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생리학자인 이반 파블로프가 개를 대상으로 한 조건 반사 실험은 유명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파블로프는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울렸다. 그러자 개들은 먹이가 나타나기 전에도 종소리를 들으면 먹이에 대한 기대로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대(UCLA)대 연구진은 헌팅턴병과 파킨슨병, 툴렛 증후군을 일으키는 작은 뇌세포 무리에서 파블로프 반응을 추적해 조건반사가 뇌 회로에 부호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셀’(Cell) 자매지 ‘뉴런’(Neuron) 22일자에 게재된 이 연구는 앞으로 신경과학자들이 이러한 장애를 진단, 치료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찾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에는 한인과학자인 이광(Kwang Lee) 박사후 과정 연구원(신경생물학)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했다.
쥐에게 향기 내보낸 후 우유방울 공급
논문의 시니어 저자인 UCLA의대 소티리스 매스마니디스(Sotiris Masmanidis) 조교수(신경생물학)는 “생물 종은 특정한 소리와 냄새, 눈에 보이는 것 같은 감각신호를 물이나 음식과 같은 보상 대상과 연결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생존한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보상 기반의 학습과 행동을 담고 있는 뇌 회로를 밝혀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뇌에서 보상과 이동 및 의사 결정을 관장하는 한 부분인 선조체(腺條體, striatum)의 세포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현대판 파블로프 실험에서 매스마니디스 교수팀은 실험용 쥐에게 생소한 바나나나 레몬 향기를 반복적으로 노출시킨 다음 응축된 우유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향기가 나면 달콤한 보상이 뒤따른다는 것을 학습한 쥐들은 향기를 내보내자 우유가 떨어질 것을 기대하며 열정적으로 혀를 날름거리기 시작했다.
매스마니디스 교수는 “실험용 쥐들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새로운 향기를 음식과 연관시키는 법을 배웠다”며, “다음 단계로, 뇌 선조체의 여러 세포 무리 활동을 정지시키면 파블로프 반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매스마니디스 교수는 UCLA의 ‘캘리포니아 나노시스템 연구소’와 ‘뇌 연구소’ 회원이기도 하다.
뇌 회로에 파블로프 반응 부호화돼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선조체의 주요 신경세포를 지원하는 작은 세포군을 겨냥했다. 이 세포군은 이 부위 세포의 2% 미만을 차지하지만 연구팀은 이 세포 무리가 수에 걸맞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매스마니디스 교수는 “신경세포를 지원하는 작은 세포 무리의 활동을 정지시켰는데도 쥐들은 여전히 우유를 기대하며 정상 상태의 반 정도 횟수로 혀를 날름거렸다”며, “이러한 반응이 나온 이유는 지원 세포들이 뇌 회로에 파블로프 반응을 부호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원 세포의 영향력은 실험용 쥐가 익숙지 않은 향기를 보상과 처음 연결짓는 학습을 할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미 보상을 학습한 쥐에게서 지원 세포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매스마니디스 교수는 “이 지원 세포들은 파블로프 반응을 아직 마스터하지 않은 경험 없는 쥐들에게는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선조체 뉴런 지원세포 되살리면 뇌 신경장애 극복 기대
이번 연구 결과를 사람에게 적용할 경우 선조체 뉴런을 지원하는 세포들이 잘못돼 문제를 일으키면 헌팅턴병과 파킨슨병, 툴렛 증후군 같은 뇌 신경학적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이 세포들의 기능을 되살리면 이런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도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1904년 파블로프의 고전적 연구가 발표된 이래 1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이와 관련해 배울 것이 아직도 많다.
논문의 공동 제1저자인 이광 박사는 “이번 발견은 건강과 질병에 큰 영향을 미치는 뉴런의 다른 여러 역할들을 연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열어준다”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7-03-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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