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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18-05-09

흰개미에서 발견한 장수의 비밀 ‘점핑 유전자’ 무력화시키면 장수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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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동물계의 법칙은 자손이 많으면 수명이 짧고, 생식력이 부족하면 좀더 오래 사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사회적 곤충, 즉 모듬살이를 하는 곤충들은 이런 법칙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동물학 연구소팀은 한 흰개미종(Macrotermes bellicosus)을 모델로 삼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밝혀냈다.

이 대학 동물학자 유디트 코프(Judith Korb) 교수는 “이 종의 여왕개미는 지구상의 동물 가운데 번식 면에서 가장 성공한 종”이라고 말했다. 이 여왕개미는 매일 약 2만개의 알을 낳는데도 수명이 20년에 달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 종의 일개미들은 여왕개미와 같은 유전체를 가지고 있으나, 불임상태로서 단지 몇 달밖에 살지 못한다.

코프 교수는 박사과정생인 다니엘 엘스너 및 카렌 모이스만(Karen Meusemann) 박사와 함께 왜 여왕개미와 왕개미는 일개미와 달리 실제로 노화가 안 되는지에 대한 단서를 발견해 과학저널 ‘국립과학원 회보’(PNAS) 7일자에 발표했다.

여왕개미의 모습. 흰개미종(Macrotermes bellicosus)의 이 여왕개미는 하루에 2만개의 알을 낳지만 20년까지 살 수 있다. 그에 비해 일개미들은 수명이 몇 달밖에 안된다.  Photo: Judith Korb
여왕개미의 모습. 흰개미종(Macrotermes bellicosus)의 이 여왕개미는 하루에 2만개의 알을 낳지만 20년까지 살 수 있다. 그에 비해 일개미들은 수명이 몇 달밖에 안된다. Photo: Judith Korb

공생하는 초개체

코프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이 흰개미종을 연구해 왔다. 이 흰개미는 아프리카 서부 사바나 지역에 살며, 수미터 높이의 흙둔덕을 쌓는다.

개미들은 노동을 분담하는 조직화된 사회를 구성하고, 이들의 사회는 초유기체(superorganism)라는 개념을 이끌어냈다. 초유기체나 혹은 초개체라는 개념은 개미나 꿀벌처럼 군집을 이루어 큰 사회를 형성하는 무리에서 군집 전체를 하나의 동물 개체로 취급하려는 시각에서 나온 말이다.

여왕개미와 왕개미는 번식을 책임지고 병정개미는 영역을 지키며, 일개미들은 흙둔덕을 쌓고 풀과 나뭇잎들을 모은다. 나뭇잎과 풀은 특별히 개발한 ‘정원’에서 배양하는 곰팡이를 기르는데 사용되는데, 곰팡이는 복잡한 식물화합물을 분해해 질소를 모은다.

질소는 흰개미들의 중요한 영양소로서 양이 충분치 못 하면 군체 성장이 제한을 받게 된다. 곰팡이들은 온도에 극도로 민감해 흙둔덕 내부의 온도를 항상 섭씨 30도로 유지해야 한다.

아프리카 서부 사바나에 살고 있는 연구 대상 흰개미종이 쌓은 수미터 높이의 흙둔덕. Photo: Judith Korb
아프리카 서부 사바나에 살고 있는 연구 대상 흰개미종이 쌓은 수미터 높이의 흙둔덕. Photo: Judith Korb

일개미 유전자 발현, 나이에 따라 크게 달라

연구팀은 장수의 비밀을 추적하기 위해 먼저 여왕개미와 왕개미, 일개미 가운데 각각의 젊은 개미와 나이든 개미의 세포에서 사용되는 활성화된 유전 정보를 비교해 봤다.

코프 교수는 “비교 결과에 매우 놀랐다”며, “여왕개미와 왕개미에서 젊은 것과 나이든 것 사이의 차이점은 거의 발견하지 못 했으나 일개미들은 젊은 개미와 나이든 개미의 차이가 엄청나게 컸다”고 말했다.

다니엘 엘스너는 “나이가 5년이나 차이가 나는 여왕개미와 왕개미들에서 서로 다르게 조절되는 일부 유전자들은 노화와 관련이 없었다”며, “그와 대조적으로 단지 몇 달 앞서 태어난 일개미들은 그보다 젊은 일개미들에 비해 수천 개의 유전자가 상이하게 발현됐다”고 밝혔다.

여왕개미나 왕개미들과 달리 늙은 일개미들에 있는 많은 활성 유전자는 이른바 옮겨질 수 있는 전이 요소(transposable elements)들로 ‘점핑 유전자’로 알려져 있다. 즉, 이 유전자들은 나머지 유전체와 상관없이 복제되고, 게놈에서 다른 위치로 스스로 옮겨가고, 그에 따라 예를 들면 다른 유전자를 비활성화시키는 등 결함을 일으킬 수 있다.

코프 교수는 “점핑 유전자가 노화와 관련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다른 생물 모델을 통해 알고 있었다”며, “그러나 이런 유전자들이 여왕개미나 왕개미에서는 왜 비활성화되는지가 의문”이라고 말했다.

흰개미종이 곰팡이를 기르는 흙둔덕 안의 ‘정원’.  Photo: Judith Korb
흰개미종이 곰팡이를 기르는 흙둔덕 안의 ‘정원’. Photo: Judith Korb

점핑 유전자’ 무력화시키기

이번 연구팀의 연구 결과는 초개체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다세포 생물에서 생식세포계는 번식에 책임이 있다. 점핑 유전자는 여기에 많은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자손이 못 태어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식세포계에는 점핑 유전자를 무력화시키는 신호전달 경로가 존재한다.

코프 교수는 “우리는 ‘piRNA 신호 경로’가 늙은 일개미들에게서는 하향 조절되었으나 여왕개미와 왕개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유추는 사실로 보인다. 즉, 초개체에서는 여왕개미와 왕개미가 가능한 한 유전적 결함이 적은 생식세포계 역할을 한다.

반면 일개미들은 교체가 가능하고 따라서 ‘나이가 드는’ 다른 신체 세포 역할을 하는 것. 결국 유기체의 모든 세포나 개미 같은 군체의 각 개체에서 piRNA 신호 경로를 영구히 활성화시키는 것은 너무나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것이다.

연구팀은 다음 단계로 확인된 사실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코프 교수는 “실험실에서 여왕개미의 piRNA 신호 경로를 하향 조절할 생각인데, 그렇게 하면 여왕개미들도 노화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또한 그들의 핵심 가정 중 하나를 시험하기 위해 덜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흰개미종을 연구해 볼 생각이다. 연구팀은 “어떤 종이 더 많이 사회화되어 있을수록 그와 관련해 노동 분업도 더 강하며, 생식과 수명의 부정적인 연관성을 회피하는 데도 더 성공적”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18-05-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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