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라는 표현은 딱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바로 개미와 곰팡이의 관계다. 개미와 곰팡이를 먹고 먹히는 관계로 비유한 이유는 최근 들어 연이어 보도되고 있는 이들과 관련한 뉴스 때문이다.
얼마 전 외신을 통해 전해진 생물과 관련된 뉴스 중에 가장 흥미로운 소식은 ‘좀비개미(zombie ants)’였다. 곰팡이가 개미를 감염시켜 숙주로 만든 다음,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숙주의 행동을 일일이 조종하다가 나중에는 먹이로 삼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다. 마치 사람이 가축을 키우듯 개미가 곰팡이를 키워서 이를 먹이로 삼는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관련 기사 링크)
곰팡이를 가축처럼 사육하는 가위개미
곰팡이를 가축처럼 사육하는 개미는 북미와 남미 대륙에 서식하는 가위개미(leafcutter ants)다. 나뭇잎을 가위처럼 예리하게 절단한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나뭇잎을 자르는 이유는 먹이로 저장하기 위해서인데,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뭇잎을 먹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뭇잎에 붙어있는 곰팡이를 먹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가위개미를 연구하고 있는 미 라이스대의 ‘스캇 솔로몬(Scott Solomon)’ 박사는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곰팡이를 사육하여 먹는 개미가 가위개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소개하며 “다만 가위개미의 특징은 살아있는 신선한 잎에 곰팡이를 키우는 재주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곰팡이를 사육한다는 것은 쉽게 식량을 조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가위개미는 수많은 개미 종류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복잡한 군집을 형성할 수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개미가 사육하는 곰팡이에 대해서는 더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처음 가위개미를 발견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나뭇잎에 붙어있는 곰팡이도 가위개미만큼이나 특별한 곰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진이 가위개미 및 곰팡이의 유전 정보를 해독해 본 결과, 예상과는 많이 다른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수백 개의 군집에서 확보한 곰팡이의 유전자 중에는 가위개미에 특화된 곰팡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곰팡이를 키우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솔로몬 박사는 “곰팡이와 가위개미는 서로 공진화(coevolution)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라고 언급하며 “다만 곰팡이를 키울 수 있는 개미는 많지만, 어째서 가위개미만 신선한 잎을 사용해 곰팡이를 키우며 번성을 누리는지에 대해서는 더 연구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공진화한 개미와 곰팡이의 관계
공진화란 두 가지 종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진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하나의 종이 진화하게 되면 그 종과 상호작용하는 다른 종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 다른 종까지 진화하게 된다는 것.
공진화가 조화를 이루게 되면 두 가지 종은 공생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 생물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예를 들면 오랜 기간 숙주 내에서 적응을 거친 세균이나 바이러스일수록 숙주에게 미치는 영향이 치명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 생물도 갈 곳이 사라지기 때문에, 기생 생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숙주를 죽이는 것보다 숙주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서 널리 증식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진화한 것이다.
이를 입증하는 사례로 과학자들은 감기 바이러스를 예로 든다. 대부분의 사람이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때 완전히 앓아눕지 않으면서 적당히 돌아다닐 수 있는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오랜 감기 바이러스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호주의 토끼들에게 유행한 점액종 바이러스의 독성 감소 현상도 공진화의 좋은 사례다. 이 바이러스가 발견된 초기에는 토끼가 감염되면 떼죽음을 당했지만, 몇 년 후에는 점액종 바이러스의 독성이 약화되면서 토끼가 적당히 앓다가 회복되며 일종의 백신 역할을 제공해 주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곰팡이와 공진화 관계에 있는 곤충으로는 개미 외에 소나무좀벌레(southern pine beetle)가 유명하다. 이 좀벌레는 소나무 껍질에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수백 개의 알을 낳는데, 이때 곰팡이 포자가 좀벌레에 묻어 함께 소나무로 들어간다.
이후에는 곰팡이가 좀벌레 덕분에 소나무 안에 안락한 집을 얻게 되고, 알에서 깬 애벌레는 이 곰팡이를 먹으면 자라게 된다. 이에 대해 생물학계는 자연계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공진화 관계가 이루어졌다고 표현하고 있다.
물론 공진화가 순조롭게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좀벌레를 둥지에서 쫓아내려는 또 다른 곤충인 진드기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진드기는 좀벌레가 마련해 놓은 둥지에 침입할 때 다른 종류의 곰팡이를 묻혀 가지고 들어오는데, 좀벌레를 통해 들어온 곰팡이보다 생장속도가 빨라서 그대로 놔두면 둥지는 진드기가 가져온 곰팡이로 가득 차게 된다.
다행히도 좀벌레에게는 진드기가 데려온 곰팡이를 죽이는 박테리아가 둥지 안에 존재해서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미 위스콘신대 연구진의 조사 결과다. 악티노마이세테스(Actinomycetes)라는 박테리아가 진드기에 묻어온 곰팡이를 죽이는 독소를 분비해서 좀벌레 애벌레의 먹이인 곰팡이를 보호한다는 것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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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6-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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