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더스 문명인의 첫 유전체와 함께 고대인 DNA에 대한 최대 규모의 분석을 통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인 조상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이동했는지에 대한 전례 없이 상세한 내용이 밝혀졌다.
6일 자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와 ‘셀’(Cell) 지에 한 쌍의 논문으로 발표된 이번 연구는 또한 농업의 기원과, 남아시아(인도) 및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되는 인도-유럽어의 원천에 대한 오랜 의문도 풀어냈다.
북미와 유럽,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유전학자, 고고학자 및 인류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연구에서는 전혀 탐구된 적이 없는 고대인 유전체 524개를 분석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발표된 고대인 게놈 수가 25%가량 늘어나게 됐다.
연구팀은 이들 유전체들을 상호 대조하고 또 이전에 분석된 유전체와 비교해 그 정보를 고고학과 언어학 및 다른 기록들과 연결지음으로써, 중석기시대(약 1만2000년 전)로부터 약 2000년 전까지 이어진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이 지방의 여러 지역에 누가 살았는지 그리고 이들은 오늘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주요 세부사항들을 다수 확인했다.

새 통합 접근법으로 대량의 정보 확보
두 논문의 공동 시니어 저자이자 하버드의대 블라바트니크 연구소 유전학 교수인 데이비드 라이크(David Reich) 박사는 “수많은 샘플을 통해 인구집단 간의 미묘한 상호작용과 집단 안의 국외자들을 탐지할 수 있었다”며, “이는 최근 몇 년 동안의 기술적 진보를 통해서만 가능한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라이크 교수실 박사후 연구원이자 논문 공동 제1저자인 바기쉬 나라심한(Vagheesh Narasimhan) 박사는 “이번 연구는 고대 유라시아에서 가장 심대한 두 가지의 문화적 변형인 수렵 채집에서 농업으로의 이행 그리고 사람들의 이주에 따라 오늘날 영국에서부터 남아시아에서까지 사용되고 있는 인도-유럽어의 확산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 시니어 저자인 비엔나대 론 핀하시(Ron Pinhasi) 교수는 “이번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측면 중 하나는 유전학을 고고학 및 언어학과 통합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료들을 여러 학문의 방법론과 관점을 결합한 통합 접근법으로 분석해 새로운 결과들을 도출함으로써 한 분야 단독으로 수행한 연구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새로운 샘플링 방법을 도입해 DNA가 열악하게 보존된 지역에서 유전자 확보 기회를 최대화하면서 유골 손상은 최소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인도-유럽어 확산의 열쇠를 찾다
힌두/우르두어, 벵갈어, 펀잡어, 페르시아어, 러시아어, 영어, 스페인어, 게일어 등 400개 이상의 언어를 포함하고 있는 인도-유럽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언어계열을 형성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유럽어가 어떻게 세계의 먼 지역까지 전파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수십년 동안 논란을 벌여왔다.
유라시아 대초원(steppe)의 목축인들이 광활한 초원을 이동하며 퍼뜨렸을까, 아니면 지금의 터키 지역인 아나톨리아에서 동서로 이동하는 농업인들을 따라 확산됐을까?
라이크 교수팀은 201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도-유럽어가 유라시아 대초원을 통해서 유럽에 도입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이언스’ 지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남아시아 역시 그런 케이스라고 보고했다. 즉, 오늘날 남아시아 주민들 가운데 아나톨리아 뿌리의 농민 조상을 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라이크 교수는 “아나톨리아 뿌리를 가진 농민들이 남아시아로 이주해 농업과 인도-유럽어를 확산시켰다는 ‘아나톨리아 가설’을 배제시킬 수 있게 됐다”며, “사람들의 실질적인 이주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이 가설의 허점”이라고 지적했다.

‘대초원 기원 확산론’의 증거
인도-유럽어의 대초원 확산론을 지지하는 첫 번째 새로운 증거는 인도-유럽어의 한 갈래인 발틱-슬라브어와 인도-이란어 사용자를 연결하는 유전적 패턴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오늘날 두 언어의 사용자들이 대초원 목축인 계열의 후손들로, 이들의 조상은 5000년 전 유럽으로 서진했다가 다시 동쪽으로 발길을 돌려 이후 1500년 동안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로 확산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라이크 교수는 “이는 오늘날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인도-유럽어 사용자들이 어떻게 언어적 특징을 공유하게 됐는가 하는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간단히 설명해 준다”고 말했다.
대초원 기원설을 지지하는 두 번째 증거는 이번 연구에서 분석된 오늘날의 남아시아 인구집단 140개 가운데 일부에서 이들의 조상이 대초원에서 왔다는 현저한 표시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대초원 혈통이 짙은 이들 인구집단 가운데 하나를 제외한 모든 그룹은 역사적으로 사제 집단으로서, 고대 인도-유럽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전통 문헌을 관리하는 브라만 계급을 포함하고 있다.
라이크 교수는 “브라만 계급이 남아시아 다른 그룹들보다 더 많은 대초원 조상들을 가지고 있다는 발견은, 다른 요인들을 조정하더라도 남아시아의 인도-유럽어가 대초원에서 기원한다는 매우 흥미로운 새 논거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논문 공저자인 닉 패터슨(Nick Patterson) 하버드의대 유전학 연구원은 “이번 연구가 인도-유럽어 확산에서의 커다란 퍼즐 조각을 채웠다”며, “이제 높은 수준의 그림이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는 “200년 이상 허공에서 맴돌던 문제가 이제 빠르게 정리되고 있어 매우 놀랍다”고 덧붙였다.
농업의 기원- 동과 서 거쳐 북으로 전래돼
이번 연구는 또한 수렵 채집 경제에서 농업경제로의 이행이 농업인들의 이주에 의한 것인지 혹은 아이디어가 복사된 것인지 아니면 지역에서 발명된 것인지 등 오랫동안 논란이 돼 온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엿보게 한다.
유럽에서의 고대 DNA 연구에 따르면 아나톨리아 뿌리의 조상을 가진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유럽에 농업이 전래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새로운 연구에서도 이란과 남부 중앙아시아 투란(Turan)에서 비슷한 역학 관계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아나톨리아 관련 고대인과 농업이 거의 동시에 유입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핀하시 교수는 “이 같은 사실은 농업의 확산이 아나톨리아로부터 유럽으로 서진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수렵 채집인 그룹만 있던 아시아 지방으로 동진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농업은 이란과 투란에서 자리를 잡은 지 수천 년 뒤 아시아 내륙 산맥들을 거쳐 북쪽으로 퍼져 나갔다.
논문 공저자이자 이번 ‘사이언스’ 지 논문을 위해 많은 유골 샘플을 조사한 미국 워싱턴대(세인트루이스) 고고학자인 마이클 프라쉐티(Michael Frachetti) 교수는 “선조들과 경제 사이의 연결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약 5000년 전까지 서남아시아인 조상들이 농업기술을 가지고 북쪽으로 이동한 반면, 시베리아와 대초원에 살던 조상들은 남쪽의 이란 고원으로 유입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두 가지 이동 패턴은 산맥을 따라 생겨났는데, 이 이동로는 이전에 프라쉐티 교수가 제시한 ‘청동기 시대 실크로드’였다. 이 길을 따라 사람들은 동쪽과 서쪽의 농작물과 아이디어를 서로 교환했다.
남아시아는 수렵 채집인이 농업 채택
그러나 남아시아에서는 이야기가 상당히 다르다.
연구팀은 서쪽으로 농업을 확산시킨 특징이랄 수 있는 아나톨리아 관련 조상의 흔적을 남아시아인들에게서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남아시아인들에게서 찾아낸 이란 관련 조상의 흔적은 이란의 농부와 수렵 채집인이 분리되기 전의 혈통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연구팀은 남아시아에서의 농업은 서쪽 초기 농업문화인들의 이주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수렵 채집인들이 농업을 채택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라이크 교수는 “약 4000년 전 대초원 목축인들이 인도-유럽어를 유입시켰으며, 그에 앞서 남아시아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당시 인더스 문명(Indus Valley Civilization)의 조상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히말라야에서 아라비아해에 이르는 인더스 강 계곡은 4000~5000년 전 사이에 번성했던 고대 세계 초기 문명 중 하나다.
사람들은 수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도시를 건설했고, 표준화된 무게와 척도를 사용했으며, 동아프리카처럼 멀리 떨어진 곳과도 상품 교역을 했다.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유전학자들은 이전에는 인더스 문명 고고학 유적지에 묻혀 있는 유골들에서 활용 가능한 데이터를 추출할 수 없었다. 남아시아 저지대의 열기와 변덕스런 기후가 대부분의 DNA를 손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기술의 발달로 분석이 가능하게 되었다. 연구팀은 인더스 하라파 문명을 일궜던 라키가리(Rakhigarhi)라고 불리는 가장 큰 도시에서 나온 60개 이상의 유골 표본을 분석한 결과, 고대 DNA의 힌트를 얻을 수 있는 유골 하나를 발견했다.
100회 이상의 염기서열 분석을 시도한 끝에 의미 있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충분한 데이터를 생성했다.
한 고대 여성의 유전체는 ‘사이언스’ 논문에 보고된 11명의 다른 고대인과 일치했다. 이 11명은 인더스 문명 지역인들과 물품 교역을 했던 지금의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 교역지에 살았다.
12명 모두 동남아시아 수렵 채집인 혈통과 남아시아 특유의 이란 관련 혈통이 포함된 독특한 혼혈 조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 혼혈인들은 당시 대다수의 이란 및 투르크메니스탄 거주자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연구팀은 ‘사이언스’ 지에 보고된 11명이 인더스 문명 지역에서 건너간 이주자일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12명 중 누구도 대초원 목축인 조상을 가졌다는 증거가 없었고, 이는 그 목축인들이 아직 남아시아에 유입되지 않았다는 모델과 일치했다.
인더스 문명인,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
‘사이언스’ 논문은 또한 4000~3500년 사이 초기 인더스 문명이 쇠퇴한 뒤 이들 12명이 속한 집단의 일부가 대초원 목축인 조상을 가진 북쪽에서 유입된 사람들과 섞여 선조 북부 인도인(Ancestral North Indians)을 형성했으며, 두 초기 선조 인구그룹 중 하나는 오늘날의 인도인의 조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원래의 그룹 일부는 또한 인도 반도 사람들과 섞여 선조 남부 인도인(Ancestral South Indians)이라는 또다른 초기 원천 인구그룹을 형성했다.
패터슨 박사는 “선조 북부 인도인과 선조 남부 인도인의 혼혈인들이 오늘날 남아시아인들의 주된 조상을 형성하고 있다”며, “두 그룹의 1차 조상들 모두 우리가 시퀀싱한 인더스 문명인의 조상에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나라심한 박사는 “이번 연구가 오늘날의 남아시아인을 남아시아 최초 문명을 일군 고대인과 연결시켜 준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한 개인의 유전체만 분석하면 인더스 문명 전체 인구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는데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패터슨 박사는 “인더스 문명을 일군 인구군은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구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추가적인 유전체 연구를 하면 ‘그림’이 확실하게 풍성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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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9-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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