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나 원숭이 같은 포유류는 신체 조직이 심하게 손상되었을 경우, 완전히 재생되지 않은 채 평생을 장애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사고나 전쟁으로 인해 팔이나 다리가 잘리게 되면 그런 상태로 남은 인생을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손상된 조직을 재생시킬 수 있다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될 수 있을텐데, 이처럼 기적과도 같은 일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완벽한 재생능력을 가진 말미잘로부터 재생기술의 단초를 얻었다고 보도하면서, 해당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100%는 아니더라도 장애인들의 장애 극복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관련 기사 링크)
고등생물일수록 세포 분화를 억제하는 기능 있어
굼벵이가 기는 재주가 있다면, 말미잘은 재생(再生)하는 재주가 있다. 아무리 신체가 몇 조각으로 잘리더라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올 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말미잘은 진화 단계 상 매우 하등한 동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바로 어떤 형태의 세포로든지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인데, 이들은 대여섯 조각으로 나뉘더라도 조각 모두가 본래의 말미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다.
반면에 사람의 경우는 재생 능력이래봤자 상처난 피부에 새 살이 돋는다거나, 두 번째 치아가 돋는 정도 외에는 별다른 재생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 위장에 있는 세포가 심장이나 간 세포로 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미 플로리다대의 마크 마틴데일(Mark Martindale) 박사와 연구진은 이 같은 말미잘의 뛰어난 재생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말미잘의 종류 중에서도 가장 재생능력이 탁월한 스타렛말미잘(starlet sea anemone)의 근육세포와 유전자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말미잘과 인간은 모두 여러 세포로 분화하는데 필요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은 말미잘과 달리 이를 억제해서 평생 한 종류의 세포로만 있도록 하는 일종의 제어 (lockdown)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마틴데일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말미잘 같은 자포동물(cnidarian)은 이배엽성 동물로서, 척추동물처럼 중배엽이 없고 소화세포가 수축까지 담당하는 다양한 능력을 지닌 세포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유전자를 조절하는 신호가 어떻게 세포 발현에 영향을 주는지를 확인하여 제어의 기전을 밝히는 한편, 말미잘에서 중배엽 기능을 담당하는 내배엽이 어떻게 진화되어 삼배엽성 생물체가 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이번 연구를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물론 연구진의 이번 연구결과가 인간의 재생능력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미잘의 재생 기전을 규명하는 과정은 결국 줄기세포 연구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재생 능력 확대에 도움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다만 여기서 이들 연구진과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은 어째서 인간과 같은 포유류들은 세포의 기능이 일관되게 정해져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현재 포유류처럼 고도의 수준으로 분화된 세포는 그 기능이 평생 정확하게 작동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틴데일 박사는 “말미잘 같은 단순한 생물과는 달리 포유류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의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원래의 기능대로 정확하게 수행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예를 들어 심장 세포가 간세포나 폐세포로 분화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생을 하지 않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던 점도 영향
하등생물 가운데는 말미잘 만큼이나 재생능력이 뛰어난 동물이 또 있다. 바로 반삭동물(hemichordata)에 속하는 별벌레아재비류(acorn worm)로서, 이들은 몸이 몇조각으로 나뉘어지더라도 외형은 물론 뇌와 심장 등 주요기관들이 완벽하게 재생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반삭동물이란 표피가 섬모나 점액질로 덮여 있는 무척추동물류를 가리킨다.
물론 하등생물 중에는 재생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꽤 존재한다. 그러나 반삭동물의 경우 꼬리나 사지가 재생되는 경우는 있지만, 별벌레아재비류처럼 중추 신경계나 내장 기관이 완벽하게 재생되는 경우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 같은 사실은 미 워싱톤대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는데, 연구진은 별벌레아재비류의 몸을 절단 한 후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중추신경계와 내장이 다시 재생되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연구진은 이 반삭동물이 뇌까지 완벽하게 다시 재생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의 한 관계자는 “뇌까지 재생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존재하는 것 같은 증거를 확보했다”라고 밝히며 “별벌레아재비류는 무척추동물이지만, 유전자와 신체 구조는 기본적으로 척추 동물과 닮은 점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포유류를 비롯한 척추동물의 신체 재생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고등생물일수록 재생능력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워싱톤대 연구진도 말미잘을 연구한 플로리다대 연구진과 거의 같은 해석을 내리고 있다. 거기에 덧붙여 워싱톤대 연구진은 신체 일부가 잘렸을 때, 그 상태로 아무는 것이 재생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생존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에서 고등생물은 그런 식으로 진화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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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7-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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