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ODA의 추세가 변하고 있다. 일방적인 경제적 지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도움을 어떤 방식으로 주고받을 것인지 고민함으로써 개도국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과학기술 ODA 워크숍의 분위기는 뜨겁지만 진지했다. 지금까지 ODA가 공급자 중심의 원조였다면 이제는 사람이 중심이 되고, 현장이 중심이 되는 ODA로의 혁신이 일어나야 한다는데 모두가 동의했다.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는 공적개발원조로 선진국이 상대적으로 가난한 개발도상국이나 국제기관에 하는 원조를 뜻한다.
지난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제2회 국회 과총 과학기술 ODA 워크숍(제4차 적정기술 세미나)이 개최됐다. 한국과총 과학기술 ODA 센터와 적정기술학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포용적 성장과 혁신을 위한 과학기술 ODA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날 워크숍은 ‘포용적 성장과 혁신을 위한 과학기술’을 주제로 장수영 적정기술학회 회장과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주제 발표와 윤제용 과총 과학기술 ODA 센터 공동위원장을 좌장으로 하는 패널 토론으로 구성됐다.
미래 ODA의 발전 방향은 플랫폼 형성에 있어
장수영 적정기술학회 회장은 ‘한국형 포용적 과학기술 ODA 발전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장 회장은 “우리나라 총예산 중 2조 7천억 원이 ODA 예산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앞으로 더 증대할 것”이라며 ODA에 대한 논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수영 회장은 “UN으로부터 하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던 밀레니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 MDGs)와 달리 현재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는 굉장히 능동적으로 이루어진다. 개발도상국은 그들이 필요한 것을 명확히 제시하기도 하며 교류도 활발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보면 과학기술이 그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과학기술과 관련되지 않은 지표가 없을 정도다”라며 과힉기술과 ODA의 연관성에 대해 강조했다.
장 회장은 과학기술 ODA 모형의 예시로 아프리카에 휴대전화가 보급된 것을 들었다. 휴대전화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단순히 편리한 의사소통 수단 이상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케냐의 엠페사(M-PESA)는 문자로 돈을 주고받는 시스템으로 금융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케냐에서 화폐가 쉽게 거래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것이다.
또한, 휴대전화는 개발도상국의 농부들이 중간 이윤을 떼이지 않고 상인들과 직거래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장 회장은 “이러한 아이디어는 4차 산업혁명의 키워드인 협력과 참여를 통한 초연결성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래의 ODA 발전 방향은 일방적인 파이프라인(pipeline) 형태가 아닌 플랫폼의 형성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기술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오픈 소스(open source) 형태로 개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혁신의 시작은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
성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의 시도와 과제’로 주제 발표를 이어갔다.
성 연구위원은 먼저 왜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는 “과학기술이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지만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 그리고 낮은 행복지수와 출산율 등을 고려하면 삶의 질은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우리나라가 저성장 시대로 본격적으로 돌입한 점과 세계를 선도하는 산업의 등장에도 개개인의 삶의 질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언급하며 과학기술혁신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하여 성 연구위원은 “기존의 공급자 주도형(과학자 중심) 혁신에서 사용자 주도형 혁신으로의 전환이 핵심이다”라고 주장하며 과학기술계와 사회주체 간의 만남을 강조했다. 산업발전과 같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용자의 삶을 고려한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강조하는 지속가능 혁신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성지은 연구위원은 “과학기술정통부의 R&D 정책과 서울시 R&D 정책이 차이가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며 “지역 차원의 문제해결을 위한 R&D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가 R&D의 문턱을 낮추고 지역 문제해결을 위한 관련 주체 간 협력을 도모하기 위한 모델로 리빙랩을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리빙랩(Living Lab)은 살아있는 연구실이라는 뜻으로 시민이 연구에 직접 참여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고 결과물을 만드는 개방형 실험실을 의미한다.
그는 야간 작업자의 사고 예방을 위한 웨어러블 장비 제작을 예로 들었다. 도로 청소 등 야간작업자들이 몸을 움직이는 동안 발생하는 기계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시켜 이를 발광키트로 활용하는 것이다. 의복에 발광키트를 넣어 웨어러블 장비를 제작하면 야간 교통사고 발생률의 감소를 기대할 수 있다.
성 연구위원은 “제작 단계에서 발광키트는 에너지 활용이 가장 용이한 어깨 부분에 들어갔다. 하지만 리빙랩을 통해 실수요자에게 제품을 보급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이 어깨 부분의 발광키트를 굉장히 불편해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허리 부분에 탑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그는 “결국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 할지라도 현장에 쓰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며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의 조건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토론자들은 단발적 성격의 ODA 사업에서 벗어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과학기술 ODA의 필요성과 각 부처 간 연계의 중요성에 대해 공통적으로 논했다. 오현주 외교부 개발협력국 국장은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이 결국 ODA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고 말하며 “성공적인 ODA를 위해서는 현장에 직접 가서 현장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라며 답은 현장 속 ‘사람’에 있음을 강조했다.
윤태식 기획재정부 개발금융국 국장은 기술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발도상국이 자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기업 간의 기술교류가 활발해야 한다”라고 설명하며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 전달하는 식의 ODA보다는 나라 간 기업 간 기술이 꾸준히 교류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의 ODA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최혜원 자유기고가
- 저작권자 2018-04-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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