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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19-09-05

기러기, 대사량 줄여 히말라야 넘는다 높은 고도 등 극저산소 조건에서 적응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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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을 가본 이들은 3000미터 고지에만 올라도 숨이 턱턱 막히고, 4000미터 부근에서는 발걸음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인도기러기(bar-headed geese)들은 인도 저지대에서 최대 8800미터 높이의 히말라야산맥을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넘어 티베트고원과 멀리 몽골까지 계절 여행을 한다. 어디서 이런 능력이 나오는 것일까?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이자 극한 환경 생리학자인 제시카 메이어(Jessica Meir) 박사팀은 새끼 인도기러기들을 성장시킨 다음 풍동 시설을 이용한 실험 결과 이 기러기들이 대사량을 줄여 히말라야산맥을 넘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관련 동영상>

이 연구는 생명과학저널 ‘이라이프’( eLife) 3일 자에 발표됐다.

공중을 날고 있는 인도기러기들. 인도 라자스탄 바라트푸어 지역.  CREDIT: Wikimedia / J.M.Garg
공중을 날고 있는 인도기러기들. 인도 라자스탄 바라트푸어 지역. ⓒ Wikimedia / J.M.Garg

풍동 실험으로 종합적인 생리현상 파악

메이어 박사는 “비행 중 날개를 펄럭이는 것은 신진대사상 에너지가 매우 많이 들고 엄청난 양의 산소를 필요로 한다”며 “더구나 공기가 희박한 공중을 장시간 비행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UBC) 박사후 연구원으로 이번 연구를 주도한 그는 “기러기들은 풍동 실험에서 정상 산소 농도에서 비행할 때보다 신진대사량을 줄여 극도로 낮은 산소 농도에서 비행했다”고 밝혔다.

이전의 연구에서는 기러기들이 높은 고도에서 산소 사용을 최대화할 수 있는 적응력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었다.

이에 비해 이번 연구는 처음으로 높은 고도 환경을 시뮬레이션한 풍동 실험실에서 기러기들이 비행하는 동안의 종합적인 생리현상과 대사량을 측정했다.

호흡 측정 마스크와 작은 배낭을 맨 풍동실험실의 인도기러기 모습. CREDIT: Milsom Lab/UBC
호흡 측정 마스크와 작은 배낭을 맨 풍동 실험실의 인도기러기 모습. ⓒ Milsom Lab/UBC

‘기러기 엄마’ 되어 실험 수행

메이어 박사와 UBC 동료인 줄리아 요크(Julia York) 연구원은 연구 수행을 위해 해수면 높이에서 태어난 새끼 인도기러기들의 엄마가 되어 평지 고도에서 직접 이들을 보살폈다.

태어나자마자 두 사람과 접촉한 새끼 기러기들은 이들을 어미로 알고 따랐기 때문에 실험 관리가 가능했다. 연구팀은 기러기들에게 얼굴 마스크를 씌우고 등에 측정장비가 들어있는 작은 배낭을 부착했다.

실험 결과, 풍동 실험실에서 비행할 수 있는 7마리 중 6마리는 해발 5500미터 정도의 중간 저산소 수준에서 잘 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중 세 마리는 인도기러기들이 히말라야에서 날았다고 보고된 대략 9000미터에 해당하는 극저산소 조건에서도 비행이 가능했다.

새끼 인도기러기들에게 엄마 노릇을 하는 제시카 메이어 박사.  CREDIT: Milsom Lab/UBC
새끼 인도기러기들에게 엄마 노릇을 하는 제시카 메이어 박사. ⓒ Milsom Lab/UBC

이번 연구 책임자로 10여 년 동안 기러기를 연구해 온 UBC 빌 밀섬(Bill Milsom) 동물학과 명예교수는 “기러기들이 날고 있는 동안 심박동 당 운반되는 산소량이 증가하고 심박수도 약간 늘어나면서 대사율이 쉬고 있을 때보다 16배 증가했다”며, “인간과 다른 동물들이 대사율을 최대 10배까지 늘릴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이는 대단한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저산소 환경에서의 인간 생리 연구에 활용 가능

상황이 어려워지면 기러기들은 효율성을 더 높이는 것으로 보였다.

메이어 박사는 “풍동의 5500미터 고도 환경에서 비행할 때는 해수면 산소 조건에서 비행할 때와 비교해 대사율 값이 떨어지는 것으로 측정됐다”고 말하고, “9000미터 고도 환경으로 산소 수준을 낮추자 대사율은 더 극심하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제시카 메이어 박사가 인도기러기에게 비행 훈련을 시키는 모습. CREDIT: Milsom Lab/UBC
제시카 메이어 박사가 인도기러기에게 비행 훈련을 시키는 모습. ⓒ Milsom Lab/UBC

심박수와 산소 소비량, 이산화탄소 생산량 및 혈액 온도 데이터는 이 독특한 능력의 토대를 형성하는 인도기러기 생리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논문 공저자인 요크 연구원은 “산소가 줄어든 환경에서 비행하는 동안의 심박수가 정상 산소 수준에서 비행할 때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며, “풍동 실험실에서 비행하는 동안 정맥 온도가 낮아졌는데, 이는 혈액에서 운반하는 산소량이 크게 증가했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결과들이 인도기러기가 높은 고도로 장기 이동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더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야생에서 또는 통상의 저산소 및 저압 조건에서의 장기 비행 동안 생리적 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추가 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메이어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심장마비나 뇌졸중에서부터 장기 이식 같은 과정에 이르기까지 저산소 환경에서의 동물과 인간의 생리학 및 생의학 분야와도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19-09-0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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