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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준래 객원기자
2018-10-26

거미의 독(毒)으로 만든 항암제 피부암 치료에 효과… 개미 독으로 진통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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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거둔 뛰어난 연구 성과를 살펴보면 자연에서 배운 지식이 도움을 준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청색기술이란 자연의 생명체들로부터 영감을 얻거나 이들을 모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특히 수많은 질병들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약물이 이런 방식을 통해 개발됐는데, 최근 들어 과학자들의 주목을 끄는 연구 대상은 단연 ‘독(毒)’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생물을 죽이거나 혹은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 가운데는 독특한 생화학적 기전을 지닌 것이 많다. 때문에 독은 약물로 개발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자연으로부터 얻은 물질을 신약 개발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YourLifeChoices.com.au
자연으로부터 얻은 물질을 신약 개발에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YourLifeChoices.com.au

첨단기술 전문 매체인 뉴아틀라스(newatlas)는 호주의 과학자들이 거미와 개미의 독으로부터 유용한 물질을 추출하여 신약 가능성을 타진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보도하며, 개발에 성공한다면 새로운 항암제와 진통제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거미 독 이용하여 항암제 연구

거미의 독을 이용하여 항암제를 연구하고 있는 곳은 호주 퀸즐랜드대가 운영 중인 생명공학 연구센터다. 센터 소속 과학자들은 ‘호주깔때기그물거미(australian funnel web spiders)’의 독을 활용하여 피부암인 흑색종(melanoma)을 연구하고 있다.

흑색종은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 내는 멜라닌 세포의 악성화로 생긴 종양이다. 피부에 발생하는 암 가운데서도 악성도가 가장 높아서 치료가 어렵기로 소문나 있는 피부암이다.

연구진은 호주깔때기그물거미의 독에 고메신(gomesin)이라는 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점을 발견했다. 고메신은 흑색종을 억제하는 데 효과적인 펩타이드의 하나로서, 브라질에 사는 거미인 ‘아칸소커리어고메시아나(Acanthoscurria Gomesiana)’의 독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리아 이코노모펄루(Maria Ikonomopoulou)’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호주깔때기그물거미의 독을 흑색종을 앓고 있는 실험쥐에 투여했다. 그 결과 흑색종 종양세포는 대부분 파괴됐지만, 정상 피부세포에서는 별다른 영향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퀸즐랜드대 관계자는 “항암제 개발과 관련하여 매우 흥미로운 결과”라고 말하며 “더 흥미로운 점은 호주깔때기그물거미의 독이 멸종 위기 동물 중 하나인 태즈메니아데블(tasmanian devil)의 악성 종양에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유대류(marsupial mammals)의 일종인 태즈메니안데블은 원시적 태생의 포유동물로 분류된다. 작음 곰처럼 생겼고 캥거루처럼 암컷은 대개 배 주머니를 가지고 있어서, 그 속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는 특징을 갖고 있다.

전염되는 암으로 멸종위기에 몰린 태즈메니안데블 ⓒ wikipedia
전염되는 암으로 멸종위기에 몰린 태즈메니안데블 ⓒ wikipedia

태즈메니아데블이 멸종 위기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얼굴에 주로 발생하는 매우 특이한 전이성 악성 종양인 DFTD(tasmanian devil facial tumour disease)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의 경우 체내에서 전이(轉移)는 일어나지만, 다른 개체에게 전염이 되는 질환은 아니다. 그러나 피부암의 일종인 DFTD의 경우는 다르다. 이 암은 다른 개체로 전염된 뒤, 해당 개체에서 다시 증식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전염되는 암인 DFTD의 존재는 지난 1996년에 처음 발견됐다. DFTD를 앓고 있는 태즈매니아데블이 무리에 들어가 짝짓기를 하거나 싸움을 하고 나면 상대방도 똑같은 피부암을 앓는 사례가 발견된 것.

당시 DFTD의 전염성을 확인한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연구진은 이를 학계에 보고했고, 전염을 막기 위해 태즈매니아데블의 서식지를 중심으로 DFTD 퇴치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현재 퀸즐랜드대 연구진은 호주깔때기그물거미의 독을 사용하여 DFTD 암세포를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코노모펄루 박사는 “어쩌면 호주깔때기그물거미의 독이 사람 뿐 만 아니라 태즈메니안데블의 목숨을 구하는데 있어 효과적으로 사용될 지도 모른다”라고 기대하며 “새로운 항암제를 찾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더 많은 후보물질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벌침 성분과 유사한 개미 독으로 진통제 개발

이코노모펄루 박사가 거미 독에서 항암제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찾고 있다면, 같은 대학의 ‘사무엘 로빈슨(Samuel Robinson)’ 박사는 개미의 독에서 진통제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찾고 있다.

일반적으로 개미들은 ‘포름산(formic acid)’을 분비하여 자신보다 더 큰 동물을 공격할 수 있다. 포름산은 모기도 갖고 있는 독성 물질의 하나인데, 통증을 유발하지만 독성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황소개미의 독으로 진통제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황소개미의 독으로 진통제를 개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 wikipedia

하지만 호주 브리즈번에 서식하는 황소개미(myrmecia gulosa)의 독은 포름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황소개미의 독을 분석한 끝에 침벌류(aculeata)의 독과 유사한 펩타이드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로빈슨 박사는 “독에 들어있는 펩타이드가 유사한 것은 아마도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연구진은 이 강력한 통증을 유발하는 펩타이드를 가지고 진통제를 개발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신경을 자극하거나 차단하는 과정이 진통효과의 기전과 직결되는 만큼, 이를 연구하면 효능이 뛰어난 진통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생각이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18-10-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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