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국가의 유방암 환자 생존율은 40%에 불과하지만, 소득이 높은 국가는 생존율이 50%가 넘는다. 똑같은 병인데도 이처럼 생존율에서 차이가 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치료를 더 많이 받아서일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치료 자체보다도 초기 진단의 기회를 원인으로 꼽는다. 유방암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가 생존율의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
비단 유방암뿐만이 아니다. 말라리아나 결핵, 또는 에이즈(AIDS) 같은 치명적인 병들의 생존율도 저소득 국가의 경우가 훨씬 낮다.
따라서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저소득 국가의 국민들도 질병에 대한 초기 진단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미국의 과학자들이 개발 중인 랩온어칩(Lab on a chip)도 바로 그 같은 시도 중의 하나다. (관련 기사 링크)
하나의 칩에서 실험실의 제반 과정을 수행
랩온어칩이란 ‘하나의 칩 위에 실험실을 올려놓았다’는 뜻으로서, 손톱만한 크기의 바이오칩에 연구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실험 과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를 가리킨다. 이 칩을 이용하면 적혈구 및 백혈구의 세포 수 측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 방울의 피만으로도 암 같은 난치병을 진단할 수 있다.
소량의 액체를 처리하는 기술인 마이크로유체기술(Microfluidics)과 제어계측 기반의 전자기술(electronics)이 집약된 시스템이다 보니 랩온어칩의 제작비용은 상당히 비싸다. 먼지 한 점도 없는 클린 룸에서의 작업은 물론, 정교한 장비와 고도로 숙련된 인력이 제작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원가 자체가 비쌀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질병의 특성에 맞게 주문형으로도 제작할 수 있어서 특이적 질병의 랩온어칩은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고부가가치를 자랑한다.
그런데 최근 미 스탠포드대의 연구진이 개발한 랩온어칩은 단돈 1센트의 비용만으로도 다양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고 있다.
연구진이 랩온어칩을 저렴하게 제작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잉크젯(inkjet) 프린터의 원리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듯이 칩 위에 회로를 찍어내기 때문에 싼 값으로도 제작이 가능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진의 책임자인 로널드 데이비스(Ronald Davis) 박사는 “잉크젯 기술을 사용하면 단 돈 1센트만으로 20분 만에 조립이 가능하다”고 밝히며 “우리가 아는 한 이 정도의 저렴한 제작비용과 짧은 제작 시간을 가진 랩온어칩이 있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라고 자신했다.
고가의 장비와 견주어도 정확도 비슷
스탠포드대 연구진이 개발한 랩온어칩은 3층 형태의 모듈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제일 위층은 전자 스트립(strip)을 휘어지는 고분자 소재에 인쇄하는 잉크젯 프린터와 전도성 나노입자 형태의 잉크로 구성되어 있다.
중간층은 위층과 아래층을 분리해주는 절연 장벽이 들어가 있고, 아래층은 세포 같은 생물학적 유기체를 집어넣는 투명한 실리콘 챔버(silicon chamber)와 재사용할 수 있는 전자 스트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설계된 랩온어칩이 세포와 생체 분자를 실제로 확실하게 분리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진은 두 종류의 챔버가 있는 랩온어칩 시제품 제작에 들어갔다. 하나는 세포를 분리하고, 다른 하나는 세포를 분석하는 기능에 중점을 두는 것이 설계 방향이었다.
설계와 제작을 마친 후 연구진이 시제품을 가동하자 샘플에서 유방암 세포가 효율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비스 박사는 “암세포는 단백질과 같은 다른 생체 분자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표면 전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며 “우리는 전자장(電磁場)을 조작하여 암세포를 칩의 특정 챔버 쪽으로 조종하여 분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암세포 분리 외에도 연구진은 칩이 샘플의 세포 수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세포 수를 계산하는 이유는 결핵이나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성 질병을 진단하는 작업에 사용되는데, 기존에는 1억 원 이상 되는 고가의 장비로만 파악이 가능했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 불과 1센트에 불과한 랩온어칩도 고가의 장비만큼이나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암세포를 분리하고 세포수를 계산하는 능력이 암이나 기타 질병에 대한 이해를 증가시킬 수 있다”라고 강조하며 “특히 저소득 국가에서 랩온어칩을 사용한다면 조기에 전염병을 감지하여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데이비스 박사도 “랩온어칩은 이른바 간소(simple) 과학 분야에서 가장 최근에 성공한 기술”이라고 소개하며 “그동안 간소 과학 분야는 전 세계 어디서나 값싸고, 휴대가 가능하며, 신뢰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라고 언급했다.
연구진은 현재 1센트짜리 랩온어칩이 저소득 국가의 의료 진단 문제를 해결해 줄 돌파구가 될 것으로 여기면서, 특히 이들의 약점인 진단의학 분야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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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3-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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