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우화작가인 이솝(Aesop)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후손들에게 많은 교훈을 안겨주었지만, 반면에 좋지 않은 선입견도 제공해 주었다.
선입견을 제공해 준 대표적 우화로는 ‘개미와 베짱이’를 꼽을 수 있다. 2천 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놀고먹는 사람들을 ‘베짱이’ 같다고 하고, 근면성실한 사람은 ‘개미’ 같다고 부르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베짱이는 사시사철 나무에 걸터앉아 노래만 부르고, 개미는 평생을 죽어라 일만 하면서 지내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 최근 미국의 과학자들이 ‘아니다’라는 답변을 내놓아 흥미를 끌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얼러트(Sciencealert.com)는 개미가 부지런한 곤충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지만 과학자들이 연구한 바로는 게으른 개미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하면서, 다만 게으르게 행동하는 것에는 임무 교대를 위한 준비처럼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관련 기사 링크)
파레토 법칙의 근거를 제시한 개미
개미들도 게으른 행동을 한다는 점이 왠지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개미들의 이런 행동은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인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가 처음 발견했다.
파레토는 당시의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개미의 습성을 연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 관찰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개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중에서 독특하게 행동하는 몇 마리의 개체만을 선별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전체 개미 중 20% 정도만이 열심히 일할 뿐, 나머지 80% 개미는 빈둥빈둥 논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모습에 흥미를 느낀 파레토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 무리들만을 모아 별도의 공간에서 다시 관찰을 시작했다.
파레토는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만을 모았기 때문에 모두가 합심해서 왕성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상도 얼마 못가서 또다시 깨지고 말았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무리들 중에서도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개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파레토는 다시 이들 무리 중에서도 일을 열심히 하는 개미들과 놀고먹는 개미들의 비율을 파악해 보았더니 공교롭게도 처음 구분했을 때와 비슷한 비율인 20%대 80%의 비율로 나눠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관찰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하여 곧바로 학술지에 게재하면서 ‘20%가 80%를 먹여 살린다’라는 가설을 주장했다. 20%대 80%의 비율이 비단 개미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법칙이라는 가설이었다.
그러면서 파레토는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의 80%는 20%의 원인으로 발생한다는 내용도 함께 논문에 담았다. 이 같은 주장은 곧바로 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어 일으켰고, 이후 20%대 80% 법칙은 ‘파레토 법칙’으로도 불리며 사회현상을 해석하는 기법의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비활동성과 활동성으로 나눠지는 개미들의 행동습관
파레토는 근면의 대명사인 개미도 게으름을 피운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파레토의 법칙이 발표된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과학자들이 그 이유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미 애리조나대의 ‘다니엘 차보네우(Daniel Charbonneau)’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실험실에 인공적으로 개미굴을 만든 후 개미들의 행동습관을 꾸준하게 관찰했다. 특히 개미들을 일일이 식별하기 위해 개미 등에 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묻힌 후, 이들의 행동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개미들이 행동습관에 따라 대략 2그룹으로 나눠지고 각 그룹은 또한 2개의 무리들로 나눠진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2그룹은 비활동성(inactive)과 활동성(active) 개미들로 구분됐다.
비활동성 그룹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굴속에서 가만히 있는 무리들과 딱히 하는 일 없이 개미굴 주변을 돌아다니는 무리들로 구분했고, 활동성 그룹에는 먹이를 찾거나 굴을 보수하는 무리와 애벌레를 키우는 무리들을 편성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차보네우 박사는 “가장 개체수가 많은 개미들은 비활동성 그룹 중에서도 굴속에서 가만히 있어서 게으르게 보이는 무리들로서 전체 집단의 40%를 차지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행동습관이 달라지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차보네우 박사는 “구체적인 메카니즘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고 설명하면서 “다만 게으른 개미들이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일종의 예비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라고 추정했다.
차보네우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개미들은 일정한 비율로 활동성과 비활동성 개미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활동성 개미들의 비율은 유지하되 비활동성 개미들의 비율은 들쭉날쭉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이 같은 비활동성 개미들의 비율이 일정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의 존재 목적이 활동성 개미들의 비율이 감소했을 때 이를 보충할 예비군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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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9-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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