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가 발생하는 것은 말라리아 원충 때문이다. 얼룩날개 모기류(Anopheles species)에 의해 전파되는 이 원충은 파충류·조류·포유류 등의 혈액 속에 기생하는 원생동물이다.
이들은 사람의 몸에 들어와 무성생식을 반복하고 그럴 때마다 적혈구를 파괴한다. 적혈구가 파괴되면 사람의 몸 안에서는 섭씨 40℃ 이상의 고열이 발생하게 된다.
또 발한, 빈혈, 두통, 혈소판 감소, 비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등의 심각한 증세가 나타나게 된다. 의료계에 따르면 말라리아로 인해 매년 약 2억 명의 환자가 발생하고, 그중 약 10%에 달하는 환자가 생명을 잃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동안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노력해오던 과학자들은 사람의 항체가 이 기생동물에 대항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정밀하게 관찰해왔다. 그리고 최근 사람의 항체가 힘을 합쳐 이 작은 기생동물의 취약한 부위를 공격하는 장면을 포착했다.

CPS 단백질 생성해 말라리아 원충 압박
24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는 사람의 항체들이 공동 작업을 통해 말라리아 원충의 세포 표면에서 강력한 억제력을 지닌 단백질을 생성시킨다는 내용의 논문이 게재됐다.
관련 영상에 따르면 생성된 단백질은 질기고 조밀하게 직조한 직물 코르크스크루(corkscrew) 같은 나선형 형태로 변화돼 이 기생동물의 활동을 강력히 억제하고 있었다. 말라리아 항원에 대항하고 있는 항체 움직임을 포착한 최초의 장면이다.
논문 작성에 참여한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The Scripps Research Institute) 캘리포니아 캠퍼스의 앤드류 워드(Andrew Ward) 교수는 “그동안 새로운 백신 개발을 위해 사람 항체가 항원에 어떻게 대항하는지 그 모습을 인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항체에 의해 생성된 아미노산 중합체 펩타이드(peptide)에 의해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지를 정밀 관찰해왔다”며 이번 연구 결과가 그동안 미지에 싸여있던 항체의 비밀을 밝혀내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논문 작성에 공동 참여한 스크립스 연구소의 조나단 토레스(Jonathan Torres) 박사는 포자소체단백질(CSP, Circumsporozoite protein)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이 CSP가 말라리아 원충 세포 표면에서 다수 발견됐지만 이 단백질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지금껏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백신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과학자들은 CSP가 항체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고 이 단백질의 정체를 규명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토레스 박사는 “이번 촬영 성공을 통해 항원과 항체 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밝혀졌다”며 큰 기쁨을 표명했다.
그는 “이번 촬영 결과를 통해 말라리아 원충에 강력하게 대항할 수 있는 백신 설계가 가능해졌다”라며 향후 후속 백신 개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새로운 말라리아 백신 개발의 돌파구 열어
이번 연구는 말라리아 예방백신 후보물질인 ‘RTS,S’를 개발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의료계는 말라리아 발병을 줄이기 위해 제약사인 스미스클라인(GSK) 등과 협력해 ‘RTS,S’ 후보물질을 테스트해왔다.
그러나 그 효과는 25~50%에 그쳤었다. 의료계는 이 정도의 효과로는 말라리아 환자의 사망률을 낮출 수 없다고 보고, 백신을 새로 설계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설계를 위해 항원과 항체에 대한 3차원의 초정밀 촬영을 시도했다.
이번 촬영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초저온 투과전자현미경(Cryo-Electron Microscopy)’이다.
이는 생체분자의 3차원 분자구조를 규명, 분자적 작동메커니즘에 기초해 생명현상을 이해하려는 구조생화학을 통해 탄생한 기기다. 그동안 단백질‧RNA‧DNA와 같은 생체분자, 세균‧바이러스와 같은 항원의 분자구조를 3차원으로 밝히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
이번 연구에는 ‘저온전자현미경(cryo-EM: cryo-electron microscopy)’도 사용됐다. 분자에서 원자 수준으로 해상도를 정밀화한 첨단 현미경이다. 지금은 3D 구조를 촬영할 만큼 촬영 기술이 발전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항체로부터 생성한 단백질 CSP가 놀라운 방식으로 원충을 조이는 것을 발견했다. 워드 교수는 “여러 사람이 팔을 결합해 특정 물체를 조이는 것처럼 CSP가 치밀하게 원충들을 조이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CSP의 이런 방어 구조는 과거에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광경이었다”며 “향후 이 속성을 통해 말라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에 있어서도 새로운 백신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것이 말라리아다. 매년 많은 생명이 이 질병으로 목숨을 잃고 있지만 강력한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비극을 막을 수 없었다.
최근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모기를 변형시켜 말라리아를 막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자연 생태계 파괴 우려로 환영을 못 받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첨단 영상장치를 통해 말라리아의 비밀이 밝혀지며 근원적인 치료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논문 공동작성자인 스크립스 연구소의 데이비드 오옌(David Oyen) 박사는 “이번 촬영으로 항체들이 거대한 그물을 설치하고 항원의 활동을 꽁꽁 묶어놓는 방법이 생생하게 밝혀졌다”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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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0-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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