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인기리에 개봉했던 영화 ‘아이언맨 2’에는 러시아에서 온 천재 과학자 이반 반코(미키 루크 분)가 등장한다. 그는 악덕 기업체 사장으로부터 “사람이 입으면 힘이 강해지는 웨어러블 로봇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고선 “날 믿어. 드론이 더 나아(Trust me. Drone better)”라고 말한다.
‘드론(Drone)’이라는 단어는 본래 ‘낮게 윙윙대는 소리’라는 뜻이다. 여기서 다양한 의미가 생겨났다. 수벌, 악기의 저음 등을 뜻하기도 한다. 영어권에서는 사람이 탑승하지 않는 기계장치, 즉 무인 자율구동 로봇이라는 뜻으로 더 자주 쓰인다.
즉 잠수함이나 배, 비행기 등 종류와 관계없이 사람이 타지 않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무인기’는 모두 드론으로 구분한다. 즉 ‘드론 = 자율이동형 로봇’이라고 번역해도 무리가 없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드론이라는 단어의 뜻이 조금 더 제한적으로 쓰인다. 자율이동체의 한 종류인 ‘무인항공기’를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론의 인기는 지대하다. 하늘에 드론을 띄우고 조종하며 즐거움을 찾는 레저활동부터 시작해 항공촬영, 관측 및 측량, 과학기술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가장 빠르게 실용화되어가고 있는 기술이기도 하다.
생활공간을 3차원으로 확장한다
드론이 이처럼 인기를 끌고 있는 건 당연히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다’는 사실 한 가지 때문이다. 사람은 지상에서 살아간다. 비행기를 타는 등 제한적으로 3차원 공간도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생활방식은 어디까지나 평면, 즉 2차원이 기본이다. 하지만 드론을 사용하면 인간은 자신의 주변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드론이 가장 흔하게 쓰이는 분야가 바로 항공촬영이다. 과거에는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야만 겨우 촬영할 수 있었던 영상을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최근 TV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항공 영상은 거의 대부분 드론을 이용한 것이다.
드론 기술이 발전하면서 앞으로 점점 더 주목받을 것으로 보이는 분야는 물품이나 식음료를 가져다 나르는 ‘배송’ 사업이다. 교통체증을 피해 하늘로 물건을 가져다 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의 아마존이나 도미노피자 등 여러 업체가 드론을 이용한 배달 서비스를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중대형 드론이 자동으로 뜨고 내릴 수 있는 ‘드론 공항’을 만들면 외딴섬으로 생필품 등을 배송할 때도 쓸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 서비스를 실제로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충남·전남의 도서 지역 및 산간지역 주민들에게 드론으로 물품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험 운영할 계획이라고 지난 7월 밝혔다. 2022년까지 10곳의 ‘드론 배달 기지’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드론은 군과 경찰, 소방서 등에서도 가치가 크다. 사람이 타지 않으니 목숨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적진을 정찰할 수 있고, 제한적이지만 원거리 공격도 가능하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공중전을 벌일 수 있는 무인 전투기의 등장도 기대되고 있다.
경찰이나 소방서, 해안경비대 등에서도 드론의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산불 및 해안감시, 사고 현장 확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인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했던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도쿄전력은 사고 현장에 미국 ‘허니웰’사가 개발한 T호크(T-Hawk)라는 원격조종 드론을 6차례나 투입하기도 했다. 이 드론은 하늘에서 원전의 현재 상황을 알아내고 복구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과거에는 도저히 드론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다양한 특수임무를 맡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공간정보 데이터 획득이 가능한 고정밀 카메라를 장착해 지적(토지기록)관리용 데이터를 만들 수 있고, 복잡한 측량도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드론도 출시되고 있다. 미세먼지 측정과 기상 관측이 가능한 상용 드론도 존재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드론을 이용해 건축물의 안전검사를 시행하는 기술을 개발한 바 있다. 교량이나 빌딩에 드론을 부착시킨 다음, 내장된 진동센서를 이용해 복잡한 안전검사를 대체할 수 있다.
인공지능, 변신 기술로 한계 돌파…미래엔 활용성 더 커질 듯
드론을 각종 서비스에 도입하려는 시도는 많지만 아직도 본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관련 기술이 부족한 점이 첫 번째 걸림돌이다. 먼 하늘은 물론 도심 내부까지도 안전하게 날아다니려면 건물의 입 간판, 전신주 등의 위치까지 포함한 완전한 입체지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또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자동차나 사람 등을 피할 수 있도록 라이다(레이저스캐너), 레이더, 초음파 센서 등도 적절히 활용해 주변을 감지하는 기술, 이런 정보를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위험을 회피해 임무를 완수하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도 필요하다.
현재 드론 기술이 가장 뛰어난 곳은 다수의 드론 정찰기를 운영하고 있는 미군으로 보이는데, 이곳에서도 완전한 자율운전기능은 갖추지 못해 인공위성을 통해 사람이 원격조종하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항공기가 가진 구조적 약점을 해결하는 것이다. 유인, 무인항공기를 불문하고 항공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비행기(고정익)와 헬리콥터(회전익)이다. 고정익 항공기는 장시간 비행이 가능하고 속도도 빠르다. 하지만 뜨고 내리려면 활주로가 필요하고 자유롭게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다.
회전익은 이와 반대다. 수직으로 뜨고 내릴 수 있고 방향 전환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연료 소모가 커 장시간 비행이 어렵고 속도도 느리다. 사람이 타는 유인항공기의 경우 크기가 적지 않아 다양한 환경에서 쓰기 어렵다.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항공기를 제작해 사용한다.
하지만 드론의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배송, 항공촬영 등을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어느 곳에서나 수직으로 뜨고 내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곳저곳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려면 빠른 속도로 날아다닐 필요도 생긴다. 드론은 유인항공기에 비해 크기가 작아 연료 탑재량이 크지 않고 배터리로 움직이는 경우도 많다. 결국 장거리 비행 기능과 수직이착륙 기능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숙제가 생긴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최신형 드론 연구는 ‘변신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헬리콥터처럼 이륙하지만 날개도 달려 있는 드론이다. 공중에 뜬 다음엔 추진기의 방향을 뒤로 돌려 빠른 속도로 날아간다. 중대형 드론의 경우 프로펠러의 방향을 꺾는 ‘틸트’ 기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형 드론에서는 앞은 물론 머리 위에도 작은 프로펠러를 여러 대 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최초의 변신형 드론은 국내에서 개발됐다. 2011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이 개발한 ‘스마트무인기’가 첫 변신형 드론으로 꼽힌다. 이후 다양한 변신형 드론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런 기술을 적용하면 먼 거리까지 빠르게 날아가 문 앞까지 문건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배송 로봇, 비행장이 필요 없는 중대형 운송용 드론 등의 실용화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사이에선 “드론이 실생활에 완전히 녹아들기 위해서는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 수준에 맞는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자주 들린다.
예를 들어 드론의 도심지역 비행은 금지돼 있다. 도심에서 사고를 일으킬 경우 안전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테러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여객기와 충돌해 항공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어 공항 근처에서도 쓸 수 없다.
정책입안자들은 “기술이 완벽해진 다음에야 제도 완화를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연구개발자들은 “연구활동까지 제한받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배려해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국내 항공기술 전문가는 “복잡한 곳에서도 회피기동이 가능한 고성능 드론을 개발하려 해도 실험할 곳이 없다”면서 “관련 규정을 지키려면 외딴곳으로 나가야 하고 대학 실험실 내에서도 실험을 원활하게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전승민 과학기술분야 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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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9-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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