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비롯한 포유류에서 모든 피를 만드는 줄기세포는 뼈에 존재한다. 그러나 물고기의 조혈 줄기세포(조혈모세포)는 신장에 있다. 신체의 특정 위치 즉 ‘조혈 줄기세포 자리(blood stem cell niche)’에서 피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1970년대 이래, 생물학자들은 생물들이 왜 서로 다른 부위에서 이 기능을 수행하도록 진화돼 왔는지 궁금하게 여겨왔다.
그 40년 뒤, 중요한 단서가 발견됐다. 조혈 줄기세포가 위치한 장소는 햇빛의 유해한 자외선(UV)으로부터 이 줄기세포를 보호하도록 진화돼 왔다는 사실이다.
미국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연구원 겸 하버드대 줄기세포 및 재생 생물학부 연구진과 보스턴 어린이병원 줄기세포 프로그램, 하버드 줄기세포 연구소가 함께 추진한 이 연구 결과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3일자에 발표됐다(관련 동영상). 이번에 발견된 ‘조혈 줄기세포 자리’ 퍼즐 조각은 조혈모세포 이식의 안전성을 증진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신장 위의 파라솔
연구팀은 실험에 널리 쓰이는 동물모델인 제브라피쉬를 관찰하다 영감을 얻게 됐다.
미국 하버드대 박사후 과정을 거쳐 현재 독일 프라이부르크 메디컬센터 소아과에 재직하고 있는 프리드리히 카프(Friedrich Kapp) 박사는 “현미경으로 제브라피쉬의 조혈 줄기세포를 관찰하려고 했으나 신장 위에 있는 멜라닌세포 층이 시야를 가로막았다”고 말했다. 멜라닌세포는 인체 피부 색깔을 나타내는 멜라닌 색소를 생성하는 세포다.
카프 박사는 “신장 위에 있는 멜라닌세포의 모양이 마치 파라솔을 연상시켜 이 세포들이 조혈줄기세포를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카프 박사는 정상적인 제브라피쉬와 멜라닌세포가 결여된 변이 제브라피쉬를 각각 자외선에 노출시켰다. 그랬더니 변이 제브라피쉬의 조혈 줄기세포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와 함께 정상적인 제브라피쉬를 거꾸로 뒤집어 자외선을 쬐자 마찬가지로 줄기세포가 손실됐다.
이 실험들은 멜라닌세포 우산이 물리적으로 위에서 내리쬐는 자외선으로부터 신장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물에서 육지로
연구팀은 멜라닌세포가 자외선으로부터 조혈 줄기세포를 보호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생명체의 진화 계통에서 유사한 사실이 있는지를 찾아봤다. 탐색 결과 멜라닌세포는 5억년 전 척추동물 방계에서 갈라진 물고기종에서도 오랫동안 이 줄기세포를 보호해 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 육지동물쪽으로 눈을 돌려 좀더 최근의 진화 현상을 살펴보기 위해 한 종류의 독화살 개구리에 주목했다. 이 개구리의 올챙이들에서 다리가 자라나오자 조혈 줄기세포는 멜라닌세포로 덮인 신장에서 골수로 이동했다. 연구팀은 이 모든 발달 과정에서 개구리의 조혈 줄기세포 환경이 자외선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혈 줄기세포 자리’ 이해하기
논문의 시니어저자인 레너드 존(Leonard Zon)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연구원이자 하버드대 줄기세포 및 재생 생물학 교수 겸 보스턴 어린이병원 소아과 교수는 “우리는 햇빛이 조혈 줄기세포 자리의 진화적 동인이라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존 교수는 조혈 줄기세포 연구를 계속해 멜라닌세포와 이 줄기세포 간의 상호작용을 통제하는 생물학적 신호경로를 밝혀볼 계획이다.
조혈 줄기세포 자리(환경)에 대한 진전된 이해는 조혈 줄기세포 이식에 중요하다. 그리고 조혈 줄기세포 이식에서 핵심적인 것은 이식된 세포들이 새로운 인체에서 잘 생착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을 찾는 일이다.
존 교수는 “혈액학자이자 종양 전문의로서 혈액질환과 암을 치료하고 있다”며, “조혈 줄기세포 환경을 잘 이해한다면 조혈모세포 이식을 훨씬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혈모세포 이식 난제 해결 기대”
조혈 줄기세포는 우리 몸의 척추, 늑골, 골반뼈, 대퇴골 등 큰 뼈의 골수에 1% 정도 비율로 존재하며, 말초혈액에서도 일부 발견된다. 이 줄기세포는 적혈구, 혈소판, T및 B 림프구 등 10가지의 혈액 구성체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이런 기능 때문에 악성혈액질환이나 중증재생불량성빈혈 같은 난치성 질환 치료를 위한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에 활용돼 왔다.
최근에는 유전성 대사질환이나 선천성 면역결핍증 같은 여러 질환에도 자가 혹은 동종 조혈모세포이식 치료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석구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과거에는 뼛속 골수를 직접 채취해 조혈모세포이식을 실시했으나 최근에는 조혈모세포 촉진인자 혹은 접합차단제(Plerixafor, a CXCR4 antagonist)를 이용해 말초혈액으로부터 조혈모세포원을 확보해 이식에 활용하고 있다”며, “이같은 발전으로 골수 조혈모세포의 채취에 따르는 전신마취 위험성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치료의 문제점은 말초혈관으로 주입된 조혈모세포의 생착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 환자가 장기간 백혈구와 혈소판 감소 상태에 노출되고, 오랫동안 무균실에 입원해야만 한다는 점.
조석구 교수는 “이번 하버드대의 연구는 뼛속 조혈 환경(bone marrow niche)의 중요성을 새삼 되새기게 하는 연구 성과로서, 앞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면 현재의 조혈모세포이식에 수반되는 많은 합병증과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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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6-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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