학자인 마두수단 벤카데산(Madhusudhan Venkadesan) 조교수와 영국 워릭대의 슈레야스 만드레(Shreyas Mandre) 부교수 및 일본 오키나와 과학기술대학원 대학교(OIST) 마헤시 반디(Mahesh Bandi) 부교수가 공동으로 수행했다. [관련 동영상]

발의 가로 아치(TA)와 종방향 세로 아치(LA). 종방향 세로 아치는 발의 강성에 대해 그동안 많이 연구되었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세로 아치보다 가로 아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 OIST

100년 동안의 기존 이론 뒤집어

사람이 걷거나 뛸 때는 각 발의 앞부분에 몸무게의 몇 배나 되는 힘이 가해져 바닥을 반복적으로 밀어낸다. 그런데 이런 강력한 힘이 가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발은 심하게 구부러지지 않고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다.

영장류 가운데서 인간에게만 고유한 이런 굳건한 발은 두 발 보행(bipedalism)의 진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간의 발은 어떻게 그렇게 강하게 만들어졌을까? 이전에는 그 이유가 발의 긴 쪽 세로 아치(longitudinal arch)에 기인한다고 생각했었다. 이 세로 아치는 발뒤꿈치에서 발 앞쪽까지 이어지고, 발아래쪽의 탄성 조직으로 강화돼 있다.

아치와 탄성 조직은 활과 활 양 끝을 잇는 줄(bow-and-string) 구조를 생성하며, 거의 100년 가까이 이 구조가 발의 강성(stiffness)을 유지하는 원천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발에는 가로 아치(transverse arch)로 알려진, 발 중간 폭을 가로지르는 두 번째 아치가 있다. 연구팀은 이전에 연구되지 않았던 이 가로 아치에 주목했다.

우리가 달리기를 할 때 발은 체중의 두 배 이상 힘으로 바닥을 밀어내지만 발에는 강성이 있어 제모습을 유지한다. 달릴 때 발에 가해지는 힘을 측정하는 실험. 동영상 캡처. © Yale Biomechanics and Control Lab

이들은 발의 기계적인 모사품과 사체의 발, 그리고 오래전에 멸종된 인류 조상과 친척 인류족(hominins)의 화석 표본을 사용해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다. 그리고 실험 결과 가로 아치가 발의 강성을 나타내는 주 원천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가로 아치가 발 강성의 절반 이상 차지”

가로 아치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간단하게 알아낼 수 있다.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한 쪽 끝을 잡고 있으면 지폐는 이리저리 휘날린다.

그러나 둘째와 셋째 손가락 위에 지폐를 놓고 엄지손가락으로 가운데를 살짝 눌러 곡선을 만들면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있게 된다.

벤카데산 교수는 “이런 유형의 효과는 발에서도 똑같이 작동한다”며, “발에는 다른 많은 조직과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에 종이 한 장처럼 단순하지는 않지만, 원리는 같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수학적 분석과 실험을 통해 곡률이 강성을 유발하는 이유, 즉 휘어진 구조를 구부리면 재료에 신축적인 힘(stretch)이 생기는 이유에 대한 기계적 원리를 파악했다.

종이 한 장도 잡아당겨 펴려고 하면 힘이 꽤 많이 든다. 연구팀은 가로 곡선에 이런 신축적인 강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전체 구조를 강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1978년 탄자니아 라에톨리에서 발굴된, 화산재에 찍힌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성인과 아이의 발자국을 복원한 모습. 일본 도쿄 국립 자연과 과학 박물관 소장. © Wikimedia / Momotarou2012

발은 복잡하고 다기능적인 구조를 갖고 있어서 연구팀이 이론을 테스트하기 위해 발의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가로 아치만을 수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발의 기계적 모방품에 대한 실험을 통해 가로 아치가 실제 인체의 발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알아보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벤카데산 연구실의 알리 야와르(Ali Yawar) 박사과정생은 “발의 가로폭에 걸쳐 있는 조직을 모방한 가로 스프링이 곡률-유도 강성에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따라서 가로 조직을 제거하고 모든 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실제 사람의 발에서 강성이 줄어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예일대의대 스티븐 토마시니(Steven Tommasini) 연구원과 함께 인간 사체의 발에 대해서도 실험을 수행했다.

벤카데산 연구실의 캐롤린 엔지(Carolyn Eng) 부연구원은 “횡단 조직을 통해 작용하는 가로 아치가 발 강성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이는 세로 아치가 기여하는 것보다 상당히 많은 양”이라고 말했다.

현대인과 라에톨리 발자국을 3차원으로 스캔한 모습. A와 B는 현대인, C는 라에톨리 발자국. © Wikimedia / Raichlen DA, Gordon AD, Harcourt-Smith WEH, Foster AD, Haas WR Jr

“현재의 발 가로 아치는 350만 년 전 진화”

이런 결과들은 또한 고인류 화석 루시(Lucy)와 같은 종인 366만 년 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발에 명확한 종방향 세로 아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걸어 다니면서 현대 인류와 같은 발자국을 남겼을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팀은 예일대의대 앤드루 하임스(Andrew Haims) 교수와 함께 발의 부분 골격을 이용해 가로 곡률을 측정하는 새로운 기법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기술을 A.아파렌시스를 포함한 고인류 화석 표본에 적용해 가로 아치가 초기 인류족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추적했다.

벤카데산 교수는 “우리가 발견한 증거에 따르면 현 인류와 같은 가로 아치는 호모 속(genus Homo)이 출현하기 150만 년 전인 350만 년 전에 진화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현대 인류의 진화에 핵심적인 단계였음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번 발견은 또한 진화생물학과 로봇공학을 비롯해 족부의학(podiatry)에 새로운 시각을 전해줄 것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20-02-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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