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화학 합성제가 아닌 인체 자체 안에 있는 화합물을 활용한 최신 항바이러스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최근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와 C형 간염, 광견병 및 에이즈 바이러스(HIV) 등에 항바이러스 효과를 보이는 비페린(viperin)의 작용 방식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비페린은 인간과 다른 포유동물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효소의 한 종류다.
이 효소는 ddhCTP라는 분자 생산을 촉진시켜 바이러스가 증식을 못 하도록 유전물질 복제를 막는다. 따라서 인체가 이 분자를 생성하도록 유도하는 약을 개발해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한 광범위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20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동영상

기존 화학 치료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동
논문 저자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과 크레이그 캐머런(Craig Cameron) 교수는 “우리는 다른 항바이러스제들과 달리 비페린이 몇몇 종류의 효소 활성화를 통해 광범위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갖는다는 것을 알았다”며, “시니어저자인 타일러 그로브(Tyler Grove)와 스티븐 알모(Steven Almo) 교수가 이끄는 앨버트 아인슈타인의대 공동연구진이 비페린이 ddhCTP 분자를 생성하는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우리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팀은 바이러스의 유전물질 복제 능력에 미치는 ddhCTP의 효과를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놀랍게도 이 분자는 HIV나 C형 간염바이러스 치료제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한다”며, “비페린이 바이러스 복제를 막는 방법을 깊이 이해하면 더욱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클레오티드 유사체가 RNA 복제 막아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숙주의 유전체 구성요소를 이용해 자신의 유전물질을 복제하고, 핵산의 구성성분인 뉴클레오티드라는 분자를 RNA의 새로운 가닥에 통합시킨다. ddhCTP 분자는 이 뉴클레오티드 구성 요소들을 모방해 바이러스의 유전체에 통합된다.
일단 바이러스 RNA의 새로운 가닥에 통합되면 이 ‘뉴클레오티드 유사체(nucleotide analogs)’는 RNA 폴리머라아제라는 효소가 더 많은 뉴클레오티드를 RNA 가닥에 추가하는 것을 막아 새로운 유전물질 사본을 만들지 못하도록 한다.
캐머런 교수는 “오래 전의 패러다임은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감염된 세포를 죽여야만 한다는 것이었으나, 바이러스가 보충 한계가 있는 필수 세포 유형을 감염시키면 소용이 없었다”며, “감염된 세포를 죽이지 않고 기능하는 뉴클레오티드 유사체 개발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기존 항바이러스제와 달리 독성 등 부작용 없어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대부분의 뉴클레오티드 유사체는 인공 합성 약물인데 약물 사용시 종종 합병증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뉴클레오티드는 세포의 많은 단백질과 효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 유사체가 정상적인 세포 기능을 방해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논문의 공동저자인 제이미 아놀드(Jamie Arnold) 펜주립대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교수는 “치료에 유용한 항바이러스 뉴클레오티드 개발에서 주된 장애는 예기치 않은 표적에 작용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몇 년 전 C형 간염 치료제로 개발 중인 뉴클레오티드 유사체가 세포의 에너지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의 RNA 생산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의도되지 않은 간섭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그러나 ddhCTP 분자는 이런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인체 안에 있는 화합물의 자연적 기원이 비독성을 필요로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캐머런 교수는 “ddhCTP는 현재 쓰이는 많은 약들과 달리 사람과 다른 포유동물의 세포에 의해 부호화된다”며, “우리는 여러 해 동안 뉴클레오티드 유사체를 합성해 왔으나 자연이 우리를 자극해 살아있는 세포에 있는 바이러스를 처리하고 현재까지 어떤 독성도 나타내지 않는 뉴클레오티드 유사체를 창출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기에 뭔가 효과가 있다면 자연이 그것을 먼저 생각했을 것이고, 우리는 바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지카바이러스종에 대해 효과 보여
연구팀은 ddhCTP 분자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이 분자가 뎅기열 바이러스와 웨스트나일 및 지카바이러스 등 플라비바이러스 그룹에 속하는 바이러스들의 RNA 폴리머라아제를 저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이 분자가 살아있는 세포에서 지카바이러스의 복제를 중지시켰는지를 조사했다.
논문 저자인 조이스 조스(Joyce Jose) 펜주립대 생화학 및 분자생물학 조교수는 “ddhCTP 분자가 지카바이러스의 세 가지 변종 모두의 복제를 직접 저해했다”고 밝혔다. 조스 교수는 “2016년에 지카바이러스병을 일으킨 두 종류의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1947년에 분리된 원래의 지카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똑같이 효과를 나타냈다”며, “이는 현재 알려진 지카바이러스 치료법이 없기 때문에 특히 흥미로운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가 ddhCTP와 같이 미래의 치료제로 활용될 수 있는 천연 화합물에 대한 새로운 연구방안을 부각시켰다고 덧붙였다.
“내성 막는 법도 연구할 계획”
이번 연구 결과는 또한 다양한 플라비바이러스에 대한 ddhCTP의 유망한 항바이러스 효과를 입증해 준다. 그러나 리보 핵산을 함유한 피코르나바이러스 그룹인 인체 리노바이러스나 폴리오바이러스의 RNA 폴리머라아제는 ddhCTP 분자에 반응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피코르나바이러스와는 달리 플라비바이러스가 왜 ddhCTP에 민감한지를 이해하기 위해 이들 바이러스의 폴리머라아제 구조를 조사해 볼 계획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 플라비바이러스가 ddhCTP 분자에 어떻게 내성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탐구할 예정이다.
캐머런 교수는 “항바이러스제에 대해 내성이 생기는 게 항상 문제”라며, “이 분자가 광범위 항바이러스제로 활용된다면 이에 대한 내성이 어떻게 생기고 이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아이디어 확보는 핵심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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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6-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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