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에 빠지지 않고 배우는 과학 상식 중 하나가 ‘마리아나 해구’(Mariana Trench)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베레스트, 가장 깊은 바다는 마리아나 해구라고 배운다.
마리아나 해구는 태평양 북마리아나 제도 동쪽에서 남북방향으로 길이 2550㎞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평균 너비는 70㎞, 평균 수심 7000~8000m에 이른다.
해구는 대륙을 나누는 거대한 2개의 지각 판(plate)이 충돌하면서 생긴 깊은 계곡이다. 이 거대한 판들이 세계 곳곳에 바다 밑에서 부딪히고 충돌하는 지점을 통해 바닷물이 지각 아래로 끌려들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가는 물의 양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3배나 더 많다는 사실이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네이처(Nature) 저널에 발표된 이번 발견은 지구의 깊은 바다속에서 이뤄지는 물 순환을 연구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논문의 제1저자인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의 첸 카이(Chen Cai) 박사는 “그동안 사람들은 섭입대(攝入帶, subduction zone)에서 물이 땅 속 깊숙이 유입되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가는 지는 정확히 몰랐다”라고 말했다.
판 구조론에 따르면 판의 이동에 의해 판과 판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이때 해양판과 대륙판이 충돌할 경우 상대적으로 무거운 해양판이 가벼운 대륙판 밑으로 밀려들어간다. 이러한 작용이 일어나는 곳을 ‘섭입대’라고 한다.
이번 결과는 지구의 물 순환에서 깊은 바닷속에 잠겨있는 섭입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충돌하는 지각 판 사이로 물이 사라진다
바위는 물을 다양한 방법으로 붙잡고 있다. 바닷물은 대륙판과 해양판이 충돌하고 굽어지는 지점을 따라서 지구 맨틀 위쪽 안으로 흘러 들어간 뒤 갇힌다.
그 뒤 어떤 특정한 온도와 압력조건이 맞춰지면 화학적 반응에 따라 바위가 물을 머금게 된다.
말하자면 바위가 젖으면서 지질학적으로 물을 판 안에 가두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계속해서 판은 지구 맨틀 안으로 점점 더 깊이 물을 가지고 들어간다.
이전 연구에서는 섭입되는 물의 양에 대한 측정치가 제각각이었다. 이렇게 추정치가 달랐던 중요한 이유는 섭입되는 상층 맨틀의 물의 양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지진기록을 이미지 형태로 바꿔 물의 양을 추정하는 모델을 개발해서 사용했다.
연구진은 마리아나 해구를 가로지르는 7개 섬의 해양 바닥에 19개의 지진계를 설치했다. 그리고 1년 넘게 땅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연구진은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구를 뚫고 들어가는 태평양 판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연구진은 3차원 구조의 태평양 판을 그려 물을 붙잡는 바위의 상대적인 이동 속도를 추적했다.
이렇게 연구진이 파악한 지각의 이미지는 마리아나 해구에서 물을 품고 있는 바위의 영역을 보여주는데, 그 범위가 해저에서 무려 20마일이나 아래로 뻗어 있었다. 이는 이전에 생각하던 것 보다 훨씬 더 깊은 것이다.
마리아나 해구 지역만 따지면 이전에 계산했던 것 보다 4배나 많은 물을 품고 있었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를 분석해 전 세계 해양 해구 아래 있는 물의 양을 추정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60마일 이상 깊은 곳에서 맨틀안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은 지금까지 추정치의 3배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의 물 순환에 대한 새 모델 연구 필요
그런데 지구 안으로 물이 계속 들어만 간다면, 해수면의 높이가 크게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해수면 높이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이것은 섭입대에서 지각 안으로 들어가는 물들이 언젠가는 다시 지각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이번 연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많은 물이 지각 안으로 들어갔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지각 밖으로 나오는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순환을 이루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해구 아래로 들어가는 대부분의 물은 화산이 폭발할 때 기체가 되어서 지구 대기로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에서 밝혀진 물의 추정치를 감안하면, 지각 안으로 들어가는 물의 양은 지각 밖으로 나오는 물의 양을 크게 웃돈다.
이에 과학자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얼마나 많은 물이 지각 안으로 들어 갔다가 어디로 나오는지’에 대한 모델을 근본부터 다시 제시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각 안으로 들어간 물이 지각 내부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는 아직도 커다란 수수께이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8-11-27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