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식물화했다고 해야 할까. 산소가 크게 부족할 때 동물이 식물처럼 몸 안의 과당 대사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는 현상이 발견됐다.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21일자에 보고된 알몸 두더지 혹은 벌거숭이 두더지(naked mole-rat)가 바로 그 주인공. 과학자들은 동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이해하면 심장마비나 뇌졸중 같이 산소 결핍 상태에 처한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시카고 일리노이대(UIC)와 베를린 델브뤼크연구소, 남아공 프리토리아대 국제연구팀을 이끈 일리노이대 생물학과 토머스 파크(Thomas Park)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알몸 두더지에 대한 가장 최근의 놀라운 발견으로서 이 두더지는 다른 설치류보다 수십년을 더 오래 살고, 암에도 잘 걸리지 않으며 많은 종류의 통증도 잘 느끼지 않는 냉혈 포유류”라고 설명했다.
산소 부족에 대한 백업시스템 갖춰
사람이나 실험용 쥐, 그리고 다른 모든 포유류들은 뇌세포에 산소가 부족하면 에너지가 고갈돼 죽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명이 30년 정도인 알몸 두더지는 산소 부족 상태에 일정 시간 동안 대처할 수 있는 백업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소 부족 상태에 처하면 알몸 두더지의 뇌는 과당을 태워 에너지로 쓰기 시작한다. 이 방법은 오직 식물에서만 사용되는 대사 경로(혹은 과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로, 이 과정을 통해 산소 없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
실험실 연구에서 연구팀은 알몸 두더지를 낮은 산소 상태에 노출시켰다. 그러자 많은 양의 과당이 알몸 두더지의 혈류로 방출됐다. 이 과당들은 분자 과당 펌프에 의해 뇌세포로 운반됐는데, 다른 모든 포유류에서 분자 과당 펌프는 장 세포에서만 발견된다. (연구에 대한 동영상 설명)
가사상태에 들어가 에너지로 과당 사용
파크 교수는 “알몸 두더지는 산소 부족 상태를 극한적으로 버텨내기 위해 몇 가지의 기본적인 신진대사 구성요소를 간단하게 재배치한다”고 밝혔다. 파크 교수는 지난 18년 동안 특이 종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파크 교수에 따르면 알몸 두더지는 사람이 몇 분 안에 질식사할 정도로 산소가 희박한 상태에서 적어도 5시간 동안은 생존할 수 있다. 이 두더지들은 가사상태(suspended animation)에 들어가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거의 움직이지 않고 맥박과 호흡 속도를 극적으로 낮춘다. 그리고는 산소가 공급될 때까지 과당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알몸 두더지는 산소 결핍 상태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사상태(假死狀態)를 이용하는 유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산소 부족한 땅굴 생활에 대한 적응
연구팀은 알몸 두더지들이 또다른 치명적인 산소 결핍 상태에서도 보호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이 그것으로, 폐부종은 고산 등반가들을 괴롭히는 질병이다.
연구팀은 알몸 두더지의 특이한 대사작용이 산소가 부족한 땅굴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보고 있다. 알몸 두더지들은 땅 속 생활을 하는 다른 포유류들과 달리 수백마리가 한데 모여 혼잡하게 생활하고 있다. 환기가 되지 않는 굴 속에 수많은 개체가 모여 살다보니 산소가 급속히 고갈될 수 있다.
이번 연구가 산소 결핍으로 인한 위기상황에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안 도출의 단서를 제공할지 관심을 모은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7-04-2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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