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무서워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초보 의료진에게는 더욱 힘든 미션이다.
이들은 아이 보호자와 힘을 합쳐 달래거나 겁을 주는 등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겠지만, 임무 완수에는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혹시라도 아이가 큰 소리로 울거나 발버둥을 치게 되면, 진료를 시작하기도 전에 의료진들은 지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수고를 덜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한 의료기기 전문업체가 의대생들을 위한 실습용 소아 로봇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 로봇은 실제 어린아이처럼 울고,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심지어 피도 흘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링크)
소아 환자의 상태를 정교하게 복제한 로봇
로봇은 사람을 돕기 위해 탄생했다. 힘들고 위험한 일을 사람대신 수행해 인명을 보호하자는 취지로 개발된 발명품이다.
그런데 이렇게 능동적으로 사람을 돕는 로봇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로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로봇이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바로 환자를 대신하는 의료 로봇이다.
이 같은 로봇을 만든 곳은 의료기 전문 벤처기업인 고마드사이언티픽(Gaumard Scientific)이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개발된 그 어떤 의료 로봇보다 정교한 의료 로봇을 만들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할(HAL)이라는 이름의 이 소아 환자용 로봇은 장난끼 많은 5살 사내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얼핏 보면 마네킹처럼 보이지만, 그 기능은 마네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성능을 자랑한다.
우선 HAL은 얼굴 표정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또한 고개를 돌려 말한 사람을 바라보거나, 한정된 대사이지만 말도 할 수 있다.
환자를 대신하는 로봇인 만큼, 혈압이나 심전도 점검은 기본이다. 제세동기를 이용해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거나 기관 삽관을 통한 기도 확보, 또는 눈에 불빛을 비추면 동공이 줄어드는 현상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HAL을 접해본 의료진들이 가장 감탄해마지 않는 기능은 병원에서 어린이가 하는 일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주사를 놨을 때 아파하면서 울거나, 놀라서 까무러치는 것 같은 행동 등이 있다. 또한 순서를 기다리며 불안해하거나 겁을 내는 등의 모습 등 실제 아이들을 따라하는 행동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고마드사이언티픽의 관계자는 “실습 위주로 배우는 의대생들은 HAL을 이용하여 혈액 채취와 심장마비 시 제세동기 사용, 그리고 산소포화도 측정 같은 응급 상황 관련 실습 들을 다양하게 체험할 수 있다”라고 전하며 “실제로 소아과 현장에서 벌어지는 응급치료 상황을 유사하게 경험하도록 한다”라고 밝혔다.
제작사 측의 발표에 따르면 HAL의 가격은 무려 4만 8000달러(약 54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이 너무 높다는 지적에 대해 제작사는 상황별 설정 기능을 고려하면 결코 높은 가격이 아니라고 항변한다.
이 관계자는 “예를 들어 소아 환자가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 나타나는 무기력감이나 분노, 또는 불안감 같은 여러 감정들도 설정할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HAL이 실제 아이와 상당히 흡사하다는 의료진들의 평가를 고려하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과거 아이를 낳는 로봇도 출시해
HAL의 탄생으로 주목받는 고마드사이언티픽은 이미 과거에 아이를 낳는 로봇을 제작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산부인과 수련의들의 훈련용으로 개발된 ‘노엘(Noelle)’이라는 로봇이다.
노엘은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산모 로봇과 신생아 로봇은 탯줄로 연결되어 있어 출산 과정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두 로봇 모두 호흡을 하며, 맥박도 뛴다. 또한 출산 과정에서 출혈이 발생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방뇨도 할 수 있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아기 로봇의 피부색은 정상적 상태인 홍조를 띈 색상에서부터 호흡 곤란 상태인 푸른색에 이르기까지 여러 색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의대생들은 피부색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능력도 키울 수 있다.
노엘은 임산부와 태아를 정교하게 복제했기 때문에 의료진들은 이를 통해 출산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출생 시 자궁의 확장 정도나 태아의 맥박 변화, 또는 태반이 배출되는 현상 등 출산 과정에서 나타나는 임산부의 변화를 시간대별로 재현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특히 정상적인 분만이 이뤄지지 않는 응급상황을 설정하여 이에 대처하는 의사들의 능력을 테스트해 볼 수도 있다는 것이 제작사 측의 설명이다.
노엘의 가격은 현재 3만 5천 달러(약 3900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가격만큼 고성능을 자랑한다. 컴퓨터칩이 로봇 안에 탑재되어 있어 상황별로 새로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입력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고마드사이언티픽의 관계자는 “미국에서만 해마다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각종 의료사고로 숨지는 현실에서 출산 로봇의 등장은 산부인과의 의료사고를 막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대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8-10-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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