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지금 과학저널, 트위트 등에서는 ‘쾌락(pleasure)’이란 주제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심리학자, 뇌과학자, 신경과 전문의, 그리고 언론인들은 마치 편싸움을 하듯이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논쟁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말 영국 왕립학술원 회보 견해 부분(opinion piece)에 한 논문을 실으면서부터다. ‘Pleasure Junkies All Around!’란 제목의 이 논문은 런던대학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뇌과학자 쥴리아 크리스텐슨(Julia F. Christensen) 교수가 작성했다.
교수는 논문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포르노그래피, 설탕, 마약 등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쾌락에 중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술적 용어로 자신의 자유의지(free will)를 쾌락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영향권에 넘겨주고 있다는 것.

예술적 쾌락 메커니즘, 마약·섹스와 달라
크리스텐슨 교수는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경우 의사 결정이 왜곡돼 일어나는 심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뇌 안에서 동기, 학습, 감정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편도체에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편도체 안에서 의사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복내측 전전두엽(vmPFC)에 장애가 발생해 일시적인 쾌락에는 몰두하지만 장기적인 번영(long-term prosperity), 그리고 웰빙을 성취하는 데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쟁을 촉발한 것은 그 다음 부분이다. 교수는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예술(art)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동안 예술 활동인 안무(choreography)를 통해 뇌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연구를 해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소셜미디어, 포르노그래피, 설탕 등에 의해 발생하고 있는 (일시적인 쾌락을 위한) 중독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뇌 기능을 강화해 마음에 안정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이 발표되면서 그동안 예술가들은 물론 쾌락(pleasure)을 연구해온 과학자들을 자극했다. 그녀의 논문이 게재된 왕립학회보에 반박 논문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들 논문들은 예술이 뇌와 연계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덴마크 자기공명연구소(Danish Research Centre for Magnetic Resonance)의 마르틴 스코프(Martin Skov) 박사 등 다른 과학자들은 “(크리스텐슨 교수 주장과 달리) 예술적인 쾌락이 음식이나 마약, 섹스 등으로 인한 쾌락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박 논문이 이어지면서 또 다른 진영을 자극했다. 특히 아름다움(美)을 보편적인 과학원리로서 설명해보려는 신경미학(Neuroaesthetics) 분야에서는 크리스텐슨 교수를 적극 지지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반박 논문 잇따라 게재… 논쟁 가열
지금까지 올라온 논문들의 주장은 크게 셋으로 갈린다. 하나는 예술로부터 오는 쾌락(pleasure)이 과자나 섹스 등으로부터 오는 쾌락과 신경생물학적으로(neurobiologically) 일치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논문들은 이 두 종류의 쾌락이 신경생물학적으로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유형의 논문들은 두 유형의 쾌락이 어떤 메커니즘에서 오는지 밝혀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이 세 진영 간에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 쾌락이 어디서 오든지 간에 어떤 쾌락이든 가격, 생산자, 연주자 등과 같은 동기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용어로 ‘맥락적 단서(contextual cues)’라고 하는데 사람이 대화를 하면서 표정, 몸짓을 본다거나 상대방의 패션, 어조를 보는 것과 같은 ‘문제해결 과정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다양한 유형의 추론’을 말한다.
또 다른 공감대는 예술 그 자체다.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예술(art)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논쟁이 발생하고 있다. 예술품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과정에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스페인령 발레아레스 아일랜드 대학의 심리학자 마르코스 나달(Marcos Nadal) 교수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인간은 쾌락과 불쾌함을 구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감각적 경험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년 간 쾌락을 주제로 한 뇌과학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맛있는 햄버거를 먹고 있든지, 아니면 고상한 조각품을 감상하고 있든지 뇌 안에서는 같은 지각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예일 대학의 심리학자이면서 ‘How Pleasure Works’의 저자인 폴 브룸(Paul Bloom) 교수는 “예술작품의 경우 온 몸에 영향을 미칠 만큼 인간 신경계에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크리스텐슨 교수 논문에 대항해 반박 논문이 실리고 있는데 대해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일축했다. 과학자들 간에 이처럼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트위터 등 SNS 상에서는 양쪽을 다르게 지지하는 글들이 잇따라 실리고 있다.
과학자들의 논쟁이 일반 대중에게 확산되는 양상이다. 논쟁을 불러일으킨 크리스텐슨 교수는 그러나 단호한 입장이다. “예술을 통해 얻는 쾌락이 기본적인 쾌락을 인지하는 과정과 달리 무엇인가 다른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하이레벨의 쾌락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며 최근 발전하고 있는 뇌과학 등 첨단 과학에 큰 기대감을 표명했다.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것으로 판단해온 예술적 감각 메커니즘이 밝혀질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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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4-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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