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의 연속 배양공정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전문가인 장호남 박사(73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요즘에도 새벽 5시30분에 집을 나서는 날이 많다. 수도권의 한 벤처기업에 마련한 실험실에 가기 위해서이다.
2010년 카이스트 교수에서 은퇴한 원로과학자가 실험실을 새벽부터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1985년 쯤 처음 구상한 ‘미생물의 고농도 연속 배양공정’의 대미를 장식할 시기가 가까웠다”고 장 박사는 말했다.
일생의 연구주제인 이 공정은 ‘미생물을 화학공장처럼 아주 빨리 배양하는’ 기술이다. 화학공학에 대한 깊은 지식과, 생물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융합연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카이스트에서 박사를 기르려면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학생들이 박사학위를 받으려면 외국 유명 저널에 논문이 실려야 하는 전통이 있다. 장 박사에게 학생들은 몰려오는데, 기존 분야만 가지고는 마땅한 연구 주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장 박사는 화학공학을 기본 바탕으로 삼아서 생물학을 접목하는 융합연구로 분야를 넓히면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다. 그리고 장 박사 본인은 미생물을 고농도로 연속 배양하는 공정기술에 오래 동안 몰두했다.
기존의 미생물 배양기술은 생산성이 낮아보였다. 장 박사는 화학공학을 바탕으로 미생물을 좀 더 조직적으로 배양하는 기술에만 30년 넘게 매달렸다.
화학공학 + 생물학 융합연구 결실
미생물은 연속적으로 배양하기 어렵지만, 화학공정은 연속적으로 이뤄진다. 장 박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미생물의 연속배양에 몰입했다. 화공과 출신인 장 박사는 미생물을 꼭 저렇게 키워야 하는지 의심을 가졌다. 미생물이 도망가지 못하게 막으로 막아놓고 고농도로 연속 배양시키면, 생산성이 크게 높아진다.
제자들 마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오래 걸리는 연구주제라고 생각했지만, 장 박사는 “배양문제를 풀어낼 해결책을 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분야만 연구해서 산업화를 하겠다는 확고한 생각을 무려 33년째 놓지 않은 것이다.
장 박사는 “외국 연구를 보고 약간 수정 개량하는 것 보다, 남이 생각지도 못한 분야를 하나 만들어서 해법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영향력이 크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아무도 못 푸는 문제를 풀거나, 시작도 못한 분야를 새로 만들어야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고 그는 강조했다.
미생물 연속 배양 공정을 연구하던 장 박사는 지금은 해수담수화 공정도 거의 완성단계에 왔다. 바닷물에서 소금을 걸러주는 기술이야말로 세계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칠 원천기술이다.
전통적으로 미생물은 먹이를 함께 넣어 배양해왔다. 이런 미생물 배양법은 먹이가 없어지면 미생물 성장도 늦춰진다. 이에 비해 화학공학은 제품을 생산할 때 촉매를 집어 넣어 연속 공정이 이어지게 하므로, 화학공학은 생산성이 높다.
미생물 연속 배양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장 박사는 막을 이용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를 해왔다. 몇몇 과학자들이 시도하다가 결과가 안 나와 포기한 공정이지만, 장 박사는 반드시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장 박사는 “화공 분야 기초가 튼튼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연속 배양을 조금씩 응용해왔으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공정기술의 개발이다. 기존의 음식물쓰레기 처리 공정에 비해서 작은 시설을 가지고도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다. 이 기술 역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를 얻어 시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장 박사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기술은 해수 담수화 기술이다. 역삼투압 현상을 유도하는 이 새로운 공정은 영향력이 엄청나게 크다.
장 박사는 해수담수화 기술을 2013년에 첫 특허출원하고 2015년에 두 번째 출원했다. 벌써부터 외국 기업들이 기술에 대한 문의를 해 올 정도로 관심을 끈다.
이 공정 기술의 핵심은 공정을 2단계로 나눈 점이다. 두 번째 공정이 ‘무삼투압차 역삼투압공정’이다. 해수담수화는 물론, 발효화합물 농축과 음식물쓰레기처리 등에 두루 사용될 수 있다.
장호남 박사는 대학생 때 부터 유명세를 탔다. 서울대학교에 몇 명을 입학시켰는지 경쟁하던 시절, 경남고를 졸업한 장 박사는 1963년 서울대 입시에서 전체 수석입학이라는 영예를 안은 것이다.
고등학생때 부터 교수를 꿈 꿨던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유학하면서도 항상 미래의 제자들을 생각했다. 서울대 수석입학생이었지만, 스탠포드 대학 유학생활은 어려웠다. 장 박사는 박사과정 진학시험을 특이한 방법으로 통과했다.
영어가 서툰 한국 학생에게 지도교수는 당시 가장 유명한 학자가 쓴 논문을 읽어보라고 줬다. 장 박사는 논문에서 잘 못 된 부분을 지적함으로써 박사과정 진학시험을 무사히 통과했다.
그는 스탠포드에서 우주에서 혈액이 어떻게 응고하는지를 연구했다. 토끼 20마리를 구입해서 피를 뽑아 3년간 실험 했다. 토끼 피 응고 실험을 마쳤을 때, 살아남은 토끼 15마리는 산으로 데려가서 모두 다 풀어줘서 자유의 몸이 되게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가르칠 미래의 제자들을 생각하면, 우주에서 필요한 혈액응고연구에 만족할 수 없었다. 당시 막 태동한 바이오메디컬 분야는 한국에겐 너무 앞선 분야이다. 그 분야만 가지고는 한국에서 할 일이 없어보였고, 학생들이 배워도 취직도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장 박사는 아이오와 대학으로 옮겨 정통 생물화학공학 분야인 효소공학을 추가로 연구했다. 제자들의 앞날을 생각하는 이 같은 실용적인 자세는 장 박사의 연구분야를 계속 넓혀가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줬다.
제자 50명이 대학 교수로 자리 잡아
1976년에 카이스트 교수로 부임한 장 박사는 대략 100여명의 석사를 교육시켰다. 이 중 약 70%가 넘게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절반은 유학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외국 박사 학위가 귀한 시절이어서 외국 박사는 교수로 많이 자리를 잡았다. 졸업생 중 교수로 간 제자들이 50명 가까이 된다. 서울대 교수 3명, 포스텍 교수 3명, 고려대 교수 2명, 카이스트 교수 2명 등이다.
장 박사는 미생물 연속공정 기술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왔다. 1996년엔 제2회 한국공학상을 수상했다. 2010년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에서 정년퇴임할 때는 독일 스프링거가 발행하는 생물공정바이오시스템공학(BPBSE) 저널이 장호남 특집기사를 냈을 정도이다.
과학기술색인(SCI)에 등재된 이 저널의 특집 제목은 ‘장호남 : 위대한 생물화학공학자와 평생에 걸친 고농도 배양에 관한 공헌’이다. 미국·일본 등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과 장 교수 제자들의 논문 20편이 실렸다. 세계적인 학술지가 학자 한 사람의 퇴임을 기념해 특집호로 발간한 일은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로 관심을 끌었다.
장 박사는 학문의 연속성과 연구개발의 역사를 이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퇴임하면 학교 실험실도 문을 닫고, 무슨 연구를 남겼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개인은 물론이고 후학이나 전체 과학계에는 큰 손실이다.
장 박사는 “어떤 과학자가 일생 동안 연구한 내용이나 기여한 것을 기록해서 그 과학자가 가장 오래 동안 봉직한 대학이나 연구소 웹 사이트에 남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7-10-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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