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내의 피의 흐름인 혈류(blood colour)에는 다양한 색깔이 있다. 이 색깔이 사람의 얼굴에 나타나게 되는데 이 색깔을 보고 그 사람이 행복한지, 아니면 슬픔에 빠져 있는지 그 감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19일 ‘가디언’ 지에 따르면 미 오하이오 주립대 인지·뇌과학센터 연구진은 그 동안 얼굴을 통해 나타나는 혈류의 색깔 변화를 분석해왔다. 그리고 코와 눈썹 부위, 그리고 볼과 턱 주변의 색깔 변화를 통해 사람의 감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정확도는 75%. 그 동안 안면인식 연구는 얼굴 형태에 집중돼왔다. 코와 입, 눈썹, 턱 등 골격을 대상으로 수십여 곳의 부위가 어떤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지 분석하는 식이다. 그러나 얼굴 색깔 변화를 통해 감정 상태를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컴퓨터로 행복·슬픔·분노의 색깔 분석
이번 연구는 감정을 억제하고 있는 20명의 실험 참가자의 얼굴에 어떤 식으로 색깔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컴퓨터 장비를 통해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분석 결과 얼굴 근육의 어떤 움직임이 없어도 색상만으로 그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오하이오 주립대 인지과학자인 알렉스 마르티네즈(Alex Martinez) 교수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비추어 안면에 나타나는 부위별 색깔 변화가 중추신경계에 의한 혈류(blood flow), 혹은 혈액 구성(blood composition)의 미묘한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감(disgust)을 느꼈을 경우 입술 부위가 청황색(blue-yellow)으로, 코와 이마 부위에는 적녹색(red-green)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식으로 행복했을 때와 슬퍼하고 있을 때, 화를 내고 있을 때 등에서 다양한 색상 변화가 일어났다.
마르티네즈 교수는 “연구 결과 행복감을 억제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 70%까지 그 색상 변화를 식별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슬픔을 억제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75%까지, 분노를 억제하고 있는 사람의 얼굴에서는 65%까지 색상 분석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에는 다양한 감정 상태가 혼합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픈 감정 속에서 화를 내고 있는 식의 감정 표현을 말한다. 교수는 “이런 경우 다른 색깔이 나타났다.”며, “현재 그 색상을 정밀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동안 과학자들은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행복, 놀람, 슬픔, 혐오, 공포, 혼란스러움 등의 감정 상태를 분석해왔다. 마르티네즈 교수는 그러나 이번 연구 결과 근육에 의해 감정이 표현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말했다.
“감정 변화가 안면 색상 변화로 빠르게 전환됐으며, 또한 매우 다양한 식으로 색상이 변화하고 있었다.”며 “향후 연구 결과에 따라 더 예민한 감정 변화를 파악해 안면인식 기술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감성 로봇, 스마트 화장품 등에 적용
오하이오주립대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얼굴 색상을 통해 감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컴퓨터 알고리듬을 개발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느끼는 것 이상의 색상 변화가 안면 위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논문은 19일자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됐다. 논문 제목은 ‘Facial color is an efficient mechanism to visually transmit emotion’이다.
연구진은 논문을 통해 “그동안 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컬러를 통해 얼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경우 모호한 경계의 색채 덩어리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미술 관계자들은 그의 작품이 극도로 절제된 이미지 속에서 숭고한 정신과 내적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고 평가하고 있다. 논문은 이 화가 역시 예민한 감수성으로 안면 위에 나타나는 색상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추신경은 감각기관에서 전해진 각종 신경정보들을 모아 통합, 조정하는 중앙처리장치에 해당한다. 마르티네즈 교수는 “이전의 연구는 중추신경계 움직임을 통해 감정이 변화하고, 또한 얼굴 근육이 변화할 수 있다는 추정 하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하이오대 연구팀은 이 가설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중추신경계와 안면 변화와의 상관관계를 관찰했고, 각각의 감정 변화가 안면 혈류(blood flow)에 영향을 미쳐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안면인식 기술은 모바일 결제, 범죄용의자 및 미아 찾기,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활용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다. 실제로 구글은 안면인식 기술에 의한 자동 앨범 정리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안면인식 기술 가운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감정인식 기술이다. MIT 미디어랩에서 창업된 어펙티바(Affectiva)는 얼굴 표정을 인식해 감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솔루션인 ‘어프덱스(Affdex)’를 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감정인식 기술은 얼굴 근육을 분석하는데 집중돼왔다. 혈류를 통한 얼굴 색상 변화를 분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마르티네즈 교수는 “이번 연구가 안면인식의 정확도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 분야에서 응용도 기대되고 있다. 마르티네즈 교수는 “인공지능을 적용한 감성 로봇, 감정 상태를 커버할 수 있는 스마트 화장품(smart cosmetics) 개발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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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3-2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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